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완벽한 T-성격이다. 공감받기 위해 꺼낸 나의 대화 주제는 어느새 싸움의 소재가 된다. 손뜨개는 구부정한 자세로 오랜 시간 앉아 있다 보니 목, 등, 손목, 손가락 등 많은 곳이 아파 온다. 하지만, 작품이 완성됐을 때 오는 성취감. 그 벅찬 감정이 좋아서 아프다는 말을 입에 달면서도 계속하게 된다.
“아프면 하지 마. 안 하면 되잖아. 니가 좋다고 해놓고 왜 나한테 아프다 그래?”
남편의 한 마디는 무거운 철문을 힘껏 닫은 것처럼 나의 입을 다물게 한다.
책을 읽다 보면 눈이 침침하니 목을 앞으로 쭉 빼게 된다. 좀 더 잘 볼 거라고. 하지만 그 자세는 모두가 지양하는 거북목 자세. 안 그래도 작은 키에 굽은 등. 거북목까지 될 수 없다고 스트레칭하면,
“책을 맨날 그렇게 읽으니까 그렇지. 취미로 조금씩 읽으면 되잖아.”
라는 말이 활시위를 당겨 날린 화살처럼 귀에 퍽 꽂힌다.
연애 때는 몰랐다. 소심했던 나는 소신껏 말하는 남편의 말이 왜 그렇게 좋았을까? 필터링 없는 말들이 비수가 되어 꽂히게 될 줄은 내 미처 몰랐다.
그러다 보니, 공통관심사에 대한 대화가 고팠다. 이제 막 말을 시작하는 아이를 붙잡고 털어놓고 싶을 만큼, 누구라도 좋았다.
온라인 친구 찾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기웃거리고 눈치 보면서 가입과 탈퇴를 반복했다. 지역에 따라 모인 카페, 연령에 따라 모인 카페, 취미가 같은 사람들끼리 모인 카페 등 많고 많은 카페 중에 내 마음을 사로잡는 곳은 없었다.
우연히 추천 카페로 뜬 이름 하나. 연령에 따라 모인 카페였다. 이제 막 시작된 카페여서 활동은 많지 않았지만, 서로가 친밀했다. 같은 연령대라는 이유로 많은 분야의 공감을 나눌 수 있었다. 운동, 취미, 음식, 시댁, 남편, 아이들까지 모든 내용들이 흥미로웠다. 눈팅을 시작했다. 올라오는 글, 사진들을 보면서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카테고리를 찾기 시작했다.
일상 수다로 시작했던 카페 활동은 점차 범위를 넓혀 갔다. 다이어트, 요리, 손뜨개, 독서. 드디어 내가 속하고 싶었던 공통관심사를 가진 분들을 만나게 됐다. 좋은 글을 발췌해서 게시하는 사람, 읽은 책을 추천하는 사람, 독서 모임을 추진하는 사람. 좋았다. 드디어 못다 한 말들을 함께 나눌 이를 만났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기뻤다.
모든 글에 댓글로 공감을 표했다. 기쁨을 한껏 표출했다. 누군가의 깜짝 이벤트에도 서슴없이 참여했다. 3행시 댓글 달기, 밸런타인데이 기념 이벤트 등 참신하고 재밌는 댓글 놀이에 많은 상품도 받았다.
소소한 재미에 푹 빠져 살던 어느 날. 누군가 올린 첫사랑 이야기를 읽다가,
“흠, 나도 그럴 때 있었는데... 잘 살고 있나?”
하는 궁금증으로 시작된 나의 첫 글쓰기.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한 ‘첫사랑 연재’는 지금도 가슴을 쿵쾅거리게 한다. 벅찬 감동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회원들의 많은 댓글. 대댓글로 남긴 “다음 편 언제 나와요.” 한마디에 잠 못 이룬 나였다. 회원들의 뜨거웠던 반응의 힘이었을까? 오는 잠도 떨쳐내고 매일 밤 늦은 시간까지 나의 첫사랑 이야기를 썼다. 매일 올리는 게 약속이라도 된 것처럼 일주일 동안 1일 1편 했다. 힘든지도 모르고 썼던 글. 재밌기만 했던 글쓰기. 꿈이라는 작은 씨앗이 뿌리내리는 순간이었다.
