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무튼, 건강이 최고

by 모도

by 모도

청천벽력. 다른 말로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과 실제로 일어난 일의 무게는 달랐다.


평소와 같은 아침. 아이들을 등교시키는 일에 모든 기운을 다 쓴 기분이었다. 고단한 몸을 이끌고 ‘드르륵 드르륵’ 원두를 갈았다. 갈린 원두를 거름망에 올려 조르르 물을 붓고 정성껏 커피를 내린다. 빠르지 않게 너무 느리지도 않게 내린 커피 한 잔은 졸리는 눈을 뜨게 하고 나른한 세포들을 정신 차리게 하는 일용한 양식이 된다.


커피를 내려 이제 막 한 모금 마시려는 순간. 익숙한 멜로디가 들린다. 핸드폰 화면을 보니 ‘늘 내 편인 엄마’라는 글자가 깜빡였다. 바람 불면 일을 쉬는 엄마는 종종 기쁜 일탈을 선물했기에 잔뜩 기대감이 부풀고 만다.


자갈치를 가면 비릿한 냄새가 풍겨온다.

엄마의 냄새. 엄마의 옷에서 머리카락에서 손톱 사이에서 나는 냄새다. 생선을 파는 이모들은 나무판자로 얼기설기 짠 나무 상자에 담긴 생선을 경매로 산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주머니를 꽉 채우기 위해 새벽부터 바삐 움직인다.

반면, 엄마는 일정한 크기의 고등어를 나무 상자에 가지런하게 담는 일로 새벽부터 바삐 출근한다. 고등어의 크기에 따라 한 박스에 담는 마릿수가 다르니 손보다 빠르게 머릿속 뇌세포를 움직여야 한다. 엄마는 ‘내가 이래서 치매는 걱정 없다니까.’라며 우스갯소리를 한다. 듣는 딸은 한껏 웃지 못하지만, 적당한 크기의 미소와 웃음소리를 준비한다. 왠지 엄마의 말은 ‘내 걱정은 말어. 힘들어도 할 만해.’라며 딸의 마음을 다독이는 말 같아 마음껏 웃지 못한다.


일한 만큼 돈을 받는 엄마는 휴일도 없이 일한다.

물론 고정적으로 쉬는 날이 있긴 하다. 등불로 고등어를 유인해 포획하는 작업을 하지 못하는 월명(음력 보름). 달이 밝아 고등어를 잡지 못하니 단체로 쉬는 거다.

가끔 바람이 불어 선박이 일하지 못하면 쉬는 날도 있다. 바로 엄마와 나의 기쁜 일탈이 가능한 날. 엄마는 갑자기 쉬는 날 나에게 꼭 전화한다. 점심 먹자고. 밥을 핑계로 만나 낮술도 하는 급만남을 엄마도 나도 즐긴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밤이면 다음 날을 은근히 기대하게 된다.

자갈치에서 곰장어에 소주를, 부평 시장에서 녹두전에 막걸리를, 엄마가 자주 가는 식당에서 파는 명태 전에 맥주를. 어떤 것에 어떤 술을 마셔도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엄마는 종종 자랑처럼 말한다.

“내가 니랑 이렇게 술 한 잔 하는 재미에 산다.”

“딸 키우는 재미지.”

라는 말을 들으면 힘든 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용돈 드리지 못하는 마음을 대신해 오두방정을 시전 하며 “그게 내 매력이지.” 아양을 떨어본다.

엄마와 나는 늘 동상이몽일 수밖에 없는 관계다. 마음의 짐을 덜어주려는 엄마의 말은 오히려 나를 불편하게 했다. 이런 마음을 엄마는 또 금세 눈치챈다. 꼬리 잡기 놀이처럼 서로의 마음을 알아채는 인사치레가 끝나면 주종을 선택하고 안주를 고르는 우리만의 놀이가 시작된다.


엄마의 전화로 금세 입꼬리가 올라갔다. 낮술과 함께 무엇을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면서.

“여보세요. 엄마 오늘 일 안 갔어?”

가벼운 말을 던진 나와 달리 반대편에서 들리는 숨소리가 무겁다. 엄마는 평소와 달랐다.

“아니.. 그게 아니고...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큰 병원에 가보래. 보호자랑 같이.”

“뭐??”

달리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쉬는 날은 뒷산이나 앞산을 오르며 몸을 움직였고, 쌈 싸 먹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는 늘 녹색 채소를 챙겨 먹는 사람이었다. 술도 나랑 마시는 낮술이 아닌 이상 한 달에 한두 번 마실까 말까 했고, 탄수화물을 적게 먹으려고 늘 밥도 반 공기만 먹었다.


위에서 발견된 혹이 좀 이상한단다. 모양이 나쁘단다. 조직 검사를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단다.

그 모든 과정을 엄마 혼자 다 겪었다고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졌다. 나는 왜 이제야 말했냐고 버럭 화부터 냈다. 엄마는 안 그래도 힘없는 목소리에 당신이 아파 내가 신경 쓸까 봐 미안함을 쌓았다. 그런 말투에 또 화가 나고 만다.

“대학 병원 가야겠네. 오늘 당장 가보자.”

“안 그래도 내시경 한 내과에서 OO대학 OOO교수가 잘한다고 추천해 주드라. 거기 가볼라고.”

“나도 지금 바로 출발할게. 그 병원에서 봐.”

“알았다. 나도 출발할게.”

엄마와 만나서 가면 그만큼 더 늦어질 것 같아 병원에서 만나자고 했다. 누구든 먼저 도착하면 번호표 뽑고 미리 대기하자는 의도였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이제 막 접수를 시작한 대학 병원. 친정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병원이라 엄마는 서둘러 대기표를 뽑겠다고 출발했다.


