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창 밖 빗소리보다 더 실감 나는 빗소리가 배경에 깔리는 오디오북으로 먼저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접했다.
소리가 함께하는 콘텐츠에는 유독 감정이 잘 이입되는데, 이 책은 잘 알려졌듯이 "도입부가 우울하다". 오디오북으로는 도저히 우울한 도입부가 감당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중요한 수험을 앞두고 있는 시기, 에너지가 쭉 빠지는 영향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시험 종료 후에 종이책으로 다 읽고, 맘에 든다면 오디오북으로 다시 듣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랜만에 맘에 들고 공감 가는 책을 알게 되어 기쁘다! 오디오북도 아껴서 듣고 있다!
영화 <소울>이 생각나는 소설.
텍스트보다 오디오 작품을 먼저 알게 되었을 때, 오디오북(윌라) 기획자 SNS를 통해서 '이 책은 어떤 면에서는 영화 소울과 유사하다'는 글을 읽었다. 연기할 성우 섭외 중, "영화 소울과 닮은 작품"이라고 소개하셨다고 한다.
영화 <소울>에서 재즈에 죽고 재즈에 사는 주인공 조 가드너는 프로 재즈 연주자가 인생 최대의 목표다. 그토록 바라는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분투한다.
책 속에서 노라가 다른 삶을 살아보는 기회를 얻었듯이 조 가드너 역시 기회를 얻고, 자신이 바라는 삶의 모습을 깨닫고, 그 삶을 살아간다. 이런 면이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와 닮았다.
영화 <소울>과 소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의 공통점은 또 하나 있다. 감상하는 사람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나는 삶의 풍성한 가능성을 누리며 살고 있는가?"
"나는 삶의 풍성한 가능성을 누리며 살고 있는가?"
소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서는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떻습니까?"라며 독자에게 질문을 건네는 문장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노라의 행보를 따라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마치 '이런 인간도 있어. 너는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후회를 하고, 어떤 꿈을 갖고 있었니?'하고 묻는 듯했다.
노라에게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
극단적 시도를 했던 건 아니지만, 나는 자정의 도서관 속 노라의 경험과 유사한 활동을 해봤다. 연기를 공부하고 훈련할 때, 인물과 이야기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했던 경험 덕택이다.
연기를 공부하고 훈련할 때, 일부러 주당 몇 편씩 영상 콘텐츠를 시청하고 분석하곤 했다. 늦게 시작한 만큼 경력이 없으니까, 이야기 전개와 인물의 행동 등에 대해서 나름의 공식을 익히고 있으면 연기를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했던 개인 공부였다.
하지만 정작 이야기 인풋이 많은 도움이 되기보다는, 여러 이야기를 접하며 돌아본 과거의 시간들을 통해 에너지, 말투나 행동 등 인물 표현 방식과 같은 연기 자산들을 얻을 수 있었다.
할머니 모시고 살게 되면서부터 가지 못했던 여름 바다 가족여행을 그리워하던 나, 공부로 내는 성과에 혈안이 되어 동생의 응원 동요가 방해된다며 화를 냈던 나, 부모님과의 대화 중에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받았던 나, 동급생과의 관계에서 자신감을 잃고 풀이 죽어있던 나.
지나고 보니 보이는 나의 잘못, 답답했던 모습 등이 쌓여 매일 밤 이불을 걷어찼다. 내가 왜 그랬지? 하면서. 만약에 각각의 상황 속에서 다르게 행동했다면 어땠을까, 좀 더 나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후회하는 밤도 많았다.
더 잘해주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더 좋은 것을 누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우울함으로 밀려드는 밤이면 새벽까지 잠을 설치다 텅 빈 거리를 걷다 돌아오곤 했다.
이야기 속 노라처럼 후회되는 각각의 인생을 직접 살아보진 못했지만, 새벽 조용한 거리를 걸으며 다른 선택과 행동에 꼬리를 무는 상상을 하다 보면, 과거에는 몰랐지만 지나고 나서 보이는 또 다른 문제들이 있었다.
그것들을 모두 해결할 수는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새벽 산책을 마무리짓곤 했다.
풍성한 삶을 살고 있는가, 대답은 Yes!
소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읽으며, 노라의 여정을 따라 나도 덩달아 한바탕 과거 선택과 결과를 쭉, 다시 한번 훑었다.
그래서 마치 책을 읽는 시간 동안에는 새벽에 거리를 걷던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책 말미에 노라가 그토록 도망치고 싶었던 삶에서 긍정적인 삶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붙들고, 누리는 모습을 보면서는 마음이 훈훈했다.
함께 고민하던 친구가 방향을 결단하고 나아가는 모습을 보는 듯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결과 지향적이며, 목표지향적 인간이지만, 목표로 향하는 과정 속에서 마주치는 삶의 다양한 가능성을 누리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한 지점을 향해 쉼 없이 달려가는 삶도 그런대로 멋지지만, 좀 더 관대한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과의 시간을 소중하게 누리는 현재의 모습이 더 맘에 든다.
231p. 그 순간 노라는 깨달았다. 자신이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