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를 쓰고 싶었다.
역시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에세이를 쓰고 싶었다.
에세이를 제대로 읽어본 적 없는 나는 일기라도 매일 써 보라는 책의 조언으로 일기를 썼다. 하루 중 기억에 남는 일을 기록했고, 학창 시절보단 일기가 출중해졌다며 셀프 엄지 척을 날렸다. 쌍 엄지 척으로!!
동시에 에세이를 읽었다. 유명한 작가의 에세이, 새로 나온 신간 에세이, 베스트셀러 에세이, 생각보다 인기를 끌지 못한 에세이. 어떤 수식어가 붙든 상관없었다. 에세이라는 장르에 속한 모든 책을 다 읽을 마음이었을 뿐. 에세이가 뭔지 궁금했다. 에세이를 제대로 써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된 에세이 읽기는 어느새 목적을 잃고 즐기는 수준까지 되고서야 멈출 수 있었다. 에세이. 너 좀 사랑스럽다.
글은 자꾸 써봐야 는다는데, 에세이 읽느라 글이 좋아질 시간이 없었다. 이제 써야 할 시간이었다.
에세이는 분명 일기와 달랐다. 형식이나 주제가 정해진 게 없고, 작가가 쓰고 싶은 대로 쓰면 된다고 하지만, 수백 권의 에세이를 읽고 깨달았다. 구성과 내용, 형식도 분명 존재했다는 걸. 아무렇게나 막,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글이 아니었다.
작가의 일상이 스토리텔링되어 글에 포함되니, 일기처럼 보일 뿐. 그게 다가 아니다. 일상을 통과한 사유 한 구절이 숨은 그림 찾기처럼 포함되어 있었다.
한 문장이라도, 한 문단이라도, 한 단어라도.
아이유와 BTS의 RM이 쓴 일기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들이 쓴 일기는 그대로 묶어, 한 권의 에세이가 되어도 손색없었다. 바로 이거구나. 에세이는 글쓴이의 생각이 포함되어야 했구나.
깨달음과 동시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내가 뭐라고, 내 생각이 뭐라고, 자신감 잃은 손가락이 움직이질 않았다. 내가 과연 당당하게 내 생각을 포함한 글을 쓸 수 있을까.
내 생각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으로 손가락이 움직이질 않았다. 에세이를 꼭 써야 할까? 답은 정해져 있었다. 쓰고 싶다.
그래서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을 다시 꺼냈다. 이번엔 그냥 읽는 게 아니라, 분석했다. 작가의 일상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찾아 표시했다. 에세이 한 꼭지마다 있는 메시지를 찾으면서 나도 모르게,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점점 샘솟았다.
글 속엔 철학자처럼 심도 있는 사유가 적혀 있는 게 아니었다. 평소에 나도 스치듯 떠올려 본 적 있는 메시지가 가득했다. 물론 잘 정리된 문장으로 마음에 닿게 쓰였다. "역시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그러면서 깨달았다.
에세이는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이 존재하는 글이어야 한다는 걸!
오늘도 쓴다.
내가 쓴 글에 누군가 밑줄 긋는 날이 올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