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면하고 싶은 인간

by 다이안 Dyan

온몸이 외치는 겨울

엉덩이가 바닥에 붙어 버리기라도 한 듯 설거지를 해야 하는데 몸은 떨어지지 않는다. 아 그냥 드러눕고 싶다. 그냥 이대로 잠들고 싶다. 분명 버스에서 많이 잤는데 또 잠은 쏟아진다. 오히려 이동하면서 잠을 중간중간 많이 자면 더 피곤하고, 더 졸려버린다.


처음에는 요즘 출장이 잦아서 그런가 했다. 아니, 다시 생각하니 요즘의 나는 항상 그렇다. 퇴근하고 오면 먹기조차 귀찮고, 간신히 먹고 나면 씻기가 귀찮아서 미적거리다가 취침시간이 늦어진다. 그렇게 바깥의 기온이 떨어지는 만큼 나의 의지력도, 에너지도 뚝뚝 떨어진다.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겨울이 찾아온 것이다. 내 몸은 그렇게 겨울이 왔음을 알아차리고 빠르게 그 신호를 보낸다. 그래서 아무리 자고 또 자도 내 몸은 물에 젖은 솜이불처럼 무거워서 주체가 안 되는 그런 상태가 되어 버린다. 그렇게 겨울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나의 귀찮음과 무기력은 점점 무거워져 간다.



동면하고싶소

겨울만 되면 토끼, 다람쥐, 곰 같은 동물이 부러워진다. 먹을 수 있는 만큼 실컷 먹은 후에 겨울을 나기 위해 쭉 잠에 들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환상적인 겨울일정인가. 왜 인간은 동면을 하는 형태로 진화하지 못한 것일까. 인간의 최종 진화 형태인 호모사피엔스는 슬기로운 사람을 말한다 했는데, 하나도 슬기롭지 못한 것 같다. 진정 슬기로운 인간이라면 해가 갈수록 매서워지는 바람과 한파에 맞서 싸우며 출근하지 않는 방법을 강구했어야지! 호모사피엔스는 거만한 인간이었음이 틀림없다. 주변의 다른 동물로부터 배우지 않고 꼿꼿이 겨울에 동면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조금만 주변을 둘러봤어도 편하고 따뜻하게 동면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을텐데…쯧쯧 겸손하게 동면을 배웠다면 지금 당신의 후손들은 한파를 뚫고 일터로 출근하지 않았을 것이란 말이다. 인간의 진화는 잘못된 것임이 틀림없다.


동면이 있었다면 회사도 겨울방학처럼 동면기간을 가졌을 거야. 그럼 모두 12월 중순이면 다들 “꿀잠 자시고 동면 후에 만나요”라던지, “굿밤 앤 해피뉴이어”를 연말인사이자 새해인사로 날리고 있을 텐데. 그렇게 12월부터 2월까지 약 3개월가량을 서로 동면하고 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정도 떨어져서 각자 충전의 시간을 갖고 오면 아마 개와 고양이 같던 사람들도 잔뜩 날 선 상태를 무디게 만들고 올 수 있지 않을까. 3개월을 잠만 자다 나오면 “이번 동면은 너무 좀이 쑤시던 거 있죠!” 라면서 일터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개미 코딱지만큼이라도 생기지 않았을까. 직장인에게도 잠시 현실을 떠나 온전한 충전을 할 수 있는 길고 긴 겨울방학이 필요하다!




나도 동면 잘할 수 있는데!

본가에 있어도 나는 방에서 잘 나오지 않는 편이다. 그런 방콕러인 내가 자취를 하니, 진정한 방콕이 됐다. 7평 남짓의 작은 자취방은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도 몇 안되잖아”라는 좋은 핑계를 만들어줬다. 그런 진짜 방구석 1인이 날이 추워지니 이젠 알아서 그 작은 방 안에 땅굴을 파고 있다. 바로 전기장판이 깔린 나의 잠자리. 정확히 지하를 파는 땅굴은 아니지만, 아담하고 아늑한 나의 자취방 안에서도 가장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이다. 그렇게 겨울이 되면 그 작은 방안에서도 나만의 땅굴에 들어앉아서는 한껏 귀차니즘 오로라를 뿜어대고 있다. 이 정도면 동면의 첫 번째 조건인 공간도 확보한 셈 아닌가?

동면의 두 번째 조건인 잔뜩 먹기, 이건 사실 자신 없다. 나는 입이 짧은 편이고 배가 터질듯한 포만감과 함께 드러누웠다간 역류성식도염으로 고생할게 뻔하거든. 그치만 조금씩 자주, 특히 당도 높은 군것질은 한 번 수납장에서 빼올 때마다 많이 빼와서 손에 닿는 거리에 두곤 한다. 밥과 끼니는 많이 못 먹어도 각종 과자와 초콜릿, 과일 등의 간식류는 쉼 없이 먹을 수 있다. 이 정도면 자는 동안 에너지가 부족하지 않게 틈틈이 보충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귀차니즘은 위대하기에 자면서 필요한 모든 걸 내 팔의 가용범위 안에 둘 수 있거든! 그렇게 쉼 없이 주워 먹다 보면 끼니 섭취를 능가할 만큼의 칼로리가 나올걸!




그리고 체념

그렇게 인간의 기원을 탓한들 무얼 하겠는가. 2022년을 마무리하고 있는 현재의 인간은 오늘도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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