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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변호사 Jul 17. 2019

우리는 어떻게 작가가 되는가

사막에서의 삶을 견디는 방법

[아고타 크리스토프/백수린 옮김, <문맹>, 한겨레출판, 2018]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맹>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1935년 헝가리 출생인 이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작가의 대표작이라 할)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통해서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날이 선 칼처럼 느껴졌다. 뭉툭함이라고는 없었다. 차가웠다. 온기라고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내용 자체는 뜨겁고 처절했다. 높은 전압으로 뜨거운 무언가가 작품 전체에 흐르고 있었다. 문장이 비수가 되어 심장을 찢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진짜였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과 같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동시에 어떻게 하면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그러니 그녀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하는 <문맹>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읽은 자라면 반드시 읽고 싶어지는 책이다. <문맹>은 말을 극도로 아끼는 작가가 독자에게 말을 극도로 아껴서 전한 선물같은 책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글쓰는 사람'으로 규정하는 그녀가 '글쓰기의 비밀'까지 알려 주는 대단히 귀한 책이다.




그녀는 헝가리에서 태어나 러시아의 스탈린 독재를 피해 오스트리아를 거쳐 스위스로 망명을 간다. 난민인 것이다. 그녀가 망명을 간 지역에서는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녀는 프랑스어를 전혀 모른다. 간신히 말은 배우지만 한동안 문자를 익히지는 못한다. 문자를 박탈당한 것이다. 문맹, 즉 '문자-없음(an-alphabete)'의 상태, 문자 상실의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태생적으로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녀에게 난민으로서의 삶은 도저히 건널 수 없는 '사막'이다. 


사막에서의 삶을 견디지 못한 자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다른 네 명은 더 멀리, 우리가 갈 수 있는 한 가장 멀리, 가장 높은 경계선 너머까지 갔다. 이 네 명의 지인들은 우리 유배 시기의 첫 두 해 사이에 죽음을 선택했다. 그 중 하나는 비르비투르산 수면제로, 다른 한 명은 가스로, 나머지 둘은 끈으로. 그 중 가장 젊은 사람은 열여덟 살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지젤이었다."(91-92쪽) 작가는 스물여섯 살의 나이에 다시 학교를 다닌다. 프랑스어를 배운다. 그러고는 프랑스어로 글을 쓴다. 사막에서의 삶을 견디기 위한 방편이었으리라.




우리는 어떻게 작가가 되는가라는 질문에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이렇게 답한다. "무엇보다,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할 일은 쓰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쓰는 것을 계속해나가야 한다. 그것이 누구의 흥미를 끌지 못할 때조차. 그것이 영원토록 그 누구의 흥미도 끌지 못할 것이라는 기분이 들 때조차. 원고가 서랍 안에 쌓이고, 우리가 다른 것들을 쓰다 그 쌓인 원고들을 잊어 버리게 될 때조차."(97쪽)


그리고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어떻게 작가가 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것이다.
우리는 작가가 된다.
우리가 쓰는 것에 대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은 채,
끈질기고 고집스럽게 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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