댓글 중에 보였던 ‘브런치’라는 단어. 처음 보는 플랫폼이라 궁금함에 검색했고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첫사랑 이야기를 붙여 넣기 해서 ‘작가 신청’을 눌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모한 도전이었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던 첫 도전은 무참히 실패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작가 승인에 실패하면 받는 시무룩 금지 메일은 한순간에 자신감을 쪼그라들게 했다.
주로 소설을 읽는 나에게 ‘에세이’라는 분야는 생소했다. 낯선 분야. 곧바로 포기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불쑥 치고 올라오더니 머리를 꽉 채웠다. 그래서 한동안 ‘브런치’를 생각하지 않았다. ‘브런치’ 아니어도 날 응원해 주는 회원들이 있는 카페가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던 그때였다.
‘아무튼, 손뜨개’라는 책을 만나게 된 것이 운명일까. 평소에 손뜨개를 좋아했던 나는 그 책을 쓴 작가를 검색해 보았다. 실제로 평소에도 손뜨개 모임을 할 정도의 대단한 니터였다. 그런 사람이 쓴 책이라면 읽어보고 싶었다. 세상에, 에세이 책을 스스로 선택한 기념비적인 날. 그 날을 기록하기 위해 인스타를 시작할 정도였다. 에세이를 스스로 선택해서 읽고 쓴 후기를 시작으로 나의 북스타그램 활동도 시작된 것이다.
북스타그램을 시작하고 1년 동안 많은 유형의 글을 읽었다. 소설, 에세이, 자기 계발서, 산문, 시까지 잡히는 대로 읽었다. 틈틈이 ‘브런치 성공 후기’도 챙겨보면서. 무엇보다 승인 메일이 하루 만에 도착했다는 후기는 온몸에 전율이 일게 했다. 짜릿했다.
‘내가 받은 메일도 아닌데 이 정도라니...’란 생각에 계획적인 도전이 시작됐다. 몇 권의 에세이를 읽었다. 어떤 식으로 써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공부하는 마음으로 글의 구성을 분석했다. 글을 읽고 소재와 주제를 정리했다. 여전히 막연했지만, 그래도 길이 보였다.
시무룩 금지 메일을 받은 후, 1년이란 시간을 보내고서야 ‘이제 써보자.’라는 마음이 먹어졌다.
‘브런치 도전용’ 폴더를 만들고, 글을 채웠다.
내가 잘 아는 이야기, 내가 재밌게 쓸 수 있는 이야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하지만, 쓰면 쓸수록 이상해지는 글들. 최선이라고 쓴 세 편의 글이 오히려 내 능력의 한계를 드러나게 할 것 같았다.
나름 공부하고 쓰는 첫 글이라 그랬을까. 모든 좋은 기운을 첫 글에 쏟아부은 기분이라 딱 한 편만 첨부해서 ‘작가 신청’을 눌렀다. 긴 일주일의 기다림을 시작했다.
한밤중에 보낸 메일. 제대로 보냈는지 확인했다. 수신 확인을 눌러 읽었는지도 확인했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메일함만 보게 되는 건 다음 날까지 이어졌다. 억지로 책을 읽어봐도 눈에 담기지 않는 오전을 보내고 방학 중인 아이들과 정신없이 오후를 보냈다.
저녁 준비 전, 습관처럼 메일함을 확인했다.
‘헉!!’
숨을 멈췄다. 브런치의 시무룩 금지 메일과는 확연히 달랐다. 정말 하루 만에 승인 메일이 도착했다. 핸드폰을 두 손으로 모아 쥔 채 발을 동동 구르며 좋아했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선물을 받은 아이들처럼 마구 신났다.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은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리고 메일만 계속 읽고 또 읽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2023년 2월 21일.
내 생일을 3일 앞둔 그날. 최고로 멋진 선물을 받았다. 꿈이라는 작은 씨앗이 드디어 싹을 틔운 날. 한 해를 되돌아보며 정리하는 지금, 최고의 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봄날이었고, 찬란한 날이었고, 윤슬이 비치는 바다 한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었다. 들뜬 마음. 온전히 누리는 한 해를 보내며 기념하고 즐겼다.
내년엔 싹을 키워 꽃을 피워 보고 싶다. '열매를 수확할 수 있으면 더 좋긴 할 텐데.'라는 욕심은 잠시 내려놓고 흙을 단단하게 그러모아야겠다. 흔들리지 않고 꼿꼿하게 설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