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나를 포함 총 4명이었다. 이제 다들 마흔에 근접한 나이들이 되다 보니 다들 아저씨가 되어있었다. 그간 살아온 이야기들이 한 두 마디 오가고 으레 마흔 언저리의 남자들이 그렇듯 각자 자기 회사 이야기를 시작했다.
“야, 이번에 미국 쪽에 출장 다녀오라는데 귀찮아 죽겠다. 숙박이고 먹는 거는 최고급인데 갔다 오면 일만 쌓이니 영 내키지가 않는다.”
“얼마 전에 벤츠 뽑았잖냐. 비싼데 그냥 그렇더라고. 그냥 국산차가 나을 것 같다.”
술이 한두 잔 들어가고 취기가 조금씩 올랐다. 양 볼이 뺨 맞은 듯 붉게 달아올랐다. 모임이 마무리되고 애들이 계산대 앞에 다 모일 때 즈음. 내가 한마디 했다.
“어, 배부르다~ 얼마 안 나왔으니 오늘은 내가 살게.”
“어? 그래? 우와! 고맙다! 잘 먹었어!”
“아냐, 뭘 잘 먹어. 담에 더 맛있는 거 먹자. 여기 얼마에요?”
최대한 이야기에 집중하는 척하며 카드는 거들뿐이라는 모션으로 카드를 내밀었다. 귀는 온통 종업원의 입에 집중되어있다.
“네. 고객님. 37만 5천원입니다.”
할부를 하고 싶다. 하지만 하지 않는다. 그리고 표정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카드 회수는 심드렁하게. 마지막 대사까지 완벽해야한다.
“영수증은 버려주세요.”
그리고 돌아선다. 해냈다.
다음 날.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부어라 마셔라 했더니 마치 정수리를 정으로 치는 느낌이다.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숙취해소 음료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츄리닝을 입는 둥 마는 둥 입고 동네 앞 편의점으로 향했다. 곧장 숙취해소 음료가 있는 코너로 향했다. 많기도 하다. 한 개는 1,500원인데 2+1, 하나는 단품 1,100원. 머리는 깨질 듯한데 그 앞에서 가격을 보며 5분 넘게 고민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어제 쿨하게(정확히는 쿨해보이게) 계산 했던 내 모습이 겹쳤다.
‘이런 한심한 놈’
어제 37만 5천원과 오늘 숙취해소 음료 값은 사라진 것이다. 돈 잃고, 컨디션 잃고, 집으로 돌아가 침대 위에서 앓을 예정이니 시간도 잃었다.
지식은 돈을 주고 사야 내 것이 된다
2년 전. 한 권의 책을 출간한 적이 있다. 처음 출간이다 보니 책에 대한 애정과 기대는 하늘을 찔렀다. 책이 출간되면 적어도 주변 사람들은 모두 구매를 해줄 줄 알았다. 그 기대가 산산이 깨지게 된 것은 가까운 지인으로부터였다.
친한 친구라고 해봐야 나를 포함 네 명의 고등학교 동창들이다. 근 20년 동안 서로를 알아왔느니 꽤나 가까운 사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첫 책이 출간되고 전화를 걸어 제일 먼저 그들에게 책이 나왔음을 알렸다.
“야, 나 책 나왔다.”
다소 흥분한 내 목소리와 대조되는 목소리로 A가 말했다.
“그래? 축하한다. 책 한 권 줘봐. 읽어볼게.”
책을 쓰고 나서 배운 것은 절대로 저자에게 책 한권 달라는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열심히 쓴 글인데 공짜로 평가 받는 느낌이 썩 좋지 않다. 이놈은 패스.
평소 그나마 동네가 가까워 자주 만나던 B를 만나 책을 전달했다.(이놈도 안 사볼까 봐 공짜로 줬다.) 얼마 뒤 그 책은 얼마 뒤 방문한 그의 집. 그가 배가 고파 끓였다는 라면 냄비 밑에서 발견했다. 그 뒤로 난 깨달았다. 사람들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희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5년 째, 매주 월, 목요일에 글쓰기 무료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일과가 끝나고 저녁 7시부터 2시간 동안 꾸준히 해온 일이다. 바쁜 하루가 지나고 퇴근 시간이 되면 집에 가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푹신한 침대에 몸을 던지고 싶은 욕망이 넘친다.
그래도 이 강연 한 번이 글쓰기를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 함께 운영하는 동반자와 꾸준히 하고 있다.
강연을 하면서 가장 의욕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강연을 노쇼(No-Show)하는 경우다. 신청을 해놓고 오지 않는 경우다. 밤을 새면서 강연 자료를 준비하고 신청 인원수대로 출력을 해놓고 기다리면 신청자의 과반이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언젠가 강연 금액을 1만원으로 책정하고 입금을 받은 뒤 강연에 참석하면 금액을 돌려주는 방법을 써본 적이 있다. 그때 참석률은 100%였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언가 비용을 지불하면(돈이던, 시간이던) 그것에 대한 보상 심리를 얻으려는 경향이 있다. 돈을 냈기 때문에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가끔 강연 플랫폼에 올라온 무료강연에 참여하곤 한다. 참여할 때 항상 빵이던, 음료던 사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무료지만 나름의 비용을 투자하는 것이다. 일단 자신의 노력(금전)이 인풋되면 그것에서 ‘의미’를 찾는다.
친구들과 마시는 술 값 5만원을 지불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으면서 강연 1~2만원은 아까운가? 술과 담배 값은 허공에 사라져 버리는 돈이다. 하지만 배움은 다르다. 내가 마음 먹기에 따라 수 십 배의 환불 받을 수 있는 보물의 보고다.
일전에 책을 쓰겠다고 찾아온 한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철학에 대한 책을 쓰고 싶다고 말했고 얼마간의 시간을 들여 A4용지 100여 장에 이르는 글을 썼다. 마지막으로 원고를 마무리 할 때 즈음 그녀에게 원고를 쓰면서 참고한 서적의 목록을 요청했다. 얼마 뒤 그녀가 가지고 온 목록을 보고 깜짝 놀랐다. 10폰트 크기로 A4 용지 3장 분량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렇듯 한 권의 책을 쓰려면 저자가 참고하고 공부해야할 서적이 적어도 10종 이상은 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나온 한 권은 약 1만 5천원의 금액으로 또 누군가에게 10종 중의 한 권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단 1만 5천원이라는 금액으로 수 십, 수백 명의 머릿속을 헤집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다시 묻겠다. 한 권의 책으로 나의 지적 양식을 쌓을 것인가? 한 잔의 술로 내 간을 괴롭힐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