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봤자, 엄마 마음대로 할 거잖아요.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고.
오은영 박사가 진행하는 <금쪽같은 내 새끼>를 자주 챙겨본다. 화면 속 금쪽이는 울거나 폭력적이거나 화를 냈다. 말을 하지 않았고, 고집을 피웠으며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보였다. 한두 가지 특성을 가지거나, 모든 특성을 가지거나, 혹은 한 가지가 특별히 강하게 표출되는 금쪽이도 있었다. 애를 키우는 엄마다 보니, 텔레비전 속 금쪽이를 보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저 아이는 뭐가 저렇게 불만일까.'
피곤해 보이고 지쳐있는 엄마 모습에 과잉 공감하며 아이를 훈육할 방법을 빨리 공개해 달라고 다음 내용을 재촉했다.
오은영 박사의 솔루션 대신 금쪽이 부모의 모습을 살펴보는 장면이 나오면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이의 지나친 행동에 힘들 부모를 걱정하다, 결국은 부모의 행동이 원인이 되어 금쪽이가 힘든 유년시절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니 말이다. 어릴 적 상처를 그대로 안고 몸만 성인이 된 금쪽이가 또 다른 금쪽이를 낳았다는 사실. 왜 이리 낯익은지. 거울을 보면 내가 나를 보고 있어도 낯선데, 텔레비전 속 금쪽이 부모를 보면 낯설지 않았다.
강압적 부모 유형.
프로그램을 통해서 알게 된 말이다. 그 유형에 내가 포함된다는 사실도.
남편은 새벽에 나가서 한밤중에 퇴근했다. 아이들이 자고 있으면 물끄러미 바라보고 "언제 이렇게 컸어?"라는 말을 하며 아쉬워하는 아빠였다. 양가 부모님은 경제활동을 하시는 분들이셔서 도움이 필요할 때 SOS를 할 수 없었고, 늘 내가 네 명의 아이를 끼고 돌보아야 했다. 안 그래도 바쁜 일상, 아이가 한 명씩 늘어날 때마다 행복은 네 배가 됐지만, 내 손을 거쳐야 할 일은 그보다 더 늘었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아이들에겐 어떤 선택권도 없었고, 늘 내 계획대로 아이들은 따라 움직여야 했다.
늦어도 8시엔 기상, 8시 반까지 첫째, 둘째를 먹이고 씻긴다. 첫째, 둘째가 가방을 챙기는 동안 셋째 어린이집 등원 준비를 한다. 준비하는 동안 넷째가 깨면 모유수유를 한다. 넷째를 업고, 셋째는 유모차에 태우고 첫째, 둘째를 유모차 양 옆으로 세운다. 첫째는 학교에 보내고 둘째, 셋째는 어린이집에 가는 길. 둘째는 자기도 다리가 아프다며 유모차에 앉겠다고 징징대기 시작한다. 오르막길이라 힘들다는 건 알지만, 그 투정을 받아주면 더 길어질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 울면서 걸어 올라가는 둘째. 나는 입으로만 말한다. "힘들지. 엄마도 힘들어. 조금만 힘내. 저기 어린이집이 보이네." 넷째는 그 새 다시 쪽잠에 빠졌다.
아이는 넷이고, 내 몸은 하나라 육아를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빨간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눈빛은 날카롭게 목소리는 중후하게 깔고 말 한마디로 수십 명을 통솔하는 조교처럼.
그림책을 재밌게 읽어주는 엄마, 아이들과 함께 뒹굴며 놀아주는 엄마가 하루에도 여러 번 낯선 모습으로 아이들 앞에 등장한다. 충분히 아이 입장에선 혼란스럽고 못 미더운 엄마였으리라. 그래도 아무 말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 어렸고, 힘이 없었고, 늘 바쁜 아빠는 집에 없으니 기댈 곳은 엄마뿐이었으니까. 따르고 싶지 않아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아이들이었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안은 채 성장했으리라.
"띠리링"
"6시 반이야. 학교 갈 준비 하자. 첫째, 둘째."
"띠리링"
"7시 10분이야. 출발해. 얼른. 버스 놓칠라."
