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엄마를 사랑하지 않겠다는 아이.

by 모도

by 모도

“앞으로 다신 엄마를 사랑하지 않을 거예요.”

“엄마를 사랑하니까 내가 이렇게 아프잖아요.”


세상에서 가장 아픈 말을 들었다.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우는 아이를 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내 눈에는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엄마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우는 아이를 떠올리면 지금은 이렇게 웃음이 지만, 그땐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심장을 후벼 파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던 아이가 벌써 중학생이라니. 좀 컸다고 세상의 모든 것에 뾰족한 가시를 드러내느라 잔뜩 힘을 준 요즘.

그때의 상황과 아이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금과는 달리, 무척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훗훗.


아이는 엄마를 사랑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고,

당황한 엄마는 아이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 우왕좌왕하던 저녁. 아찔했다.




나에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네 명의 아이가 있다.

올해로 17살 된 첫째, 15살 된 둘째, 12살 된 셋째, 9살 된 넷째. 위로 셋이 아들, 막내만 딸이다.


네 명의 아이는 성격과 입맛, 생김새까지 제각각이다. 묘하게도 아빠와 엄마의 일부를 골고루 닮은 아이들.

좋은 점만 닮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나쁜 점도 골고루 닮았다.

"나 닮아서 그래." 라며

좋은 건 다 날 닮았길 바라는 철부지 엄마.

부족한 엄마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큰 탈 없이 잘 자라주고 있어 고마울 따름이다.

쌍꺼풀 없이 큰 눈. 새까맣게 큰 눈동자. 도톰한 입술에 동그란 얼굴.

증명사진 찍는다고 무표정하게 앉아 있어도 미모가 빛을 발하는 새끼.

엄마 눈이라 백 퍼센트 객관적일 수 없겠지만 나에게도 멋진 아들이 있다.

모르는 것 빼곤 다 아는 아이. 호기심이 많아 늘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 한 가지에 집중하면 완성해 내고야 마는 아이. 못 해본 것 빼고 뭐든 적당히 잘 해내는 아이. 잘하지 못하면 꾸준히 연습해서 해내는 아이. 규칙을 잘 따르는 아이. 인사성도 밝아 딸 있는 동네 아줌마들이 사위 삼고 싶다 하는 아이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

우리 집 둘째다.




막내가 5살쯤 됐을 때의 일이었다.

첫째는 13살, 둘째는 11살, 셋째는 8살 때의 그날 저녁.

여섯 가족이 거실 탁자에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했다.

아이들은 밥 먹는 일엔 집중하지 않고 돌아다니거나, 밥그릇을 엎기도 했고, 누군가는 반찬을 흘리기도 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만큼 정신없는 저녁 식사 시간.

나는 막내와 셋째를 챙기면서 급하게 저녁을 먹고 있었고, 첫째와 둘째는 스스로 먹을 나이가 됐으니 아빠와 이야기하며 밥을 먹었다.

평범한 일상. 늘 반복되는 저녁 시간의 모습이었다.


느닷없이 둘째의 울음이 시작됐다.

화난 목소리, 커다란 눈엔 눈물이 가득했다.

둘째야, 왜 그래?”

하며 이리 오라고 손짓했다. 아이는 나를 보며 울다 휙 돌아앉았다.

오지 않겠다고 온몸으로 표현하면서 물 섞인 말을 내질렀다.


“앞으로 다신 엄마를 사랑하지 않을 거예요.”

“엄마를 사랑하니까 내가 이렇게 아프잖아요.”


라고 말하면서 아예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 말이 어찌나 아프던지 금세 내 눈에도 눈물이 차올랐다.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예상할 수도 없었다. 난감했다.

한 번 터진 울분은 멈추지 않았고, 아이의 마음이 눈물과 함께 쏟아졌다.


“엄마는 막내만 좋아하고. 나한테는 맨날 무서운 눈만 하면서. 막내한테만 맨날 웃어 주고.”


라는 말을 하면서 또다시 복받치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엉엉 소리 내 울었다.

놀라고 당황스러웠던 순간도 잠시, 아이의 말을 듣고 웃음이 나서 혼났다.

'웃참 실패'라는 대참사를 막기 위해 어금니에 힘주고 꾹 참았다.

둘째는 세상이 무너지는 마음으로 울고 있는데 엄마가 그 앞에서 웃는다는 건, 아이의 마음에 두 번 상처 주는 일.

