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k5. Not while I'm around 뮤지컬 <스위니토드>
한 번은 고등학교에서 자유곡으로 가창시험을 볼 일이 있었다.
이 글의 제목으로 맘에 드는 어감으로 단어를 쓰고 싶어서 18세라고 했지만, 사실 고등학생 1학년 때였는지, 2학년 때였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시기는 가물가물해도 가창시험 자체를 기억하는 이유는, 이 자유가창 시간에 여러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음악쌤의 힙합음악 부정 썰이 있다.
한 동창은 느낌 있는 힙합 장르를 가창곡으로 선정했다가 '이건 음악으로 볼 수 없다!'라는 평을 들으며 0점을 받았다.
몇 년 전에 브로드웨이에서 랩 뮤지컬이 올라간다는 소식을 듣고는 가장 먼저 그 선생님이 떠올랐다.
음악 선생님이셨으면서, 왜 음악에 대해 편협한 기준을 두고 계셨을까? 가창시험에서 랩 하던 그 친구는 음악에 대한 확실한 취향이 있어서 멋졌는데 말이다.
아, 그 시험에서 본인의 음악 취향을 널리 전파한 것은 그 한 사람뿐만은 아니었다.
나도 그랬다.ㅋㅋㅋ
왜 그랬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내 동창 대다수와 음악 취향이 달랐다.
나는 뮤지컬 넘버를 좋아했다.
한 번 마음에 든다고 점찍은 작품이라면, 그 작품 넘버를 모두 외울 수 있을 정도였다.
참고로, 그즈음에 동창들이 보편적으로 좋아하던 음악 장르는 제이팝(J-Pop)과 아이돌 그룹의 곡(동방신기, 슈쥬, SS501, 2NE1, 빅뱅 등의 시대였다.)이었다.
내가 가창 시험에서 어떤 곡을 불렀는지 예상이 가는가?
맞다.
뮤지컬 넘버를 불렀다.
그것도 무반주로.
2010년도 초반에는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지금보다 덜 흥행했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 쇼 비즈니스가 오랜 기간 자리 잡고 있던 덕에, 영미권 작품들이 비교적 유명했다.
뮤지컬 중에서도 유명하고, 귀에 익고, 흥얼거리던 곡들은 대체로 영어 곡이었다.
예를 들면, 뮤지컬 지저스크라이스트슈퍼스타, 지킬 앤 하이드, 몬테크리스토, 레미제라블 그리고 스위니토드.
*당시 프랑스 뮤지컬을 라이선스 버전으로 들여올 즈음이었지만, 아직 유명하지는 않았다.
가창시험 직전에 나는 스위니 토드를 직접 관람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아쉬웠고, 그 작품에 굉장히 목말라 있었다.
*잔인한 줄거리 때문에 연령 제한이 있었다. ((이거 확인 필요))
이런 상황에서 가창 시험이 자유곡이라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보고 들으러 못 가니까, 내가 부르겠다는 열망이 생겼다.
고음을 깔끔하고 듣기 좋게 소리 내는 방법, 감성을 가득 담은 소리를 표현하는 방법은 몰랐다.
그래서, 이 작품 속에서 가장 '고음과 격한 감정'과 거리가 먼 곡을 선택했다.
그 곡이 바로 Not while I'm around.
스위니토드는 나름 유명한 뮤지컬이었지만, 악보나 반주 파일 구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아는 영어, 사이트를 모두 동원해서 검색해 본 결과, 원어 가사가 적힌 악보를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악보를 읽는 어플도 없던 때, 직접 악기를 연주할 스킬은 없어서 무용지물이었다.
그래서 좀 더 용기를 냈다.
무반주로 가창 시험을 보기로 한 것이다.
반주를 아무리 찾아도 없더라, 그런데 나는 이 곡으로 시험을 보고 싶다. 그런데 무반주이다 보니까 웃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비웃지는 말아 달라. 나 열심히 부르겠다.
노래하기 전에 동급생들 앞에서 대충 이런 다짐을 말했던 것 같다.
그런 다음 숨 한번 스읍 마시고 후루룩 불렀다.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것 세 가지.
하나, 내 얼굴은 무슨 제철소의 용암같이 뜨거운 흐르는 철처럼 달아올랐다는 것.
둘, '비웃지 말아 달라'라는 내 부탁에 팔을 포개 엎드리는 일명 '소라자세'로 감상하는 것으로 배려해 준 학우들의 모습ㅋㅋㅋㅋㅋ 지금 돌아보면 이게 정말 웃기다ㅋㅋㅋㅋ 얘들아 고마워 고마운데, 왜 그랬어ㅋㅋㅋㅋ왜 그런 거야 왜 그 자세였을까? 왜지? ㅋㅋㅋㅋㅋㅋㅋ
마지막으로, 내 노래가 끝나고 원곡을 들어보자며 하필이면 홍광호 배우가 같은 곡을 부른 영상을 틀어주신 음악선생님. 하……..
*홍광호 배우는 노래 잘하는 뮤배들 사이에서도 정말 노래 잘하기로 정말 정말 유명한 배우다.
어느 반에 누구누구가 무반주로 노래를 했다, 그런데 그 노래 좋은 것 같더라는 평이 학년에 퍼졌다.
내성적인 성향이었지만, 몇 번은 친구들 부탁으로 복도 구석, 대걸레를 세탁하는 화장실 옆 수돗가 등지에서 소규모 앙코르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이것도 돌아보니 웃기다.
마치 시트콤 한 장면 같다.ㅋㅋㅋㅋ
과거에는 반주도 없이 급하게 준비해서 후루룩 불렀던 곡이다.
하지만, 여전히 좋아하는 곡이라서 이번에는 반주를 도입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힘을 보태 불러보자는 마음으로 선곡했다.
[선곡 기준]
-오랫동안 알고 있던 곡
-다시 도전해보고 싶은 곡
-(역시나) 반주를 구하기 쉬운 곡
다행히 2010년도 초반보다 뮤지컬이 국내 및 세계에서 '익숙한 장르'가 되었다.
그리고 '스위니 토드'라는 작품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곳곳에서 공연했고, 팬들이 더 많아졌다.
덕분에 이전보다 더 수월하게 한글 가사와 반주를 찾아 노래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 분야가 흥행하면 좋은 점을 경험하고 있다.
자료를 더 편하고 빠르게 찾을 수 있고, 여러 배우와 팬들이 작업한 다양한 예시를 보며 참고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비슷한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에서 오는 즐거움이 있다.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지금 누리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마음 한 구석이 간질거리기도 하고, 싱숭생숭하기도 하고, 좋다.
시간은 많은 것을 해결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