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은 나에겐 큰 숙제였다. 학창 시절엔 일기와 독후감, 대학 땐 친구들과의 편지 교환, 취업 준비할 땐 자소서. 언제까지 제출해야 한다는 말만 들어도 스트레스가 치솟았다. 식은땀이 나고 심장은 제멋대로 쿵쾅댔다. 글을 쓴다는 것은 뿌연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산길을 어떤 도움도 없이 혼자 걷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보태야 한다는 조건은 따를 수 없는 명령 같았다.
“내 마음이 어떤지 생각해 본 적 없다고요.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때 알게 됐다. 내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갖고 싶어요.’ ‘하기 싫어요.’와 같은 투정 섞인 말도 해 본 적 없다는 사실을.
감정 표현에 서툰 내가 엄마가 되면서 문제점은 더욱 두드러졌다. 아이가 울거나 짜증을 내면 나름대로 노력해 보아도 달래 지지 않았다. 결국, 분노에 찬 목소리로 아이에게 고함을 질렀다. 자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깊은 자괴감에 반성하는 것도 잠시, 똑같은 실수는 반복됐다.
강연을 찾아보고, 책을 빌려 보면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을 구했다.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고 적절한 대응 방법을 알려주는 것. 긴 설명 끝에 결론은 하나로 모아졌다.
“우리 첫째가 뚜껑이 안 열려서 화가 났구나. 뚜껑 열어주세요. 해볼까?”라고 아이에게 엄마는 차분한 목소리와 행동으로 가르쳐야 한단다. 할 수 없었다. 아이의 짜증 섞인 목소리만 들어도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했다.
내 감정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는다? 불가능했다. 아이가 짜증 내면서 울기 시작하면 금세 불안해지고 화가 났다. 아이의 감정을 읽으라는데 읽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났고, 내 아이가 나처럼 감정 표현이 서툰 어른으로 성장할까 봐 불안했다. 아이에게 화내지 않기 위해 노력한 순간, 나는 나에게도 화를 내는 딜레마에 빠졌다.
“미정아, 엄마랑 아빠 싸운 거 외할머니한테 말하면 안 돼. 외할머니 속상하시니까.”
“쪼그만 게 못 하는 말이 없네.”
“어른이 말씀하시면 ‘네’ 해야지.”
종알종알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던 입을 멈추게 한 말들이 떠올랐다.
하고 싶은 말도 많았고, 궁금한 것도 많았던 나. 어린 나는 걱정이 많았다. 내가 말을 하면 외할머니가 걱정하신단다. 또 내가 한 말이 버릇없는 말이라 엄마한테 혼나는 건 아닐까 하는 눈치도 봤다. 하기 싫다고 말하면 나를 미워하면 어쩌지 고민했다. 어린 나는 어른들의 웃음 섞인 농담에도 웃을 수 없었다.
“아이고, 우리 미정이 착하다. 지금처럼 누나답게 잘할 거지?”라는 주문은 ‘하기 싫다’는 말도 ‘놀고 싶다’는 말도 참게 했다.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들은 눅진하게 쌓여만 갔다. 계속 말 잘 듣는 착한 누나가 되어야 했던 나. 쌓이던 말들은 어느새 기억나지 않았다. 지우개로 지운 듯 희미한 자국만 남긴 채, 내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잊혔다.
내 마음을 참고 사는 게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이 문제가 됐다. “엄마, 있잖아. 아빠 오늘 만화방 갔다!” 한 마디에 저녁 밥상이 뒤집어졌으니.
칭찬과 관심을 받고 싶었던 어린 나는 말을 아꼈고, 마음 표현에도 무심해야 했다. 아파도 참았고, 슬퍼도 참았다. 좋아도 티 내지 않았고, 두려워도 괜찮아야 했다. 모든 것에 아무렇지 않아야 했다.
내가 내 마음을 들여다봐도 검은색 물감을 풀어놓은 물처럼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내 이야기를 쓴다는 일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었다. 누구보다 나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나라고 말하지만, 나에겐 해당되지 않았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는 나도 키웠다.
