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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Oct 20. 2020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이  있다, 책 나오기 전까지는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 독립출판 작업기 32편: 제작회고

저는 한 입으로 두말했던 작가입니다.

브런치에 제작기를 쓴 만큼 책 제작 계획을 참 많이 쏟아 냈습니다. '표지는 유광코팅 하겠어요', '내지 왼쪽마다 사진을 넣으려고요', '10월 22일까지 20곳의 독립서점에 제 책을 넣겠어요' 같은 말을 했습니다만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당당합니다. 난 노력했고, 생각 끝에 다른 선택을 한 것 뿐이에요. 이게 회사 일이면 전 좋은 사원이 아니겠지만... 독립출판 좋다는 게 뭐겠어요? 어떤 외부적인 영향력에 놓이지 않고 본인이 주도적으로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드는 게 독립출판 아니겠어요? '지금'을 전달하는 게 중요한 독립출판에서 과거의 계획에 메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계획에 메이는 게 아니라 지금 내가 작업하고 있는 책이 어디를 향하는 게 더 나의 의도에 맞는지 아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제목을 바꿨습니다.

원래 제목을 아시는 분들이 제 주변엔 있을텐데요. 패닉의 달팽이 가사를 따서 '집에 오는 길이 때론 너무 길어'로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주변에 아는 서점 사장님이 은근히 별로란 눈치를 주셨고. 사실 저도 여러가지로 걸리는 점이 있었기 때문에(가사를 제목에 쓸 용기를 내기가 힘들더라고요. 법정팬미팅할까봐 두려웠달까?) 바꿨어요. 도움을 주셨던 사장님께 감사를 드리고요.


('스무 곳의 독립서점에 어쩌고~' 라던) 유통의 목표를 바꿨습니다.

언급한 바 있지만 10월 22일까지 20곳의 독립서점에 책을 입고하겠다는 말을 했어요. 그러나 슬프게도, 제가 입고문의를 너무 늦게 돌리기 시작한 관계로... 그것은 어려워졌고요. 그 뒤에도 '10월 22일까지 10곳의 독립서점에 내 책을 넣겠다. 천천히 하겠다.'라고 말해놓고 그때까지 아홉 곳의 독립서점에 입고 시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지금입니다. 그래도 저 계획의 표현 아래에 깔린 의미는 '20곳에서 10곳으로 줄여도 좋다. 천천히 입고 하는 게 맞다. 그래야 입고서점이 늘었다면서 홍보를 좀 더 할 기회가 생기니까'이기 때문에, 저는 꼭 많이 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지만. 어흠.


홍보의 목표도 바꿨습니다.

홍보의 목표가 뭐였냐고요? 열심히 홍보해서 1쇄를 다 팔아 2020년이 가기 전에 2쇄 찍는 거였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이런 ㅋㅋㅋㅋ 이 글을 쓰면서 제가 정말 많이 바꿨다는 걸 알게 되었네요) 그런데 그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긴 했어요. 원래는 최대 300부, 적으면 100부까지도 찍을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제 책의 사양으로 100부를 뽑으면 한 권당 가격이 2만원을 넘더라고요. 그리고 300부를 찍으면(옵셋기준) 지금 가격으로 마진이 0원이 되더라고요. 네, 이게 말이 0원이지, 사실 마이너스라는 거죠. 지금 제가 몇 권 뽑았는지는 비밀인데요. 많이 뽑았습니다. 그래서 저 목표를 보고 빵터질 수 있었고요. '차라리 리뷰 수를 목표로 세울 걸' 하는 생각이 드네요. 다음엔 그렇게 할래요.


내지 왼쪽 페이지마다 사진을 싣겠다는 이야기는 뻥이 되었고...

왼쪽엔 사진 오른쪽엔 글. 이렇게 하겠다는 거였는데, 실제로 이 기준이 흔들리진 않았습니다. 다만 모든 왼쪽 페이지에 사진이 들어간 건 아니라는 거죠. 사진을 뺀 부분들이 많이 생겼어요. 이런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1) 정신 없다 2) 포인트가 되는 사진이 빛나지 않는다 3) 굳이 보여주고 싶은 사진은 아닌데 억지로 채워야 한다는 게 너무 싫다. 결론적으론 사진을 빼고 넣고를 많이 했고 지금의 작업물에 완전히 만족하는 건 아닌데, 또 이 상태에서 가질 수 있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지 사진, 레이아웃, 내용이 바뀌었습니다.

