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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yer Sep 18. 2021

소설 <1984>

1984보다 더 먼 미래, 2021년에도 여전히.


대학에서 경영정보시스템 강의를 수강할 때, 교수님께서 '기술의 발전에 따른 편리함'과 더불어 '생각해볼 점'들도 제시하셨다. 기술이 발전하고, 적용 범위가 확장될수록 문제점도 함께 발생하기 마련이라고 하시며 고전을 몇 권 권하셨다.

"시험에 출제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경영학도로서, 이 강의를 들은 사람으로서 이 책들은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그때 권해주셨던 책은 바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그리고 조지 오웰의 <1984>였다.


대학에서 나는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공부는 열심히 했다. 풀어보라는 문제는 시험을 위해 억지로 하는 편이었지만, 이 책과 같이 '관련 있는 책'이나, '당시 이슈와 관련해서 개인적으로 추천해주시는 책' 등을 접하게 되면 즐거운 마음으로 부지런히 찾아다 대여해서 읽었다.

이 책 <1984>는 대학에서 독서를 권유받고 읽은 후, 이번에 두 번째로 독서한 것이다!


주의!
줄거리 및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1. 뮤지컬 <유린타운>은 이 소설을 모티브로 활용한 걸까?


주인공이 체포된 후, 수감자들이 모두 두려워하는 장소가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101호로 끌고 가!"
/
"제발 101호로는 데려가지 말아 주세요!"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한 뮤지컬 작품을 떠올렸다. 보고 싶어 하던 작품 중 하나였고, 아직 관람은 못했지만 배우로는 참여한 적 있는 뮤지컬 <유린타운>이다.


<유린타운>은 물 부족이 극심해지면서 식수, 씻는 물에 그치지 않고 볼일 보는 데 사용하는 물까지 통제되는 환경을 보여준다. 한 대기업이 화장실 요금을 받으며 '오줌 누는 물'을 관리하는데, 요금이 점점 올라간다. 이 요금을 댈 수 없다고 해서 노상방뇨를 하거나, 요강을 사용하다가 발각되면 "유린타운"이라는 곳으로 끌려간다. 볼일은 이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공동 화장실에서만 보도록 통제하는 법(규칙)이 마련되어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유린타운"으로 간 뒤 어떻게 되는지 아는 사람들이 집행자들과 그 관계자들 뿐이라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아주 끔찍한 어떤 곳"이라고 상상할 뿐이다. 그와 반대로 "외려 여기보다 나을지 몰라"라는 반대의 상상을 하는 사람들도 나타나지만, 이 역시 상상일 뿐이다. 확실한 정보가 아니다. 소문으로만 듣는 '유린타운'은 사람들의 공포감을 자극하고, '유린타운'으로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 사람들은 매일 동냥을 해서라도, 하루에 한 번이라도 '오줌 눌 물'값을 마련하려 애쓴다.


356p. "자네는 101호실의 정체를 알고 있어. 모두 다 알고 있단 말이야."
388p. "모든 사람들이 그 답을 알고 있어."


*여담으로, 다음과 같은 분들에게 뮤지컬 <유린타운>을 추천드린다.
블랙코미디를 사랑하는 분,
일반적인 뮤지컬과 다른 내용 전개를 갈구하는 분,
사회문제&철학적 문제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주는 뮤지컬을 찾으시는 분.

2. 내 기억과 전혀 다른 결말이었네?!


나는 이 소설의 결말을 다음과 같이 기억하고 있었다.

빅 브라더의 초상화를 보면서 걷도록 명령받아서 걷다가, 초상화를 올려다보는 순간, 등 뒤에서 머리로 총을 쏴서 사형당하는 결말. 그런데, 총알에 맞는 순간 빅 브라더 초상화를 향해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리며 끝.

그래서, 이번에 책을 다시 읽으며 굉장히 놀랐다. '내 기억'이 굉장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ㅋㅋㅋㅋㅋ


실제 결말에서, 주인공은 아직 육체적 죽음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하지만, 육신의 죽음보다 더 중요한 패배를 그리고 있다. 작품 초반부터 거듭 강조하던 정신적인 싸움에서, 주인공은 당에 완전히 패배했다.