“잘 안 돼서 속상했구나. 이렇게 해 볼까?” 아이에게 하는 말이지만, 나에게도 하는 말이었다.
“아이의 감정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해서 속상했지? 괜찮아, 정말 좋아졌잖아.” 자라면서 듣지 못했던 말들을 나는 아이를 통해 나에게 해주었다.
“괜찮아. 하기 싫을 수 있어. 좀 쉬었다가 다시 해 볼까?”
아이들의 짜증 횟수가 줄어드는 만큼 나의 화와 불안도 줄어들었다. 크게 웃는 아이들의 얼굴은 내가 계속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됐다.
감정 표현을 해야 하는 상황을 상상하며 말하는 연습 하듯 글을 썼다. 일기처럼 쓰기 시작한 글은 어느새 노트를 가득 채웠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나 자신을 알아가는 일. 글 쓰는 일은 그렇게 시작됐다. 에세이를 읽다 보면 작가님들은 들끓는 마음을 표현할 곳이 없어 일기를 썼다고 하셨다. 나는 서면으로도 표현하지 못했으니 묵은지 보다 더 고약한 감정들을 마주 해야 했다.
감정 표현을 연습하기 위해 끄적이던 노트에 나도 모르게 그 감정을 느꼈던 기억을 적어봤다. 어린 시절, 친할머니께 사랑을 구걸하던 내가 생각났다. 엄마가 남동생만 좋아한다는 생각에 삐졌던 날. “할머니, 손주들 중에 누가 제일 좋아?” “나지?” 그러면 “당연히 우리 미정이가 제일 좋지.” 해주시던 할머니와의 추억. 엄마가 나 몰래 남동생 밥에만 계란 프라이를 깔아줘도 괜찮아지는 한마디였다. 계란 프라이 못 먹어서 속상한 마음도, 할머니의 손녀 사랑도 선명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런 순간들을 그러모아 한 줄 한 줄 내용을 채워갔다. 올해 드디어 일기가 아닌, 에세이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설레는 마음도 두려운 마음도 공존하는 지금. 나만 알아보게 쓰던 글에서 누가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친절한 글을 쓰는 일은 까다로웠다.
누가 읽을까 봐 나만 알아보게 썼던 습관은 하루아침에 고쳐지지 않았다. 주관적인 감정에 치우쳐 쓴 일기와 다르게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며 써야 해서 에세이를 쓰는 일은 나에겐 도전이었다.
검은색 물로 가득 채워진 기억 속에서 그때의 나를 끄집어내는 일은 어려웠다. 생생하지 않은 기억을 거꾸로 되짚어가며 떠올렸다. 텔레비전 앞에 앉아 드라마를 보듯, 제삼자가 되어 상황을 바라보았다. 왜 이 장면이 떠올랐는지, 내가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수많은 질문들을 주고받는다.
어느 순간, 번쩍 스파크가 일고 소름 돋는 희열을 느꼈다. 성찰이라고 표현할 만큼 거창하진 않지만, 내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각성하듯 알게 되는 경험은 신선했다. 앞서 소개했던 에피소드에서 갓 한 아침밥을 통해 엄마의 사랑을 확인했던 어린 나를 만났던 일처럼.
에세이를 쓰는 일은 나에게 좋은 선례가 되었다. 수학 문제를 배운 대로 풀지 않았는데 정답을 맞힌 기분. 맞춰서 기분 좋아진 덕분에 또 도전할 용기가 생기는 마음. 한 번의 경험으로 충분했다.
매주 한 편의 에세이를 쓰면서 나도 몰랐던 나를 만나는 시간은 오히려 기다려졌다. 45년이나 모르고 살았던 나를 이제야 조우했으니, 우연히 만난 친구처럼 반가울 수밖에.
아직은 의식적으로 좋은 내용만 쓰게 된다. 나빴던 나, 부끄러웠던 나, 실패했던 나까지 만나려면 아직도 수많은 밤을 새워야겠지만, 기꺼이 그러겠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요즘 내가 딱 그 짝이다. 즐거운 도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