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3] 사랑의 작대기

by 모도

대학 때였다. 초등학교 동창을 찾는 사이트가 생기고 재미 삼아 내 인적사항을 입력했다.
이름, 하는 일, 연락처, 이메일, 출생학교 등 내가 누군지 알리는 소개글을 남겼다. 같은 초등학교를 나온, 그때 그 시절 친구들이 떠올라 슬그머니 웃음이 흘렀다.

인터넷 뉴스에선 많은 사람들이 몰려 사이트가 다운되기도 했다는데, 생각보다 연락은 오지 않았다. 호기심은 이내 실망으로 바뀌고, 기억나는 친구들을 찾아보니 등록되지 않은 사람으로 뜨기만 했다.
엄청 유행이라더니, 그렇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가입한 것도 잊힐 때쯤, 쪽지가 도착하기 시작했다. 동창들이 군대에서 휴가를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건수든 생기면 감사할 일 아니던가. 아무나 걸리라는 마음으로 도착한 쪽지에 낚인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셋이서 만나 밥을 먹고 있으니, 두어 명이 도착했고, 자리를 옮겨 술을 한두 잔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우르르 몰려오는 아이들. 결국은 단체석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자기가 쓰던 술잔과 젓가락을 양손에 들고 오는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하던 그때.
이름은 생각나지 않아도, 얼굴은 다 알아보겠던 아이들. 개구쟁이 었던 모습, 흰 콧물 자국을 달고 있던 모습, 요조숙녀 같았던 모습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친구들에게 난 어떻게 비쳤을까, 궁금할 때쯤. 시작된 첫사랑 이야기.
"니가 얘 좋아했다이가."
"에이. 아니지. 얘는 쟤를 좋아했지. 편지 써서 주고 막."
"난, ㅇㅇ한테 선물도 받았었다이가."
"오오오오오"
첫사랑 이야기는 비워지는 술병만큼 끝나지 않는 천일야화였다.

모두들 기분에 취하고 술에 취했던 그날.
사랑의 작대기는 열심히 오고 갔다. 아무도 모르게 눈빛으로, 손짓으로, 은근한 터치로.
혹은 대놓고 들이댔다. 첫사랑 이야기는 이내, 지금 사귀는 사람 있냐는 호구조사로 이어졌다.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기 시작하는 아이들. 화장실 간다는 아이는 그 후로 볼 수 없었고, 술 가지러 간다는 아이는 술을 빚으러 갔나 보다.
제일 처음 만나 밥을 먹었던 세 명.
초등학교 때 전교회장이었던 녀석, 그 녀석이 달고 온 친구 그리고 나는 남은 술만 비우고 일어나자며 마지막 의리를 불태웠다.

술병 밑바닥에 깔린 술을 모으고 모아서, 새우깡 하나로 마무리하고 필름이 끊겼던 그날.
나는 전교회장을 따라 나온 그 녀석과 눈이 맞았다. 미쳤지. 의리를 세우다, 내 발등을 찧고 말았다.
의리로 마신 술 때문이었을까.
연애 7년에 결혼 생활 18년이 되는 지금까지, 의리 그게 뭐라고 지키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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