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그러진 않았다. 어디에서나 책을 읽었고, 어떤 자세로든 글을 썼다. 침대에 누운 채로 책을 읽기도 했고, 식탁에서 밥 먹다 떠오르는 문장을 곧바로 쓰기도 했다.
해야 하는 일은 늘 뒷전. 하던 일도 멈춘 채로 만능 기능을 탑재한 핸드폰으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남편이 ‘책 좀 적당히 읽어.’라고 말하면 뜨끔해지기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눈 뜨자마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을 동경했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하진 않지만 그런 일상을 꿈꾸는 것만으로도 슬그머니 웃음이 났다. 그래서였을까. 책 읽기와 글쓰기 이외의 일들은 내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고, 실수가 잦았다.
엄마, 아내, 딸, 며느리가 내가 가진 다른 이름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만 욕심부리기엔 책임져야 할 일들이 많았다. 티도 나지 않는 많은 일들. 하지 않으면 소소한 문제들로 드러났다. 어느 날은 식사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밥상을 차리기도 하고, 고지서 납부를 못 해서 연체료가 붙은 적도 있다. 부모님의 지병으로 병원 가는 일을 챙기는 것도 내 몫. 아이들의 부족한 공부를 챙기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내가 해야 할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을 구분해서 하루를 운영해야만 했다.
어떤 작가의 인터뷰에서 작업실로 쓰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보고 ‘이거다’라는 생각을 했다. 내 몫의 할 일을 끝내고 작업실로 향하는 일. 이렇게만 된다면 하루가 정리될 거란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작업실로 쓸 공간을 빨리 마련하고 싶었다.
무릎을 탁 치며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월세를 내며 다른 공간을 계약할 여유는 없었다. 지출은 차치하고 남편의 반대가 불 보듯 뻔했다. 내가 책을 너무 많이 읽는다고 생각하는 남편이라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게 눈에 선하다.
집 안 어디를 둘러봐도 작업실로 쓸 만한 방은 없었다. 아이가 4명인 6인 가족인 데다 방은 3개뿐이라 작업실로 쓸 방을 찾는 건 내 욕심이었다.
내 몸 하나 앉을 수 있고, 메모지와 필기구를 보관할 수 있으며, 책장과 가까운 곳. 독서대를 올려놓고 생활할 수 있고 아이들과 거리 두기가 가능한 장소. 나만의 공간으로 지정할 곳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집 안의 여러 곳을 며칠씩 돌아가며 생활했다. 아이들과의 생활이 겹치는 공간은 패스, 집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곳은 패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서 꼭 필요한 조건이었다.
모든 서랍이 열려 있고, 식탁 위는 먹다 남은 음식과 그릇이 남겨져 있다. 어제 입고 벗은 옷, 아침에 샤워하고 던져 놓은 수건들. 집은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향 좋은 커피 한 잔과 오늘 읽을 책을 챙겨 얼른 나의 일터로 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하지만, 내 손을 거쳐야 할 일들을 해결하는 일이 먼저. 이젠 시간과 공간을 구분할 줄 아는 베테랑 N잡러다.
아이들도 엄마 자리라고 부를 정도로 오래된 지정석은 바로 거실 탁자 왼쪽 1/3.
내 공간, ‘나의 일터’다.
주부라는 업무를 내려놓고 작가라는 업무로 옮겨가는 시간. 북스타그래머와 브런치작가인 모도가 된다. 나의 일터라는 곳은 내가 나로 살 수 있는 곳.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하는 힘을 가진 공간이다. 1분 1초가 아까운 시간. 온전히 이 글에 빠져드는 시간이라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