286p."그래, 정말 옳은 말이오. 그놈들이 우리 마음속까지 들어올 수는 없지. 만일 인간으로 남아 있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느낄> 수만 있다면 어떤 결과도 얻디 못하더라도 우리는 그들을 패배시키는 셈이 될 거요. (생략)"
408p. 하지만 잘되었다. 모든 게 잘되었다. 투쟁은 끝이 났다. 그는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다.


결말에 대한 '기억'을 통해서 사람의 기억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ㅋㅋㅋㅋㅋ

비록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지만, 잘못 인식한 결말로 인해 느꼈던 충격적인 감정은 굉장히 강렬했다. 사실, 실제 결말보다 내가 잘못 읽을 때 느꼈던 전율이 더 강했다. 아마 처음 읽던 때, '내 취향과 더 가까운 장면 연출을 상상하며 읽었던 것'같다.


*기억보다 감정이 더 생생하게, 오래 남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전에 읽을 때도 어려웠던 '책 속의 책'부분은 이번에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음에 또 읽게 된다면, 좀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될까?


3. 믿기지 않는 2021년 모습들.


역자의 말대로, '오웰이 예언한 기술적 전체주의의 위협'은 일상 속에 넓게 퍼져 있다.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려거든 신체정보, 인구통계 정보, 거래정보 등을 제공해달라는 '필수 조항'들이 보편적이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편의를 누리기 위해 감수하는 약간의 찝찝함을 넘어서는 일들이 지금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437p.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상죄라든지 이중사고에 의한 과거 말살 따위도 없다.

작품 해설 중, 이런 문장이 있었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 말은 사실이 아니다.

지금은 2021년, 작품 속에서 '까마득한 미래'로 언급하는 때와 가깝지만, 현실에서 <1984>와 유사한 모습들이 보인다.


홍콩과 미얀마에서 있던 민주화 요구 움직임(아직 미완),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중국에서 전염병 관련 정보를 검열하고 차단한 상황 등.

그리고 가장 최근에 발생했으며 현재 진행 중인 탈레반의 프가니스탄 점령 및 공포 통치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아프가니스탄 전문 PD로 알려져 있는 김영미 PD님의 인터뷰를 보면, 인간 자유를 억압하는 사례임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게 끔찍하다.

아프간 실상, 김영미PD인터뷰. 약 16분.

민간을 억압하는 탈레반 전투원들은 사활이 걸린 세뇌를 받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과연, 생존과 직결되는 세뇌와 공포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존재할까?


이런 물음에 맞물려, 우리 조상들의 혁명사에 대해서 다시금 관심을 갖게 된다. 과연 그분들은 어떻게 필요를 인식하고, 꿈꾸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투쟁하고, 결실을 맺었던 것일까? 우리 역사 속 사회문제와 혁명, 운동 그리고 외교에 관한 이슈를 다시 공부해보고 싶다. 짬짬이 조금씩 찾아봐야겠다. 그러다 보면 쌓이겠지.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는 "난을 일으켰다"정도로만 언급되었던 역사적 기록 "홍경래의 난".

이에 관하여 근래에 공연 하나가 올라간다고 한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실연한다는 뮤지컬 <조선 삼총사>.

주인공 삼총사 중 한 명이 바로 "홍경래"다. 시험을 위해서 공부할 때는 쓱 지나가듯 봤던 인물들이 재조명받는 것은 흥미롭다. <광해>도 그랬고, <뿌리 깊은 나무>도 그랬다.


*역사 자체가 주제가 아니어도 당대 문제를 느끼고, 공감하는 방식의 역사 콘텐츠가 다양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게임 <반교:디텐션>. 장제스가 이끌던 국민당이 대만을 공포 통치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공포게임이다.

한편, '만약 그랬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으로 만들어진 콘텐츠도 있다. 게임 <울펜슈타인> 시리즈는 과연 '나치 독일이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고, 패권을 쥐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 속 디스토피아를 그린다.

우리나라에서도 역사를 소재로 한 RPG 게임(타임 앤 테일즈)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졌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알고, 현시대와 연결하며 문제를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는 콘텐츠가 다양화되었으면 좋겠다.

소설 <1984>가 2021년에도 영향을 주는 것처럼 과거 역사를 다룬 콘텐츠들도 현시대 사람들에게 문제를 보는 관점, 해결에 대한 실마리 등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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