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백작씨

2023. 08. 25.

by 다이안 Dy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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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은 맑게 개인 파란 하늘,

절반은 잔뜩 먹구름이 낀 회색 하늘.

비가 잔뜩 쏟아지고 멎어갈 때쯤 종종 볼 수 있는 재난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하늘이다. 그리고 난 이런 하늘이 마치 곧 개인다는 신호탄 같아서 좋아한다. 비록 재난 영화라는 어두운 영화 속의 한 장면일지라도, 현실이 아닌 몽상의 세계로 잠시 빠져볼 수 있는 하늘이다. ‘이대로 지구가 더 더워진다면, 저 구름이 일상이 될지도 몰라. 아니면 지금보다 더 크고 빼곡한 먹구름이 찾아오려나?’라는 어두운 상상이긴 하다.


오늘의 이 아수라백작 같은 하늘을 보고 있자니 내 방의 작은 아수라백작이 생각났다. 필로데드론 버킨콩고. 줄여서 콩고라고 불리는 하얀 잎에 초록 무늬가, 초록 잎에 흰 무늬가 매력적인 관엽식물이다. 하지만 내 보금자리의 콩고는 특별한 잎을 갖고 있다. 바로, 반은 짙은 초록색이고 반만 원래의 흰 무늬를 한 잎이다.


콩고의 새 잎은 돌돌 말린 채로 서서히 올라와 펼쳐지곤 하는데, 이 녀석은 돌돌 말려있을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식물의 새 잎은 종종 붉은 기를 띄고 있다가 완전한 잎이 되며 점점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그동안 관찰해 온 콩고의 잎에선 나타나지 않던 특징인데 이 녀석에게만 나타났다. 거기다 잎이 말려있다 보니, 짙은 색인 부분이 겹쳐서 더 도드라지고 거기다 붉은 기까지 어려 더 어두워 보였다. 때가 겨울이었어서 혹시 동해를 입을까 창문과 멀리 떨어뜨린 화장대 옆으로 옮겼놨던 때였는데, 녀석이 해를 못 봐서 비실비실해졌나 걱정했다. 그리고 돌돌 말려있던 잎이 서서히 펼쳐지며 드러난 모습은 ‘설마’ 그 자체였다. 정확히 반반으로 나뉘어서 반은 짙은 초록, 반은 원래의 하얀 무늬가 있는 잎의 모습이었다. 이건 무슨 지킬 앤 하이드도 아니고, 도대체 얘는 뭐 때문에 이렇게 난 걸까 싶었다. 커가면서 다시 저 짙은 색은 점점 사라지겠지라고 믿으며 기다렸는데, 아수라백작씨는 보란 듯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마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그 모습 그대로 새로운 겨울을 맞이할 예정이다.


처음에는 녀석의 낯선 모습에 내가 뭘 잘못했을까 반성도 해보고, 이대로 콩고는 유명을 달리하는 건가 체념도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겨울을 지나 봄, 여름, 이제 가을을 함께 맞이하고 있다. 여전히 반반의 모습으로 창가를 지키는 녀석을 보면, 식물을 키우는 데 있어 내 신념이 꼭 틀리지만은 않은 것 같다. “강하게 키워야 살아남는다.” 과도한 보살핌으로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주기보다는 적당한 무관심으로 생존력을 키워주는 내 신념. 나쁘지 않네?



1000004436.jpg 아수라백작씨 X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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