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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팅게일 Jan 14. 2024

비행기에서 귀인을 만나다(상)

내 인생에 영화 같은 순간 1

5년 전 런던에서 토론토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만난 귀하고 특별한 인연이 생각나서 여러분과 나눠볼까 합니다. 

때는 2018년 8월, 당시 구남친이었던 지금 남편의 조카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그의 고향인 마케도니아에 다녀오던 길이었어요. 

당시 저는 캐나다에 완전히 정착하기 전으로 한국에서 캐나다로 왔다 갔다 하던 시절이었는데 캐나다에 얼마나 오래 머물지 몰라서 조카 결혼식에 함께 갈 계획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함께 가려고 남편과 같은 비행 편을 끊으려고 하니 여름 극성수기라 요금이 2배 가까이 올라있더라고요. 모양새는 이상하지만 결국 저는 일정만 비슷하게 다른 저가 항공으로 비행기 티켓을 별도로 구입했습니다. 

싼 가격을 찾다 보니 아무래도 엄청난 레이어버가 있더라고요. 30시간 정도 걸리는 그런 거요� 토론토에서 마케도니아로 갈 때는 비슷하게 도착했는데 돌아올 때는 마케도니아 - 비엔나 - 프랑크푸르트 - 런던 - 토론토 이렇게 세 도시를 거쳐 오는 일정이었는데 프랑크프루트에서 하루 자고 새벽비행기를 타고 이른 아침 런던에 도착했습니다. 

런던에서 10시간 시간이 있어 평소 꼭 보고 싶었던 로제타 스톤을 위해 영국 대영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그때가 저의 첫 런던이었습니다. 

그리고 3시간 정도 여유를 갖고 공항에 도착했는데 제가 예약한 항공편은 저가항공으로 히드로 공항이 아닌 다른 규모가 작은 곳이었는데 때는 8월 성수기라 승객들이 넘쳐났고 매우 혼잡했습니다.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했죠. 

더 최악은 제가 이용했던 항공사가 당시 신설 항공사였는데(찾아보니 제가 이용한 지 바로 다음 달에 사라졌습니다) 온라인 체크인 시스템이 없어 무조건 카운터에서 체크인해야만 했는데 만석인 비행기에 고작 3명이 일처리를 하고 있더라고요. 당연히 엄청 오래 걸렸고 3시간 일찍 도착했음에도 보딩을 위해 뛰어야 했습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이륙 시간도 지체되었습니다. 승객들의 불만은 넘쳐났고 피곤함에 지친 상태였죠. 

승객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삼삼 오오 항공사에 대한 욕으로 옆자리 사람들과 대화하기 시작했죠. 제 좌석은 3열 통로 쪽이었는데 제 옆에 커플이 있어 자연스레 다른 편 통로 쪽에 앉아 계신 한 신사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항공사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에 관한 주제로 시작해 여러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분은 최근 건강이 안 좋으셔서 의사의 강제 휴식 조치로 갑작스러운 휴가를 갖게 되셨는데 계획된 것이 아니기에 저처럼 라스트 미닛 비행 편을 끊다 보니 그분의 휴가 장소였던 그리스에서 토론토로 돌아갈 비행 편 옵션이 이것밖에 없었다고 하시더라고요. 

한두 시간 그 분과 이야기를 마치고 자연히 잠이 들었는데 몇 시간 잤을까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이는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까 이야기를 나눈 그 신사분께서 화장실 가는 도중 복도에서 쓰러지셨던 겁니다. 몸도 안 좋으신 상태에다가 공항에서 진을 뺐고 그러다 보니 탈수 증상이 오셨던 거예요. 

앞서 언급했지만 제가 탄 항공사는 저가항공에 기내식은커녕 물조차 제공되지 않았어요. 지금은 저가 항공사들이 보다 다양해지고 보편화되어 저가 항공사에서 음식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두 인지하고 음식을 기내에서 사 먹지만 그때는 많은 승객들이 탑승하고 나서 기내식이 제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알았어도 길어진 체크인 시간 때문에 보딩을 위해 뛰어야 했다 보니 음식을 미리 살 시간도 없었죠. 메뉴도 대단히 한정적이었는데 울며 겨자 먹기로 허기를 채우기 위해 음식을 구입해야만 했고 심지어 카드 결제도 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해요. 

하지만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여행할 때 준비성 철저한 민족 아니겠습니까! #네이버 블로그에는 이런 유럽의 신설 저가 항공사의 후기까지 있더라고요. 저는 미리 이 항공사에 대해 알고 간 후라 공항으로 가기 전 런던 시내에서 복숭아 몇 개와 스낵을 미리 구입해서 갔습니다. 

그분은 다행히 승무원들이 제공해 준 물을 마시고 정신이 드신 듯했습니다. 저는 얼른 제가 갖고 있던 복숭아 몇 개를 그분께 드렸죠. 복숭아 덕분인지 그분은 이내 기운을 차리셨고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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