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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yer Sep 28. 2019

공연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영화 <김종욱 찾기>



영화 <김종욱 찾기>

  주인공이 올리는 공연에 여자 아이돌이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 실력도 안 되는 것 같은데, 연습 참여도 불성실하다. 그리고 공연이 있는 날에 지각하기도 일쑤다.


  어찌어찌 공연을 이어가던 어느 날, 지방 행사를 다녀오는 길에 차가 너무 막힌다는 이유로 "오늘 제 시간 안에 공연장 못 간다. 공연을 취소해야 될 것 같다."는 말을 공연 있는 날, 객석 오픈 직전에 전한다-객석 오픈은 공연장과 공연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공연 시작 20분~1시간 전부터 한다. 하지만 관객들은 꼭 5~10분 전에 우루루 입장하곤 하지. 출퇴근길의 축소판을 객석 입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사실, 이 장면을 '아무리 배짱 두둑한, 스타성 강한 인물이라고 해도 이게 된다고...?'하고 봤지만ㅋㅋㅋㅋ...


  아무튼 영화에서는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 당장 공연을 몇 분 앞둔 극장에선 단체로 비상이 걸렸다.

수습을 위해 바삐 공연장을 누비던 무대감독은 신경질적으로 외친다.

"누구든 노래, 대사, 안무 다 외우는 사람 있으면 세워!"


그리고 무대감독의 선배님이자, 출연 배우가 슬쩍 말한다.


"자기가 다 외우고 있잖아?"





공연이 뭐라고 생각해요?
저는, 약속의 예술이요.


예정된 시간에, 예정된 장소에서 진행한다는 점을 빼고 생각해봐도 공연은 약속의 예술이다. 그보다 더 '이것이 공연이다!!!' 확실히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는 것 같다.


예견된 이야기 진행에 따라서 배우가 대사를 하고, 조명 밝기와 방향, 음량, 배우의 등퇴장 타이밍 등 무대에서 구현되는 모든 것이 사전에 계획된 대로 진행된다.

이때, 타이밍은 큐 사인으로 확인하고, 행동을 실행에 옮긴다.

넘버-뮤지컬의 음악,노래- 앞 간주가 4번 반복될 때까지 정해진 위치까지 등장하는 것을 마친다,
반주 없이 배우의 노래 한 소절이 끝나면 바로 피아노 반주를 시작한다,
무대 위 특정 인물이 양 팔을 하늘로 뻗으며 높이 뛰면 조명을 전환한다,
누군가 퇴장하면 배경음악을 켠다,
암전 5초 후 전원퇴장한다...

이렇게 약속된 타이밍을 알려주는 사인을 '큐'라고 한다.


마치 영화<인셉션>의 음악같기도 하다.

꿈 속 세계에서 정보를 빼돌리거나 심는 사업을 하는 남자,
정해진 시간 안에 일을 진행하고 철수하기 위해서 동료들과 주고받는 신호가 있다.
바로, 특정 음악이 들려오면 꿈에서 깨어날 '킥'을 준비한다는 것.

꿈 속에서, 늘어지는 노래가 들리기 시작하면 어떻게든 '떨어지는 느낌을 만들' 킥을 준비한다. 그리고 계획된 시간 안에 꿈에서 깨어난다.



만약, 사전에 정해진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정해진 위치에 정확히 서지 않으면, 조명이 날 비껴간다.

특정 소품을 챙기기로 약속한 동료가 내 소품을 제자리에 두지 않으면, 무대 위에서 몇 분간을 소품 없이, 사고 아닌 척, 애드리브로 채워야 한다.

다음 장면을 위해 무대장치를 전환하고 퇴장하기로 했던 배우들이 깜박해버렸다면? 애드리브로 넘어갈 수 있다면 참 다행이겠지만,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외에도 배우가 대사를 까먹어서 타이밍을 놓치거나, 사건 진행에 중요한 소품을 백스테이지에서 안 챙겨나왔거나, 로맨틱한 장면인데 시뻘건 사건발생 조명이 들어오거나, 격한 결투 장면에서 소품인 칼이 부러져 파편이 날아가거나... 다양한 예시가 있다.

어떤 이유로든 계획한 대로, 약속한 대로 진행이 안 되는 돌발 상황을 '무대사고'라고 말한다.

그리고 매 공연마다 피드백을 할 때, 자잘한 무대사고들에 대해서도 예방책을 세워놓는다.


자유분방할 것만 같은 공연계는, 오히려 더 엄격하고, 딱딱 맞아떨어지는 걸 중요시 한다. 작업 방식을 파헤쳐볼 수록 창의적이거나 변화무쌍한 모습보다는 계획과 약속을 통해 만들어지는 정형화된 모습이 더 많이 보인다.


정해진 역할을 정해진 대로 수행하는 것.
매일 매시간 그렇게 진행하는 것.


그런데, 약속에 약속이 꼬리를 물고 진행되는 매커니즘, 착착 맞아 떨어지는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시스템으로 감성을 자극하는 형상을 보여주고 들려준다는 것이, 이런 기계적인 시스템을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감동을 받는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그런 점이 참 매력적이기도 하다.



여담

  영화<김종욱 찾기> 속 주인공 여자는 무대감독이다.

그녀가 작업하는 모습을 짤막하게 볼 수 있는데,

조명, 음향, 마이크, 세트의 움직임 등 무대에서 구현되는 여러 약속들에 큐 사인을 보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의문이 들었다.

대극장은 진짜 저렇게 하나? 규모가 커서 저렇게 해야 하려나?

소극장에서는 음향+조명 단일 기계로 한 분이, 배우 혹은 연출과의 큐사인 정리 후, 그대로 시행하시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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