막내만 이뻐한다고 질투가 난 둘째를 보면서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눈물이 흘러내리는데 웃음이 나는 굉장한 경험을 했다.

다행히 둘째는 등 돌리고 앉은 상태여서 엄마, 아빠가 웃음을 참고 있는 걸 보지 못했다. 간신히 입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고 남편은 둘째를 뺀 나머지 아이들과 안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등 돌려 앉은 둘째 옆으로 가서 앉았다.

원망하는 눈빛의 아이. 눈물, 콧물이 흘러내려 얼굴 전체가 번들거렸고, 얼마나 용을 썼는지 온몸에 열기가 후끈후끈했다.

그런 모습인데도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두 손을 꽉 잡고 아이와 대화를 시작했다.




뭐든 잘하는 아이라는 생각에 내 손길이 닿지 않았다. 아이는 그저 내 손길 한 번 바랬던 것뿐인데.

동생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네 배로 바빠진 나는 척척 잘하는 아이라는 생각에 너무 큰애 취급을 한 모양이다. 밥 먹을 때 엄마 옆에 앉고 싶고, 엄마랑 이야기도 하고 싶었던 아를 몰라줬다.


동생이 아기니까 참았던 걸까?

이제 동생이 좀 컸으니 자기한테도 예전처럼 해줄 거란 기대를 품었을까?

동생들이 태어나기 전엔 우리 집 막내가 바로 둘째였으니, 자신에게 오는 관심과 사랑을 동생들에게 차례대로 넘겨준다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막내만 이뻐한다고 생각한 아이의 서운함이 그날 그렇게 터져버렸다.

내가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아이들은 다 알 거라 생각했다. 누구만 더 이뻐하고 사랑한다는 생각을 할 줄 몰랐다.

아이의 표현이 쓰라렸다.

“나한테는 맨날 무서운 눈만 하면서. 막내한테는 맨날 웃어 주고.”

둘째와 말하는 순간은 무언가 혼날 일이 생겼고, 나는 늘 무서운 눈으로 아이를 봤을 테다.

둘째가 본 나는 막내한테만 웃어주는 엄마였다. 어찌나 미안하고 또 부끄럽던지.

몸만 컸지 엄마 옆이 좋은 아이인 걸 잊고 살았다.

우는 아이를 달래면서 셀 수 없이 많이 말해줬다.

“사랑해. oo아. 엄마는 너희 모두를 전부 다 사랑해.”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새끼들인데 당연히 모두 사랑하지."

아이의 표정이 점점 편안해지고, 맞잡은 두 손의 열감과 떨림도 점점 안정을 찾아갔다.

아이가 "엄마 나도 막내처럼 꽉 안아주고 잘 자라고 해주세요." 하는데, 너무 놀랐다.

내가 스킨십을 하려고 하면 도망가던 아이들이라 싫어한다고만 생각했다. 안아주길 바란다는 말에 놀라서 할 말을 잃었다.

"알았어. 오늘부터 매일 그럴게."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하고서야 아이의 얼굴은 평소대로 편안해졌다.


같은 날 밤, 둘째를 꽉 안아주고 잘 자라고 인사를 나눴다.

좋아하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안심도 되고 오랜만에 안아보는 아이의 품이 생각보다 작아서 놀랐던 밤.

다 컸다 생각한 아이는 막내보다 아주 쪼끔 더 큰 아기였다.

다른 아이들도 차례대로 안아주는데, 첫째도 은근히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걸 보면서 뜨끔했다.

둘째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밤새 생각이 많았다.




지금은 사춘기 중학생 오빠가 된 둘째.

가끔 그때의 일을 이야기하면 멋쩍은 듯 웃는다. 함께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지금.

그때보다 내가 사랑을 많이 표현하냐면 그렇진 않다.

사랑 표현이 서툰 나여서 우리 아이들은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듣지 못하고 자라 늘 미안한 마음이다.

며칠 꽉 안아주니 이젠 그만 하라며 튕기는 아이들. 못내 아쉬운 건 내 몫이었다.


그래도 때로는 용기 내서 힘껏 사랑을 고백한다.

장난처럼 던지는 말, 부끄러움은 웃음으로 숨기고 외쳐본다.


"사랑해. 내 새끼. 사랑한다고!!!"


매일 말해주지 못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진심을 듬뿍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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