좌측이 수정전, 우측이 수정 후입니다

음... 사실 이 페이지만 놓고 보면 이전 레이아웃이 더 예쁠지도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글이 저렇게 짧지 않거든요. 그래서 글의 시작점이 페이지마다 다르면, 독자가 적지도 않은 페이지를 읽으며 눈이 뱅글뱅글 돌아갈까봐 그냥 레이아웃을 변경했습니다. 그리고 사실 글은 연남동에서 기록했는데. 좌측 사진은 저희 집 앞에서 찍은 거고요(그래서 그게 내내 걸렸습니다). 우측사진은 연남동에서 다른날 찍은 겁니다. 그리고 사진을 다시 찍으면서 그 날 느낀 소회를 덧붙여서 수정했죠. 개인적으로  페이지의 느낌은 저도 좌측이  좋은데, 책에  페이지만 실을  아니므로 후회는 없습니다. 글은 우측이 더 마음에 들기도 하고.


목차를 넣기로 했는데 안 넣었습니다.

제목을 적어주자니 너무 길어지기도 하고, 전부 "멀어서 가까워지는 [??]"이런 식으로 제목을 달아서 반복해서 목차에 적기도 그랬고요. 그렇다고 도비라 목차를 굳이 넣어줄까 했는데 딱히 넣어야 할 의도가 떠오르지 않아서 뺐습니다. 근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니까 가을엔 가을의 글을 먼저 볼 수 있도록 도비라 페이지는 적어줄 걸 싶네요.


그 외에도 에폭시로 제목을 강조하기 위해서 악스트 처럼 하겠다면서 고집했던 유광코팅을 버리고 무광코팅으로 옮겼고요. 아래의 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사진들이 날아갔고요.


표지는 변경되었고 책갈피 시안은 모두 폐기되어 다시 만들어졌습니다.

시안 > 선택과 집중의 결과물

...그 외에도 정말 많은데 이루 말할 수 없으므로 그만하겠습니다.


이럴거면 계획을 왜 세웠냐

저는 계획을 세우는 게 마음이 편하거든요. 어차피 바뀔 수도 있다는 걸 아는데 기본적으로 계획 세우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어떤 일을 할 때 머릿속으로 과정을 그리고 작업에 들어갑니다. 근데 아무래도 내 머릿속의 이상과 실제는 달라서 파도처럼 달려갔다가 부서지고 그래요. 이게 예전에는 너무 싫었는데 이젠 그냥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건 어떤일을 하든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협업을 할 때도 그렇고. 일이 되려고 하는 거고. 책이 되려고 하는 거고. 적어도 오래 준비한 나를 부끄럽게 하진 말아야지. 내 안의 작가가 남긴 기록들을 잘 살릴 수 있게 최선을 다 해주는 게 나의 도리다. 그런 마음으로 바꿉니다. (초연하게 썼지만 물론 스트레스를 무척 많이 받습니다. 저는 요즘 탈모가 걱정이고.)


그래도 무척 즐거운 과정이었고요. 저는 입고 메일을 다시 쓰러 가봐야 겠습니다. 자꾸 저희 어머니께서는 그 많은 책들을 어쩔거냐고 하시는데, 이렇게 주위에서 조급하게 굴어도 중심을 잡아봅니다. 책은 많고, 계획은 앞으로도 무수히 변경될 것이고, 입고 서점은 늘 것이고, 북페어에도 나갈 것이고(이번주 토요일엔 커넥티드스몰마켓에 나갑니다), 책이 잘 팔리지 않든 잘 팔리든 그래도 여전히 저는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을 쓴 작가일 것이므로. 변하지 않는 것에 집중하다보면 어떻게든 자연스럽게 되겠죠. 그렇게 나아가려고 합니다,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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