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도 하고 불완전해도 충분한, 나
어릴 적부터 나는 무언가에 쫓기듯 살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내 어깨너머로 늘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모든 순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라는 말은 내 사전에 없었다. 항상 더 잘해야 했고, 더 완벽해야 했다.
우리 집은 말이 없었다. 부모님은 사랑한다는 말 대신 침묵을, 칭찬 대신 더 높은 기대를 주셨다. 첫째이자 장녀인 나는 그런 침묵 속에서 부모님의 얼굴색을 읽는 법을 배웠다. 그들의 말투, 표정의 미세한 변화가 내 생존의 나침반이 되었다. 어린아이에게 주변의 모습은 세상의 전부같이 보인다.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서면서 내 안의 무언가가 변하기 시작했다. "대체 왜 각자의 개성을 존중해주지 않는 거지?"라는 의문이 생겨났다. 어른들의 "하지 마라", "이렇게 해야 한다"는 말들이 더 이상 절대적인 진리로 들리지 않았다. 그때마다 나는 반문했다. "왜 안 되지?", "왜 꼭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
15살, 그 해는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어른들의 말이 더 이상 모두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나는 결심했다. '내 인생은 앞으로 내가 결정하고, 그 선택은 내가 책임지겠다.' 이 작은 깨달음은 내 안에서 자유의 씨앗이 되었다.
완벽주의는 마치 보이지 않는 쇠사슬과도 같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내 반항의 출발점이 되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그 무게는 나를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다른 방향으로 밀어냈다. 잘못된 훈육 방식은 깊은 상처가 되었지만, 그 상처는 역설적으로 나만의 길을 찾아가는 나침반이 되어갔다.
특히 성공이라는 것에 대한 집착은 극심했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남들이 정의한 성공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정의한 성공을 향해 달려갔다. 실수와 실패가 두려웠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건 나답게 살지 못하는 것이었다.
일은 내게 도피처이자 자아실현의 장이 되어주었다. 바쁘게 일하는 동안만큼은 내면의 불안과 공허함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고, 동시에 나만의 방식으로 삶을 증명할 수 있었다. 성과를 내고 인정받는 순간만큼은 잠시나마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그 불완전함 속에 나다움이 숨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반항하고, 부딪히고, 때로는 실수하면서 진정한 나를 찾아간다.
때로는 그저 '충분히 좋은' 상태로 만족하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성숙일지도 모른다. 완벽의 무게를 내려놓는다고 해서, 우리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우리 모두는 완벽하지 않기에 더욱 인간적이며, 그렇기에 더욱 아름답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진정한 성장은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리고 때로는 그 불완전함이 우리를 더 멀리, 더 높이 날아오르게 하는 날개가 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