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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yer Jul 14. 2016

'1인 몇 역까지 봤니?', <구텐버그>

뮤지컬] 이유가 확실한 독특한 컨셉 + 꿈을 가진 사람은 공감할 작품.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는 하지 않았습니다만... 공연 구성에 대한 스포일러는 존재합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봤을 때 더 강하게 기억에 남을 것 같은 공연이에요. '난 구성도 모른 채로 이 공연을 접해볼테다!'하는 생각이시라면, 스크롤도 내리지 마시고, 조용히 뒤로 돌아가주세요!!!


2013년 8월.

반은 의도하고, 반은 기회가 닿은 우연으로

초연 첫공을 챙겨서 관람한 공연.


우리나라에서 국사시간 혹은 국어시간에 들어봤을 '직지심체요절',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그리고 그와 함께 종종 언급되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이 뮤지컬은 그 '구텐베르크'에 대한 공연을 만든 두 젊은 청년 창작자들이,

그들이 만든 공연을 선보이는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이게뭐…이게무슨…ㅋ 푸흡…'하고 어색하고 당황스러웠던 공연.

하지만 달릴수록 어색함은 사라지고 몰입하게 되던 공연이다.



ㄱ. 의미를 크게 두었던, 내 첫번째 '초연 첫공'관람

라이센스 공연의 초연(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와 올라가는 공연)의 첫공(개막, 첫 공연)을 관람했던 것은 반은 의도하기도 했고, 반은 우연히 기회가 닿은 덕도 있었다.

'우연한 기회'의 측면을 먼저 말해보자면, 단순하다. '그 때밖에 시간이 안 되어서.'.


그리고, '의도했던 것'을 말해보자면, '공연 소개를 보고 뭉클해서, 꼭 보고싶다. 이 공연을 처음 맞이하는 자리를 함께 해보고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 읽었던 공연소개를 간단히 회상해본다. 음~ 브로드웨이에 자신들이 만든 뮤지컬을 올리고자 하는 꿈을 가진 두 청년이 각자 생업에 종사하면서 틈틈이, 열심히 만든 '구텐버그'에 관한 뮤지컬 '구텐버그'를 완성했고, 한 창고를 하룻밤동안 빌려서 리딩공연(정식 공연은 아니고, 만들어진 공연을 선보이는 약식형...이라고 하면 그런데, 음, 간단히 선보이는 자리!)을 여는 자리. 그 자리에서 더그와 버드가(그리고 피아노 연주자도 함께) 리딩공연을 하는 모습 그 자체가 이 '뮤지컬 구텐버그'의 내용이라고 했다.

그리고, 공연 전체의 소개글보다도 내 눈과 마음을 사로잡은 글이 있었으니, 바로 등장하는 두 주연 중 한 인물의 소개글이었다. 인물 소개가 내 정곡을 콕콕 찔러서 묘하게 기분 나쁘기도 했고, 그러면서도 계속 눈길이 갔다.(왜 내얘기 하지, 어떤 인물이길래 내얘기를 소개로 써놨지 했다 ㅋㅋㅋㅋ). 그래서 아예 복사해서 붙여넣기를 해, 바탕화면에 메모장으로 저장을 해두기에 이르렀다. 컴퓨터 포맷을 몇 번 하면서도 옮기고 옮겨 지켜냈던 글. 그 글을 옮겨본다.

두 인물 중, 대본을 쓴 작가 역할의 '더그 사이먼'에 관한 설명이었다. (작곡가 역할은 '버드')

순진무구함. 진실하고 순수함. 뭐든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모든 열정을 쏟는다.
이것저것 여러 방면에 경험이 많지만, 하나를 제대로 잘하는 것은 없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기운까지 북돋우는 강한 에너지와, 강한 집중력의 소유자이다.
그나마 호감이 가는 스타일이라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왜 저리 거들먹거리냐 하는 오해를 살수도 있는 타입이다.

