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속에서의 회피
한 뼘만큼 솔직했으면 어땠을까?
부산은 가로로 긴 모양이다. 다대포가 있는 쪽은 서부산, 해운대가 있는 쪽은 동부산. 내가 나고 자란 곳은 서부산.
대학이 서부산과 동부산 가운데 위치해서, 처음 중부산 땅을 밟았을 정도로 서부산 토박이는 처음 하는 대학생활보다 낯선 동네에서의 생활이 설레기도 했다. 수업이 비는 시간, 주변을 잘 아는 동기들은 짧은 시간에도 학교에 있지 않았다. 그들을 따라가면 처음 보는 사람들과 둘러싸여 있어야 했고, 긴장되는 마음을 추스르느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한 번의 경험으로 두 번은 마음먹지 않았던 동기들과의 외출. 나만의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새내기여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공부를 하지 않을 이유만 찾았다. 단과대학 바로 옆에 있던 중앙도서관은 그저 나무 한그루 같은 존재였고, 건물의 크기만 대충 가늠해 보며 내 갈 곳을 찾아다녔다. 우연히 발견한 나무판으로 된 간판. 페인트가 벗겨져 어떤 곳인지 알 수 없었고, 선배 중 누구도 거기가 어딘지 알려주는 이는 없었다. 궁금했던 나는 입구에 다다르자 환호성을 질렀다. 단과대학 입구에 위치한 만화방. 각종 만화와 다양한 주전부리,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메뉴까지 준비되어 있는 곳. 파라다이스였다.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이라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을 보면 그저 존경스러웠던 그때. 만화책을 보며 그대로 따라 그리는 여학생을 발견했다. 오히려 그 아이가 더 잘 그렸다. 만화가보다 더 잘 그리는 아이라니. 호기심이 생겼고, 그녀를 대각선에서 지켜볼 수 있는 곳에 자리 잡았다. 천 원을 내고 가져온 만화책 5권. 그 책을 다 읽기도 전에, 아이에게 인사를 건넸다. 알고 보니 같은 단과대학에 속한 전공과 학생이었고, 우리는 4년 내내 붙어 다니는 단짝이었다.
지금은 어디서 뭐 하고 사는지 서로 소식조차 알지 못하지만.
여럿이 함께 하는 무리보다 일대일 관계를 선호하다 보니 비슷한 성향의 친구들을 만나게 됐다. 서로 자석에 이끌리듯 만나, 둘만의 성역을 쌓아가니 비집고 들어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 함께 있어야 할 상황이 놓이면 그 애와 나는 상대를 배려하느라 말을 아꼈고, 다른 아이는 어색한 상황이 불편해 눈치를 봤다. 결국은 또다시 그 애와 나만 남는 시간이 되었고, 눈만 마주쳐도 웃음이 났다.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둘이서 쌓아 올린 성역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시간표 사이마다 비는 시간만 공유했을 뿐, 지금 나의 힘든 상황이나 생각을 서로 공유하지 못한 채, 학교 생활이 낯선 새내기처럼 타인과의 관계도 미숙했다.
'아빠 공장이 어려워서 어쩌면 휴학해야 할지도 몰라.'
이 말을 했을 때 친구가 속상할까 봐 말하기를 고민했고, 반대로 아무렇지 않게 반응하면 서운할까 봐 말하기를 고민했다.
고민만 하길 수차례. 여름방학을 지낸 후 곧 복학인데, 나는 그 애에게 휴학을 통보했다. 내 가정사를 이야기하면 아이가 불편해할까 봐 나름의 배려였지만, 친구는 서운한 티가 역력했다. 어느 날, 그녀는 부모가 반대해 접었던 미술을 다시 시작하게 됐다고 편입을 통보했다.
친구가 나에게 의논해 줬으면 함께 고민하고 기운을 북돋아 줬을 텐데, 아쉬웠던 마음을 친구에게 표현하지 못했다. 내가 한 행동이 있으니, 멋지다고 쿨한 척했다. 쿨하지도 못하면서.
그동안 매일 만나면서도 서로의 고민을 공유하지 못한 채, 수박 겉핥기식의 관계만 유지해 왔던 그 애와 나. 둘만의 성역이라며 아름답게 포장했지만, 우리는 각자의 성역 안에서만 살았고, 가끔 외출하듯 함께 어울렸던 것뿐이었다.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만큼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 그래서 마음 전부를 주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끊겨도 크게 아프지 않을 만큼 한 뼘 거리를 두고 관계를 맺는 것. 관계 속에서의 회피.
친구와 우정을 나누는 일에서도 회피 성향은 여전했다.
사회적 동물답게 사람이라면 누군가와 늘 관계를 맺는다. 그 관계 속에서 크고 작은 상처와 아픔을 받으며 더욱 견고해지는 마음의 거리두기. 자발적 고독이란 말로 포장한 채, 고고하게 괜찮은 척 하지만, 가끔은 언제든 찾아갈 수 있고, 통화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게 되는 마음이 한 뼘 거리만큼 존재했다. 외로움이었다.
한 뼘만큼 솔직했다면 어땠을까?
'난 휴학하기 싫은데, 해야 될지도 몰라.'
그 한마디면 됐을 텐데, 거창하게 앞뒤 상황을 설명하지 않아도 친구는 이해해 줬을지도 모른다. 부정적인 상상과 하지 않아도 될 배려를 하느라 놓친 인연들. 후회해도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라 가끔 소식이 궁금해도 닿을 수 없는 바람이 된다.
과거를 경험 삼아, 현재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 다짐하곤 한다. 의지를 가지고 노력해야 견고한 성벽이 조금씩 흔들릴 만큼 회피 성향은 뿌리 깊다. 마음 한 뼘을 떼어두지 말고 마음껏 주변 사람들 곁에 다가가자고, 상처를 받게 되면 그건 그때 일이라고 주문을 건다.
하루 한 번 나를 둘러싼 성벽을 흔든다. 언젠가는 작은 돌멩이 하나가 떨어지고, 금이 가고, 무너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