8시 반. 출근 시간과 겹치는 시간이라 버스나 택시를 타면 막힐 것 같았다. 지도앱을 이용해 가장 빨리 도착하는 방법을 찾았고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한 이동이 추천 방법으로 떴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도중에 다시 벨소리가 들렸다.

“병원인데, OOO교수한테 접수하면 가장 빠른 시간이 한 달 뒤래. 다른 교수한테 해도 한 달 기다리는 건 똑같다고 그래서 OOO교수한테 예약 잡고 왔어.”

“진료를 못 본다고?”

당황했던 그날. 대학병원에서 당일 진료를 볼 거라 생각했다니, 지금도 쓴웃음이 난다.


기나긴 기다림은 그렇게 시작됐다. 엄마 위에서 발견된 이상한 혹. 못난 혹은 그렇게 하루하루 모든 사람의 애간장을 녹였다.

‘차라리 혹이나 녹아버려라.’ 초조한 마음에 이상한 주문을 외우기도 했다.

마치 한 달 같은 하루를 보내게 하는 30일. 내가 이 정도인데 엄마는 오죽했을까.

날마다 달라지는 엄마의 마음은 우울했다가 힘냈다가 무기력하기를 반복했다. 진료 예약 날짜가 내일이면 좋겠다고 말하는 엄마. 내가 느낀 시간보다 엄마의 시간은 더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한 달을 기다려 만난 교수. 단 5분 만에 모든 진료가 끝났다. 내과에서 내시경 한 영상을 시디에 담아줘서 곧바로 위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선종일 수도 있지만 암일 수도 있습니다아. 일단 내시경 시술을 통해 제거하고 조직 검사를 해봐야 정확한 진단명이 나옵니다아. 내시경 시술을 위한 입원 날짜와 설명 듣고 가시죠오.’라는 간단한 설명은 한 달의 기다림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말끝을 늘여 억양을 살짝 올리는 말투도 거슬렸다. 슬그머니 짜증과 화가 차올랐다.

한 달 만에 만난 교수는 또다시 한 달 후의 시술을 예약하라고 무신경한 말을 내뱉었다. 내시경 시술을 위해 다양한 검사를 하면서 속에선 짜증과 화가 똬리를 틀며 단단해졌다. 화낸다고 엄마의 입원과 시술이 앞당겨지지 않는 건 기정사실. 나 혼자만 조급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붉으락푸르락했다.


입원 당일. 엄마는 엄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나는 나대로 바짝 긴장한 시간. 누구도 편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입원실로 올라가니 화장실 바로 옆자리. 5명의 환자들이 드나드는 소리에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입원하자마자 곧바로 시작된 검사. 또 검사. 금식. 모든 일들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시술을 받고 이틀을 꼬박 또 금식하고서야 맑은 미음을 먹을 수 있었고 퇴원 허락도 떨어졌다.


평범한 일상이 주는 기쁨을 모르고 살았다. 낮술을 떠올리며 받던 전화가 사라져 버릴 일상이 될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암이란다. 조직 검사 결과도 2주나 기다려야 했다.

암일까 봐 조마조마하던 시간을 보냈는데, 암이라고 진단명이 나왔을 땐 오히려 아무렇지 않았다. 당장 위암에 좋은 게 뭔지 검색해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암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서일까. 그래도 완전 초기라 말끔하게 제거됐으니 잘 관리하자는 교수의 말에 위로를 받아서일까. 알 수 없었다. 확실한 진단명이 나오니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이 드는 건 미스터리한 부분이다. 엄마도 나도 속 시원한 표정으로 병원을 나섰다. 입원했을 때 카페테리아에서 매일 사 먹던 커피 향만 공간을 가득 메웠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만 생각했다. 내가 나이 들어가는 것은 실감하지 못했다. 하나 둘 고장 나는 몸이 티를 내면 그제야 ‘나도 이제 예전 같지 않구나. 하고 생각했다.

엄마와 아빠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보살펴야 하는 엄마와 아빠라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내 나이를 생각해 보면 경제활동을 꾸준히 해 온 부모님 덕분에 걱정 하나를 덜고 살아온 듯하다.

엄마는 여전히 무적이시다. 아무 걱정 말란다. 약 잘 챙겨 먹고, 음식 잘 가려먹고, 운동 열심히 해서 완치 판정받을 거라고 자신만만하시다. 딸이 하는 걱정을 듣기 싫은 엄마의 초강수는 의외로 긍정 확언 효과를 가져왔다. 그렇게 좋아하는 회, 술, 짠 음식, 매운 음식도 한 번에 끊었다. 신기했다. 매일 먹는 음식을 따로 준비할 정도로 신경을 쓰시니 안심됐다.

어디가 아프면 당신이 의사가 된 것처럼 진단하고 처방하던 엄마. 이번엔 교수님 말씀이면 무조건 따르신다.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죽을 3주 꼬박 드셨으니, 대단해. 우리 엄마!!


나에게 위암이라는 가족력이 생겼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병명 하나. 엄마는 지금도 당신이 위암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그렇게 좋아하는 회도 못 먹고, 술도 못 마신다며 허탈하게 웃으며 한마디 하신다.

“열심히 산 죄 밖에 없는데..."라고.

아무런 준비도 없던 나에게 교통사고 같은 일이 일어났다. 내 엄마가 암이라니...

늘 아무 생각 없이 소원하던 '가족 건강'.

새해엔 정성을 보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건강을 빌어야겠다.

"모든 사람들이 건강검진 꼬박꼬박 잘 받게 해 주세요. 조기 발견하는 게 최고예요. 아니,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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