[출처: 2013년도 뮤지컬 구텐버그 공연정보 상세소개 글 중에서]


당시에 막 서울뮤지컬페스티벌 서포터즈(정식 명칭은 SMF 프렌즈)활동을 마친 뒤였고, 나는 뮤지컬 기획자를 꿈꾸고 있었다. 정곡을 콕콕 찔려서 아프기도 간지럽기도 그리고 우습기도 했던 극중 '더그'라는 인물에 공연 소개와 인물소개만 읽고도 공감을 하며 푹 빠졌다. 그래서 가기로 했다.

'이 공연의 첫 맞이를 해보자!'는 생각을 실행으로 옮겼던 것, 내겐 의미가 컸다. 

'공연을 보러 간다 오예~'하는 마음이 아니라,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자를 응원하러 간다'는 마음이었다.



ㄴ. 공연의 배경, 그에 따른 특이한 형식: 화려함과는 다른 '부족함의 매력'

이 공연은 뮤지컬. 2인극이라고 하기엔 피아노 반주를 해주시던 연주자분도 전체적 공연에서 눈에 띄는 모습이었기에 3인 극이라고 소개하고싶다. 나는.


내가 만난 사람들 중 대부분은 '뮤지컬'하면, "오오..그 비싼 취미를..."하고 말했다. 그리고 '비싸다'라는 생각을 먼저 떠올리면서 '뮤지컬은 화려하다'는 생각도 같이 떠올리더군. 하지만, 이 공연은 그런 기대를 깨버리는 작품이었다. '한 작은 창고에서 젊은, 두 열혈 공연제작자가 잠재적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작품을 간략하게 선보인다'는 것이 공연의 배경이자, 컨셉이었기 때문이다.

'취객, 마을여인1/2, 어린애, 수도사(악인), 수도사의 심부름꾼, 헬베티카(여주인공), 구텐버그...'등의 인물 이름이 정면에 써있는 Cap, 우리말로 '야구모자'를 여~~~러개 늘어놓고 극의 순서대로 바꿔쓰면서 모자에 써있는 명사의 인물연기를 했다. 반주는 오로지 피아노 한 대. 앙상블을 종이인형과 모자들만으로 표현했던 공연. 회전무대는 문워크로, 무대장치들은 사다리 등으로 '떼우듯' 진행하는 공연이었다.


다른, 보편적인 뮤지컬들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이것저것 부족하지만, 그 점때문에 관객들의 상상력을 굉장히 자극하던 공연이기도 했다. 배우들의 대사로, 묘사로 상상을 하며 공연을 따라갔던 걸 회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어릴 적 유치원에서 구연동화(쌤께서 앞에 애들 앉혀놓고 그림 하나씩 넘겨가며 이야기해주시던 동화)듣던 것과 비슷했다. 그래서 '회상하다보니 더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공연이다.


컨셉 탓에 공연 시작도 참 신기했다.

보통 공연 시작시간이 되면 공연장에서 '시작시간을 알리는 알림음(주로 종소리)'이 울리고, 공연장 안내원 혹은 출연배우의 음성으로 '공연 중 주의사항' 안내가 들리고,  잠시 후에 배우들이 나와 시작을 하는데,

이 공연의 경우에는 시작 시간 전부터 배우들이 무대에 나와서 긴~ 계단같은 선반들에 모자를 쓸 순서대로 나열하며 정리를 하고있었고, 사다리나 기타 소품들 정리도 하고 있었다. 준비하면서 둘이 키득거리거나, 중얼중얼 대화를 하기도 했다. 관객들이 모이는 걸 한 두번 보고 후~하고 긴장을 풀듯 심호흡도 하고.

그리고나선 공연 시작 직전에 무대 뒤로 갔다가 짠~ 하고 재등장!

마치 학교에서 나와 내 동료 학생들이 팀프로젝트 발표를 준비하는 때를 연상시켜 웃기고 안쓰러웠다. 그런 공감도 되어서 더 몰입이 되었나보다.



ㄷ. 꿈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
: 나만 <맨오브라만차>와 비슷하다고 생각한걸까?

