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한 캔 하면 됐다

아이의 하루

by 루이지애나미술관

살면서 가끔 속상한 일이 생길 때가 있다.

아가씨 때나 아이가 없을 때나 아이가 있을 때나 속상한 일은 내 상황을 봐주면서 오지 않는다.

무자비하다.


밤 10시가 되면 아이가 깊이 잠들고 나는 그제야 기분 나빴던 일을 곱씹으며 속상할 수 있다.

정말 화가 나면 맥주도 한 캔 한다.

맥주가 내 슬픔을 달래주지는 않지만 잠시나마 마시는 동안만큼은 동무가 되어준다.


다음 날이 되어도 내 감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냥 하루가 지났을 뿐이다.


아침에 멍하게 앉아 있는데 아이가 잠에서 깨어나 천사 같은 웃음을 지으며 내 품으로 달려온다.

아직 말을 할 줄 모르는 우리 아이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엄마 오늘은 나랑 뭐 하면서 재밌게 놀 거야?"

그저 장난치고 놀고 싶어 하는 아이의 표정을 보니 마음이 복잡하고 미안하다.


무거운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아이의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물 한 모금을 마신 아이는 본격적으로 입맛이 도는 듯하다.

차린 것도 없는데 아이는 밥을 미안할 정도로 맛있게 먹어준다.

과일도 뚝딱 해치운다.


배가 부른 아이는 아침 똥을 싸고 본격적으로 나에게 장난을 친다.

이 방 저 방 다 돌아다니며 저지레를 해놓는다.

놀다가 잠시 숨을 고르는 아이의 머리끝이 땀으로 촉촉하게 젖어있다.

아이는 혼자 놀다가 나에게 장난을 치다가를 반복하다가 오전 낮잠을 잔다.


어제 일로 속상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려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집이 엉망이다.

'일단 다 치우고 다시 생각하자'

집은 깨끗해졌는데 아이가 잠에서 깼다.

하... 점심시간이다.


점심을 먹고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는 오후 활동을 시작한다.

오전보다 더 격하게 저지레를 한다.

저쪽 방에 쿠당탕 소리가 나서 달려가 보니 청소기가 넘어져있다.

저쪽 부엌에 달그락 달그락 소리가 나서 보니 아이가 주방 식기구들을 꺼내고 있다.

아이가 조용해서 가보니 쓰레기통을 엎어놓고 각종 쓰레기를 장난감 삼아 사부작대고 있다.

'안되겠다. 바깥에 데리고 나가자'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하고 오니 이제 아이가 배가 고프단다.

달짝지근한 간식을 먹으면 오후 잠을 잘까 싶어 조금 주니 잠깐 소진된 에너지가 다시 채워진 모양이다.

아이는 온 집 안을 돌아다니며 놀거리를 찾는다.

내 치맛자락을 붙잡고 징징대기도 하고, 내 머리카락을 흔들며 캭캭캭 하며 자지러지게 웃는다.

다 씻겨 놓으니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 물장난을 친다.


이쯤 되니 내가 뭐 때문에 속상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잠깐 생각을 해보고 '맞아...그거였지' 한다.

이왕 한나절이 갔으니 아이를 마저 돌보고 다시 생각하기로 한다.


퇴근한 아빠를 본 아이는 하루의 마지막을 놀이와 장난으로 불태운다.

아빠와 아이는 쿵쾅쿵쾅 뛰고 기어 다니며 열정적으로 논다.

나는 혼자 조용히 있고 싶은데 이 사람들이 도와주지를 않는다.

아이는 토끼 마냥 아빠한테 깡총 엄마한테 깡총 점프하며 꺄르르 웃는다.


아이는 밤 9시가 넘도록 놀다가 겨우 잠들었다.

혼자만의 시간은 겨우 생겼는데 이제는 내 눈꺼풀이 너무 무겁다.

생각을 좀 해보려고 했는데 눈을 떠보니 새벽에 새가 지저귀고 있다.


그래, 맥주 한 캔 했으면 됐다.

육아하는 동안은 슬픈 감정도 사치다.

씩씩하게 살아가기도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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