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침밥을 고집하는 이유

by 모도

by 모도


찬바람에 코끝이 시린 새벽.

알람소리에 손가락만 간신히 깨워 움직여 본다. 이불을 돌돌 말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일어나기 힘든 5분을 버틴다. 두 번째 알람 소리를 듣고서야 눈뜨는 아침.

5분 차이로 여유는 온데간데없고 서둘러야 하는 아침이 된다.

“6시 반이야. 이제 일어나. 지각하겠다.”

아이들을 깨우는 목소리엔 다급함이 묻어난다. 손은 간단하게 아침을 차리면서 눈은 아이들을 바라본다. 누가 깼는지 확인해야 안 일어난 아이의 이름을 콕 집어 부를 수 있으니까.

호명까지 당해야 일어나는 아이들. 밤늦도록 안 자고 뒹굴거리다 아침마다 피곤해하니 잔소리까지 반찬으로 보탠다. 잠을 쫓아내고 더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심정을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다.

모두가 잠든 시간, 조용한 시간이 좋아서 나조차도 잠들기 아쉬운 마음이 들곤 하니까.

미간에 잔뜩 주름을 잡고 단호하게 오늘부터 일찍 자라고 말하는 나도 참 어불성설이다.




조촐한 아침 식사가 차려진 식탁.

아이들은 눈이 반은 감긴 채로 어슬렁거리며 나온다.

마른세수를 하며 나오는 아이, 인상을 쓰며 나오는 아이.

벌써 다음 대사가 들리는 듯하다.

“아침 생각 없어요.”

“아침 안 먹으면 안 돼요?”

내가 말하는지, 아이들이 말하는지 모를 퉁명스러운 대사가 이내 들린다. 역시나!!!

“조금이라도 먹어. 빈 속에 가면 더 추워.”

누가 보면 사약을 내렸는 줄 알겠다. 두 팔은 식탁 위에 포개고 고개는 거북이처럼 쭉 빼고 앉아서 시간만 보내고 있다. 인내심의 한계를 이 새벽에 느껴야 하다니.

“얼른 한 숟가락이라도 먹엇.”

결국 고함을 지르고 만다. 아이들은 사춘기에 접어든 십 대답게 가자미 눈을 하고 검은 눈동자만 치켜뜨며 “배 안 고프다고요.” 반항심을 내비친다.




나는 참 좋았다. 엄마의 아침 밥상이.

맞벌이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다 보니, 엄마의 잔정이나 보살핌을 느끼는 기회가 많이 없었다.

일찌감치 “엄마는 바쁘니까 니 일은 니가 알아서 해야 돼. 알겠지?”라고 못 박으신 엄마. 말 안 들으면 호통치는 엄마였으니 투정은 목구멍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삼켜졌다.

거기다 오락실로 뒷산으로 뛰어다니던 망아지 같은 남동생까지 챙겨야 했으니 그 시절 맏딸의 숙명처럼 K-장녀답게 자랐다.


그랬던 내가 유일하게 엄마의 정을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 바로 아침시간이었다.

깜깜한 밤하늘에 별이 뜬 첫새벽부터 일하러 나가시던 엄마. 하품하며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양은 냄비에 쌀을 퍼 담는 거였다. 눈곱도 떼지 않고 쌀부터 씻는 엄마.

성냥을 그어 불을 피운 곤로에서 밥 익는 냄새가 나면 나는 잠결에도 슬며시 웃음이 났다.

엄마가 나 먹으라고 밥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좋았다.

여기저기 우리 엄마가 일하러 가기 전에 밥 해놓고 나갔다고 자랑하고 싶을 만큼.

엄마한테 투정은 못 부리지만, 동생도 보살펴야 하지만, 그래도 엄마가 날 사랑한다고 느낄 수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갓한 밥 한 그릇이면 충분했다. 철없이 던진 한마디가 엄마에겐 바늘에 찔린 듯 아팠나 보다.

“엄마, 나도 따뜻한 밥 먹고 싶은데....”

한 문장을 다 채우지 못한 소심한 말 한마디였다. 내내 마음에 걸렸던지 어느 날부턴가 새벽마다 쌀 씻는 엄마. 정답게 말하지 못하는 엄마였지만,

“밥 해 놨으니까 한 그릇 퍼먹고 학교 가.” 한마디면 내 마음은 온통 뜨끈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의 아침식사에 예민해지고 만다. 내가 느꼈던 엄마의 정을 아이들도 느끼길 바랐던 거였을까. 어떻게든 한 숟가락 떠 먹여야 내 마음이 편했다.

아이들의 기분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침을 챙겨 먹였다는 행위에 오로지 만족하는 엄마가 바로 나였다. 억지로 씹어 삼킨 아침밥에 아이들은 귀찮음과 짜증만 느끼는데도 나 혼자만 애정이라 포장하는 시간이었다.

아침 식사는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고문 같은 시간이 되고 말았다. 미간에 주름 잡힌 아이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이게 사랑받는 사람의 얼굴인가?’

‘새벽부터 아이들이랑 왜 싸우고 있지?’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부족함 없이 자라는 아이들.

투명한 비닐봉지에 담긴 새우깡 한 봉지를 동생과 나눠 먹고 일부러 남겨서 내일 또 먹었다. 신김치 한 접시에 밥 한 그릇을 내놓아도 반찬 투정 같은 건 상상할 수 없었던 시절.

모두가 다 나처럼 살진 않았겠지만, 나의 어린 시절은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었던 쌍팔년도 모습이었다. 나의 과거와 아이들의 지금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꼰대력 상승, 라떼는 투 샷이겠지만, 속으론 늘 ‘복에 겨웠다’며 구시렁대고 만다.

자라는 동안 빈집에 들어가는 일이 가장 큰 두려움이었던 나는 일을 그만뒀다. 아이가 생기기도 전에 우리 부부가 정해둔 단 하나의 약속! 결심이랄까.

‘아이들이 빈집에 들어오는 일은 없게 하자.’




꼭 아침밥이 아니어도 아이들은 김 모락모락 나는 엄마의 애정을 느끼고 있을 텐데, 나의 경험만 강요했다.

아둔했던 나는 아이들에게 묻는다.

“내일 아침에 뭐 먹을래?”

아이들은 저마다 메뉴를 말한다.

“토스트요.”

“계란 프라이요.”

“안 먹을래요.”

가끔 미련 섞인 뒷말을 덧붙이기도 하지만 아이들과 아침시간을 평화롭게 보내기 위해 대체로 말을 아끼게 된다.

‘밥 한 숟가락 먹고 가는 게 뭐가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을 찬물과 함께 꿀꺽 삼킨다.

엄마가 외할머니의 마음을 느꼈던 순간을 기억하는 것처럼 너희들도 언젠가는 떠올리게 되겠지?

엄마의 마음이라고 소중하게 기억되는 순간 말이야. 일단, 아침밥은 아니었던 거고!!

싸우지 않는 아침 시간, 본인이 직접 고른 메뉴.

“혹시 지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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