백목련 : 봄날의 미운오리새끼

by 다이안 Dyan

내 인생의 첫 이사를 일곱 살 때 경험했다. 우리 가족이 처음 이사하는 집은 지하까지 총 4층인 단독주택이었다. 층수는 많았지만, 층마다의 면적은 크지 않은 작은 단독주택이었다. 앞에는 작은 화단이, 뒤에는 작은 마당이 있었다. 그래서 봄이면 가족끼리 꽃시장에 가서 모종을 사다 심었고, 여름이면 이모네 식구를 불러 마당에 물놀이 튜브를 만들어 동생들과 물놀이를 즐겼다. 옥탑방 수준의 작은 방인 3층 방에는 정글짐과 각종 장난감이 모여있는 놀이방이 있었고, 그렇게 동생과 계단을 오르내리며 뛰어놀곤 했다. 계단에서 동생과 다툴 때면, 늘 할머니와 부모님은 걱정되는 마음에 다른 때보다 더 혼내곤 했다. 그래도 그 단독주택은 내게 영화 속 작은 집 같은 곳이다.


일곱 살, 나무를 베는 것을 처음 봤다. 선녀와 나무꾼의 나무꾼이 갖고 다니는 도끼는 아니었다. 위이이잉- 요란한 소리를 내며 주변의 어떠한 소리도 다 잡아먹는 전기톱이었다. 전기톱은 할머니와 엄마에게 건네는 나의 말소리도 잡아먹고, 봄에 하얀 전구를 피워내던 백목련도 잡아먹었다. 어른들이 저 목련은 쓸데가 없다고, 베어버리는 게 낫다고 하는 말은 들었지만 정말 저 큰 나무를 벨까 싶었다. 봄이 지나고 잎이 무성해지면, 달걀모양의 둥근 잎이 켜켜이 쌓여 그늘을 만들었다. 그렇게 백목련의 그늘이 할머니의 화단이자 텃밭에 방울토마토, 상추, 그리고 알록달록한 꽃이 자라는 걸 방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할머니의 미움을 샀나.

어쩌면 담벼락에 가까이 심어져 지는 꽃잎이 지저분하다고 싫어했을지도 모른다. 식탁 위에서 말라가는 사과 조각처럼 갈색으로 변한 흉한 꽃잎이 가장 많이 떨어지는 곳은 엄마의 첫 자동차 위였으니까. 할아버지에게 받은 중고차이긴 했으나 엄마에겐 소중했을 첫 차인데, 첫 차를 잔뜩 더럽혀서 백목련은 엄마의 미움을 받았나 보다. 그렇게 너는 미운 오리 새끼가 돼버렸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은 미운 일곱 살, 질문이 한창 많은 시기의 나는 목련을 베는 날까지도 끊임없이 물었다. “왜?”. 이웃집과 마주 본 담벼락에서 이웃집을 적당히 가려주고 있었고, 골목을 돌아 우리 집을 봤을 때 큰 나무가 보여서 좋아했다. 그런데 왜 그런 나무를 베는지 몰랐다. 어른들을 괴롭히려는 “왜”가 아니었다. 정말 궁금했다. 그래서 전기톱에 내 목소리가 잡아먹힐 때도 나는 옆에 서서 물었다. “꼭 베어야 해?”


하지만 지금이나 그때나 내 목소리는 작았고, 특히나 포효하는 사자와 같은 전기톱 앞에서 나는 한 마리 고양이일 뿐이었다. 그렇게 인부 아저씨들이 달라붙어 나무를 자르고, 다시 큰 기둥을 토막 내는 것을 지켜봤다. 토막 난 나무 기둥을 아저씨들은 타고 온 트럭에 실어 날랐다. 너를 처음 만난 그 해에, 너는 낯선 아저씨들의 트럭을 타고 떠났다.



삶은 달걀은 먹지도 않았던 일곱 살의 꼬맹이는 뽀얀 삶은 달걀 같은 백목련의 꽃이 좋았다. 동화책에 나올 법한 달걀이 열리는 신비로운 나무 같았다. 그래서 여전히 목련은 활짝 핀 것보다 이제 막 봉오리를 벗어난 그때를 더 좋아한다. 갸름하고 동글동글한 달걀이 피어난 모습을 볼 때면, 다시 일곱 살로 돌아가는 것만 같다. 봄이 무르익어 가면서, 달걀은 점점 풍성해진다. 그렇게 꽃잎이 벌어져 풍성해진 달걀은 마치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처럼 곱고 아름답다. 목련 꽃잎을 주워 만지면 그 질감도 어딘지 우아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게 곱고 아름다운 시간도 잠시, 바닥에 떨어진 꽃잎은 사람들의 발길과 자동차의 바퀴에 쓸려 금세 갈색으로 변하곤 한다. 우아하게 만개했던 모습과 달리, 갈색의 생채기로 뒤덮인 백목련의 꽃잎은 물기 머금은 낙엽처럼 땅에 쌓인다.


그렇게 너와 빠르게 이별했지만, 그 이후로 너를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열두 살, 두 번째 이사하며 넘어온 아파트에서도 너를 볼 수 있었다.
스무 살, 대학교 교정 안에서도 너는 여전히 달걀을 피워내고 있었다.
서른 살, 어느 순간 너의 우아한 자태가 소셜미디어를 채우기 시작했다. 어릴 때 우리 집 앞 화단에 있던 너보다 훨씬 큰 백목련이 자리 잡은 어느 카페의 창가 자리와 테라스 자리가 유명해졌다.
그러더니 서른둘, 벚꽃보다 먼저 봄을 알리는 너의 존재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벚꽃이 피기 전, 아름다운 너를 감상할 수 있는 장소와 사진이 때를 맞춰 소셜미디어에 올라온다.
드디어 너의 하얀 전구에 빛이 들어오는 것 같아 괜스레 뿌듯하다. 이제는 일곱 살의 나보다 더 많은 사람이 한 마리 백조같이 우아한 너의 모습을 알아봐 준다. 이번에는 부디 사람들이 너의 우아함만이 아닌, 갈색 생채기도 보듬어 안아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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