공연이 끝나고, 화장실로 돌진해 좀 울었던 기억도 난다. 가슴 벅차서 울었다. 어이구....(지난 일을 전지적 시점으로 돌아본다고 상상하며 회상하다보면 피식 웃게 되는 일들이 많군.) 그리고, '와 정말 공연을 만들고 싶다! 만들어야겠어! 열심히 하자!'라는 다짐을 더 굳게 다졌고, 에너지와 용기를 얻었다.

그래서 내게 비슷한 영향을 주었던(에너지와 용기를 주었던)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와 비슷한 느낌이다 라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를 했었다. 하지만 그 소개를 받고나서 '구텐버그'를 보러 갔던 한 사람은 '전혀 다른 느낌이던데?'하고 의문을 표했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던 내 실수였지. '내 느낌만 가지고 소개하지 말고, 소개 받을 사람의 스타일도 고려해서 말을 꺼내고, 권하자'는 생각을 시작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아! 그러고보니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에서도 공연 시작 전에 지하감옥 배경의 무대에 죄수복 차림의 배우들이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며 자리를 잡는다. 두 공연이 닮았다고 소개한 이유가 여기 또 있었구나!)



ㄹ. 불친절한 공연: '우리'만의 개그코드

'그들만의 리그, 우리만의 놀이'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사실, 아는 사람들끼리 얘기하면 말이 통하는 게 많아서 재밌긴 하다. 이 공연 속에는 '우리만의 개그코드'가 꽤 많았다. 여기서 '우리'란, 뮤지컬에 관심이 많고, 다양한 작품들을 알고, 출연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아는 사람들. 순간순간 같이 웃으며 즐거웠지만, 돌아보면 '참 불친절한 공연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뮤지컬 작품을 꽤 알고 있어야, 같이 웃어제끼며 관람할 수 있는 공연. 여러 뮤지컬을 본 적 없고, 뮤지컬에 관심을 그리 크게 갖고 있지는 않은 관객에게는 불친절한 공연이었을 것이다.

나는...많이 알고 있었기에 같이 웃었다. 이런저런 지나가는 농담들이 타 뮤지컬에서 보고 듣던 것들이었다.

그리고 흔히 만나는 '배우장난' 농담도 있었고.

(배우장난: 배우의 필모그래피_배우가 여태 참여했던 작품의 역할들 목록_을 가지고 하는 장난.

예를 들어, 뮤지컬 헤드윅에서 헤드윅 역을 맡았던 배우가 '헤드윅'이라는 모자를 보고서는

"아, 이분! 저랑 친해요!"라고 하는 식. 아는 사람은 웃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고 넘어갈 농담들이 꽤 있었다.)



ㅁ. 기억에 남는 넘버

마무리는, 가장 기억에 남는 넘버로.

한 넘버는 너무 심한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마지막 넘버. 가장 좋아하는데... 그걸 공유하고 싶은 마음은 꾹꾹 눌러담는다.), 다른 넘버 하나를 공유한다.

공연 중간, 인터미션 직전, 그러니까 1막 마지막 넘버.

(곡명을 클릭하시면 링크를 타고 영상으로~슝~)

♬Tomorrow is tonight

공부든, 운동이든, 하고자하는 일을 열심히 하다가 지칠 때 멜로디와 가사를 가만가만 들어보면(구텐버그 부분 멜로디와 가사에 집중해서) 힘이 나는 노래이다.

"오늘 밤 이순간, 역사의 운명이 갈린다!"



+그리고, 이 영상은 뮤지컬 구텐버그의 전체적 분위기를 짤막하게 보여주는 영상이라 소개한다.

스크롤을 이 밑바닥까지 내리며 읽은 분이라면, '난 뭐, 공연형식은 스포당해도 상관 없어'라고 생각하셨다고 가정하며~!


++공연 다 보고나서 공연장을 나서며 정말 귀여웠던게, 뮤지컬 MD(Merchandise. 공연 기념품이라고 보면 무방하겠다.)가 '구텐버그'라고 새겨져 있는 색색깔의 모자였던 것!

만약에 산다면 저걸 쓰고 다니는 건가...하는 상상을 하며 슝 지나갔다. 헌데, 아직 쓰고 다니는 사람은 한 번도 못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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