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난도 테예즈
한 사나이가 이발소의 문을 열고 들어온다. 면도칼을 가죽 띠에 문지르며 날을 세우고 있던 이발사는 그가 누구인지를 알고 긴장한다. 그 사나이의 이름은 토레스. 저항군들을 잡아 발가벗겨 나무에 매달아 죽이고 부하들을 시켜 그 시체에 사격연습을 시키는 사람. 그는 인간백정이다. 권총집과 총알이 잔뜩 꽂힌 탄띠를 풀고, 그는 이발사에게 면도를 해 달라고 한 후, 의자에 앉는다. 이발사는 찬찬히 비누거품을 준비한다. "비누를 몇 켜 잘라내어 컵에 넣고는 따뜻한 물을 조금 섞어서 솔로 휘저었다. 곧 거품이 일기 시작했다."
이발사는 갈등한다. 이발사는 사실 다른 이들 모르게 저항군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비밀의 반란자인 셈이다. 이발사의 손에 들린 날이 선 면도칼로 한 번만 그의 목을 그어버리면 손쉽게 죽일 수 있다. 그는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잔인하게 빼앗은 자이고, 그래서 어쩌면 죽어 마땅한 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발사는 생각한다. 나는 이발사다. 저항운동을 하고는 있지만, 살인자는 아니다. 깨끗하고 매끈하게 면도와 이발을 하는 것을 최고로 생각하는 양심적인 이발사다.
이발사는 어렵게 결론을 내린다. "나는, 그렇다, 살인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당신은 면도를 하려고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자랑스럽게 내 일을 해내는 중이다...... 나는 손에 피를 묻히기가 싫다. 비누 거품, 그것이면 그만이다. 당신은 처형의 집행자이지만 나는 한 사람의 이발사에 지나지 않는다." 면도가 깔끔하게 끝났다. 이발사의 얼굴은 창백했고, 셔츠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 토레스는 이발사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돈을 지불한 후 문으로 걸어간다. 그는 문간에서 잠깐 걸음을 멈추더니 이발사를 돌아보며 말한다.
사람들 얘기로는 자네가 날 죽일 거라고 그러더구먼.
그 말이 정말인지 알아보고 싶어서 왔었어.
하지만 사람을 죽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냐.
내 말을 새겨두라구.
이발사가 처한 상황은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아마데우 드 프라두가 처한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의사인 프라두는 '리스본의 인간백정'이라 불리는 멩지스가 심장마비가 와서 병원에 실려왔을 때, 직업적 양심과 정의의 실현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때 오빠는 냉철하고도 완고한 의지로 진찰대에 누워 있는 이 살찐 땀투성이 남자, 사람들이 모두 고문과 살인과 국민에 대한 잔인한 억압의 책임자라고 짐작하는 그 사람을 그냥 죽게 내버려 두고 싶은 욕망과 싸우고 있었어요.(<리스본행 야간열차1>, 들녘, 290쪽.)
프라두의 실존적 갈등이 진정으로 직업적 양심의 무게에서 발원한 것으로 느껴지는 반면, <단지 비누 거품일 뿐>에서의 이발사의 갈등은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발사는 자신이 이발사일 뿐이므로 사람을 죽일 수 없다고 하지만, 이는 단지 변명이고, 직업적 양심을 소심함과 비겁함의 알리바이로 삼은 것처럼 보인다. 이발사는 독재자를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주저하다가 비누 거품처럼 날려 버리고, 자신의 손에는 독재자의 피가 아닌 비누 거품만을 묻혔다.
그러나 고뇌하는 프라두보다 식은땀을 흘리며 벌벌 떨고 있는 이발사에게 더 공감이 가는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