"띠리링"
"7시 40분이다. 셋째, 넷째 일어나. 밥 먹자."
"띠리링"
"8시 15분이야. 얼른 운동화 신어. 준비물은 다 챙겼고?"
아이들이 등교하는 아침. 우리 집 모습이다. 알람이 울리면 아이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다. 아무런 잡음도 없는 평화로운 아침시간. 준비물은 전날에 준비했고, 아침엔 밥 먹고 씻고 옷 갈아입고 출발하면 되는 일이다.
그러다 톱니바퀴 하나가 경로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내가 알아서 할게요. 좀 늦게 출발해도 돼요."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첫째가 알람소리에 맞춰 움직이는 아침을 거부했다. 지각하더라도 자신이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길 원했고, 준비물 챙기라는 말도 잔소리로 여겼다. 맞물려 움직이던 톱니바퀴들이 하나가 이탈하니 잡음이 생기기 시작했고, 둘째, 셋째, 넷째는 빠르게 반항기를 시작했다.
사춘기라 그렇다고 치부했다. 이 시간만 지나가면 될 일이라고 단정했다.
<금쪽같은 내 새끼> 프로그램을 보면서 서서히 현실을 직시했다. 투정 부리고 떼쓰고 울기만 하는 아이가 왜 그렇게 됐는지 금쪽이의 부모를 보면서 알게 됐으니.
이것보다 확실한 객관화가 있을까.
처음엔 채널을 돌렸다. 보고 있기 어려웠고 애써 부인했다.
'나는 저 정도는 아니야.'
모두가 잠든 시간, 어두운 거실에서 조용히 튼 프로그램. 금쪽이 부모에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자신이 가진 문제점을 제대로 인지하는 것부터가 변화의 시작이라고 했던가.
자라면서 하루에도 여러 번 바뀌는 엄마를 보며 혼란스러웠을 아이들의 마음을 이젠 내가 겪게 됐다. '어디서부터 잘못 됐을까.'
'모든 걸 잘 해내고 싶다는 내 욕심 때문이었을까.'
'네 명의 아이를 잘 키운다는 칭찬을 받고 싶었던 걸까.'
아이들이 하교하기 전, 멍하게 하루를 보내는 일이 많았다.
아이들과 사이가 틀어졌으니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해결책을 찾아야 할 텐데, 나는 혼자 고민했다. 이 난관을 해결할 사람도 나뿐이라고 생각했으니 얼마나 큰 착각 속에 빠져 살고 있었는지 말해 뭐 하겠는가.
솔직히 아직도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유명한 육아전문가들의 책과 영상을 봐도 현실과 달랐고, 참고할 순 있으나 아이들에게 그대로 적용되지 않았다. 네 명의 아이가 기질이 다 달라서 한 가지 방법으로 긍정적인 훈육 결과를 볼 수도 없었다. 느린 아이, 빠른 아이, 소심한 아이, 외향적인 아이. 각각에 맞는 훈육법도 공부해야 했고, 어느 날은 나도 모르겠다는 마음에 보던 책을 덮기도 했다.
내가 이런 노력들을 하면서 그래도 딱 하나 효과를 본 것은 대화였다.
"말해봤자, 또 엄마 마음대로 할 거잖아요."
라는 말을 들어도 끊임없이 아이들과 대화를 시도한 일이다. 말문은 굳게 닫힌 채 열리지 않았고, 이 엄마가 왜 그러나 하는 눈빛으로 묵살하기도 했다.
엄마가 변하려는 마음을 아이들도 알게 됐는지, 조금씩 말문이 열리는 아이들. 무작정 반대만 하는 엄마가 아닌 아이들의 의견을 듣고 조율하는 엄마가 되었다.
몸만 성인이 된 금쪽이가 금쪽이를 키우는 사태를 막기 위해 내가 노력해야 할 부분과 아이들도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걸 자주 떠올린다.
멋진 성인이 된 아들과 데이트하는 그날을 상상하며 오늘도 허벅지를 꼬집으며 버럭 하고 싶은 마음을 눌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