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런던, ham house and garden

Since: 2022, 서재의 책꽂이 한편에서

by 하이유월

<ham house and garden>


Since: 2022, 서재의 책꽂이 한편에서


To: 2023, 런던 서쪽의 ham house and garden에게


햄 하우스

정원 뒷쪽에서 바라본 건물

ham house and garden이란 곳은 런던에 오래 거주한 사람이라도 잘 들어보지 못했을법한 그런 곳이다. 써놓고 보면 마치 먹을거리처럼도 보이는 귀여운 이름을 가진 곳.

런던 서쪽, 리치몬드 타운 쪽에 위치한 이 곳은 유럽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옛 귀족의 저택이다. 엘리자베스 여왕도, 헨리 8세도 아닌 그냥 귀족의 저택.




나를 보내지 마

영화 네버렛미고의 한 장면

영국에 가기 몇개월 전에 나는 집 책꽂이에서 우연히 한 책을 발견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마’. 우연히 찾아온 이 책은 나의 인생 소설책 중에 하나가 되었다. 항상 픽션 말고 논픽션 책을 선호하던 나에게, 소설이 이렇게 술술 넘어갈 수 있다니(마치 영화처럼), 라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아름다운 문체와 서사를 넘어서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은 책 너머로 느껴지는 듯한 배경의 분위기였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일본계 영국인으로 그의 소설 대부분은 영국의 어느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는 영국의 음침한 안개가 뿜어져 나오는 듯 했다.


‘나를 보내지마’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일부 장면을 이 곳, ham house and garden에서 촬영했다. 그게 내가 이곳을 방문한 이유다. 솔직히 말해, 영화 자체는 인상깊지 않았으나 책이 좋았기에 가고 싶었다. 영화 감독도 책 속 분위기를 구현하는 곳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면 이곳은 책 속 그 공간과 굉장히 닮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윔블던에서 리치몬드로


당시 윔블던에서 살고 있던 나는 집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리치몬드로 향했다. 리치몬드는 내가 런던에서 가장 사랑하던 곳 중 하나였다. 리치몬드 파크와 그 주변을 둘러싼 고풍스러운 건물들에, 리치몬드 시내로 나가면 왠지 모를 노스텔직한 분위기가 함께 풍긴다. ham house and garden은 시내쪽은 아니고, 부촌으로 보이는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었다. 주변에 사람이 너무 없어 제대로 찾아온게 맞나 싶을 정도로 고요한 공간이었다.




quiet place와 양봉장(마치 유럽 시골같은)

쌀쌀한 11월, 한적한 공간, 딱 영화 속 그 분위기를 닮은 순간이라 가는 길이 더 좋았다. 나는 영화 속 학교 장면을 촬영한 정원으로 향했다. 정원은 독특했다. 지금까지 가본 궁전의 정원과는 아주 다른, 소박하고 귀여운 공간이었다. 패턴으로 꾸며진 인공적인 나무의 모양과 조형물 대신, 이곳에는 양봉장과 명상을 할 수 있는 정원 같은 독특한 공간들이 있다.

영화가 처음 시작하는 건물의 정면, 건물의 뒷쪽 정면에 있는 작은 분수대, 그리고 작은 미로. 모두 영화에 나왔던 곳이다. 이곳을 뛰어가던 어린 캐시와 토미가 생각난다.




비건 샌드위치를 시켰다(사실 실수였다)

정원을 다 보고는 정원 내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아침을 못 먹은지라 이곳에서 랩과 핫초콜릿을 시켜 야외 테라스에 앉았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겨울에 주로 내부에 앉는것을 선호하는데, 영국에 와서는 야외 테라스에 많이 앉게 된다. 유럽인들은 선샤인을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야외를 너무나도 좋아한다. 그들의 문화를 느끼고 싶어 나도 자연스럽게 밖에 앉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날은 정말 밖에 안 앉고는 못 배기는 그런 날씨였다.


역시나 랩은 맛이 없었다(영국이니까), 그리고 비쌌다(이것 또한 런던이니까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가끔 돌아다니는 청설모와 귀여운 가드닝의 풍경 때문에 돈이 아깝지 않았다.

빵을 먹으며 보니, 이 곳 역시 영국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이 보였다. 네셔널 트러스트에 등록되어 있는 곳들은 항상 그렇다.

이상하게 나는 이런 곳을 좋아하는 나의 그런 점이 좋았다. 이상한 것에 집착하는 나는 유행을 따르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한다. 인스타그램에서 유행하는 그런 공간들을 가면 너무 뻔한 곳에 왔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좀 낡고 촌스럽더라도 느린 공간들이 좋았다. 반대로 낡았다는 것은 고풍스럽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에.

그래서 영국의 노부부들이 보이면 항상 작게 미소가 번졌다. ‘내가 찾던 공간에 잘 찾아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유행에 맞지 않더라도 느리고 아름다운 공간 말이다.



*모든 사진은 작가가 직접 촬영한 사진입니다. 무단복제 및 도용을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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