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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yer Nov 18. 2023

보이고 들리는 것으로 인물과 상황 묘사하기

밥 먹다가 떠오른, 소설 쓰기에 대한 아이디어


"보이고 들리는 것들을 전부 글로 옮긴다고 생각하고 쓰면 어떨까? 모든 인물묘사와 상황묘사 요소를 그대로 글로 쓰면 소설이 되지 않을까? 영화 시나리오와 공연 대본 속 지시문처럼. 그보다 더 자세한 묘사를 하는 거야."

지난주, 식사를 하다가 퍼뜩 떠오른 아이디어다.


연기 공부를 할 때, 동료들은 나를 학구파라고 했다. 항상 대본에 뭔가 메모하고 있었고, 내 대본이 메모로 너덜너덜했기 때문이다. 나는 대본에 여백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인물과 배경의 상황, 인물이 어떤 것을 원하고 어떤 것을 어려워하는지 등을 아주 상세하게 연구하고 분석해 적어두곤 했다. 에세이가 아닌 창작 글을 쓰려거든, 대사와 지문 이상의 것을 상상하고 정보를 모아 촘촘하게 그리던 대본분석처럼 써보면 되지 않을까?


이왕 아이디어를 떠올린 김에 실습을 한 번해보자고 생각하며 카카오톡을 켰다. 나에게 보내기 대화방에 메모한 것을 그대로 옮겨본다.


예시 A: 그는 움직였다.

A처럼 쓰는 게 아니라 아래 B처럼 쓰는 것!

예시 B: 그를 둘러싸고 있던 어둠이 걷혀가며 연노란색으로 하늘이 물들어가는 시간이 되었지만, 그는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일행들은 재촉하지 않고 그의 결정을 기다려주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우리가 불리해진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는 더 지체하지 않기로 했다. 어느 것 하나 확실하지 않지만, 함께 불확실함을 무릅쓰고 나아가자고, 설득할 필요도 없었다. 생각에 빠지는 동안 잿빛으로 잠겨있던 그의 눈동자에, 결심의 순간 광채가 담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동료들은 그가 선택을 마쳤다는 것을 알아챘고, 이제 다들 준비하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의 애정과 믿음에 감사하며, 그 역시 오랜 시간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였다.

와 써놓고 보니 새삼 신기하다. 꽤 그럴싸한 짧은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갑자기 썼다. '그는 움직였다'로부터 시작한 상상이다. ㅋㅋㅋㅋㅋㅋ


오랫동안 써보고 싶었던 문학글이 있는데, 이렇게 몇 문장씩, 생생하게 그려지는 장면 조금씩 쓰다 보면 될 것 같다. 언제나 막막해서 '언젠가 쓰겠지요? 언젠가 쓸 겁니다. 아마도요.' 하는 식으로 다짐을 했는데, 그런 거창한 마음과 말보다 소소하고 집중한줄도 모르는 즐거운 몰입 실천이 필요했던가보다.



커버이미지 출처: 사진: Unsplash의 Kaitlyn B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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