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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팅게일 Jan 15. 2024

비행기에서 귀인을 만나다(중)

내 인생에 영화 같은 순간 1

*전편에 이어지는 이야기로 배경은 2018년입니다. 


기운을 차리신 그 신사분은 연신 고맙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그분은 본래 그리스 출신으로 대학생 때 캐나다로 홀로 이민 오셨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1990년대 당시 캐나다에는 이민 프로그램 중 하나로 건축가풀이 따로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직업이 건축가였던 그는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캐나다로 이민 오셨고 그렇게 시작한 커리어로 1990년대 중반 밴쿠버 국제선 공항 건설에도 참여하셨다고 합니다. 지금은 토론토 지역에 있는 분당 같은 도시에서 공무원으로 도시계획 팀을 이끈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당시에 있던 상황에 대해 말씀드렸고 남은 긴 비행시간 즐거운 대화를 나눴죠.


비행기가 착륙할 때 즘 그분은 제가 거주하는 지역을 물으셨는데 알고 보니 심지어 동네 주민이셨어요. 차로 5분 이내 거리에 사시는 겁니다! 토론토 공항은 2-3시간 족히 떨어진 인접 도시 사람들이 이용하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 특별한 인연이었습니다. 놀라웠어요.


자신의 연락처를 주시며 이번 주 내로 만나서 차 한잔 하자고 꼭 연락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며칠 후 동네 스타벅스에서 그분을 다시 만났습니다.


지금 하시는 일 소개와 가족들, 그리스에서의 휴가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그때 복숭아를 나눠줘서 너무 고맙다고, 그 덕에 괜찮을 수 있었다고 연신 감사 인사를 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복숭아 몇 알 드린 게 그게 참 대단한 일도 아니고 그 자리에 있던 어느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거라고 생각하기에 그저 그분의 이야기를 재밌게 들었습니다.


또한 처음 캐나다로 이민 오셨을 때 동료 중 하나가 한국인이었는데 그분께 도움을 참 많이 받았다고 하시면서 이민 초기에 만난 여러 친절한 분들 덕분에 캐나다에서 이렇게 잘 자리 잡을 수 있었다고 하셨어요. 본인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시며 저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부담 갖지 말고 꼭 도움을 요청하라고 하셨어요.


저는 그저 이 상황이 신기하고 특별한 인연을 만난 거에 그저 감사하고 신기할 뿐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당시 저는 남편과 함께 캐나다에 정착할지 말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관광비자로 체류하며 300건에 달하는 이력서를 전 세계에 뿌리며 말 그대로 한국도 캐나다도 아닌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그분의 도움을 주시겠다는 말씀이 감사하긴 했지만 당시엔 아무 의미도 별 생각도 없었습니다.


시간은 흘러 12월이 되었고 저는 한국에 왔습니다. 일단 아이와 함께 캐나다로 무작정 남편에게 합류하기로 하고 아이를 데리러 왔어요. 이 신사분은 가끔 연락을 주시면서 안부를 물으시기도 하고 저도 연락을 종종 드렸어요. 심지어 당시 2018 - 2019 시즌 토론토 대표 농구팀 랩터스가 역사적인 NBA 최종 우승을 했는데 그렇기에 모든 캐나다인들이 흥분할 때였죠. 그 구하기 힘들다는 랩터스 농구 경기 티켓이 있다며 함께 보러 가지 않겠냐는 연락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아쉽게도 저는 한국에 있어 함께 가지 못했지요.



그리고 세월은 계속 흘렀습니다. 저는 캐나다에 아이와 2019년 2월에 무작정 들어왔고 당시에도 캐나다에 정착할지 몰라 아이를 학교에 선뜻 보내지 못하고 홈스쿨링과 다른 방과 후 활동으로 캐나다 적응에 정신이 없었어요. 그러다 2019년 8월 드디어 정착하기로 결정하고 영주권 신청을 했습니다. 바로 이어진 지역 내 교육청과의 싸움, 뉴욕에서의 결혼, 그리고 교육청과의 싸움에서 이겨 아이를 학교 보내기까지 정신없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캐나다에서 정착하기로 한 후 그분께 인사차 연락을 드렸고 그제야 저는 그분에게 뭐랄까 진정한 관심이 생겼습니다. 이전에는 마음이 붕 떠있어서 이 분이 스쳐 지나가는 분이라는 마음이 크기도 했고 솔직한 심정으로 그분이 진정성 있게 여러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해주셨지만 사실 크게 믿지 않았어요. 토론토와 인접한 해당 도시에 고위 공무원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속으로는 그런 고위 공무원이 왜 그 저가 항공을 이용했는지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저는 사실 자유롭게 여행하고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다니지만 혼자 낯선 곳에 가기에 특별히 더 조심해요. 늘 최악의 상황을 염두하고 여행하기에 생각보다 여행 중에 만나 친해진 분들이 많이 없어요. 보수적으로 접근하기에 만나면 제대로 된 인연을 만나기도 하지만요.


어쨌든 캐나다에 정착하기로 한 후 어느 날 그분에 대해 문득 궁금해져서 그분의 풀 네임을 구글에 쳐보니 세상에 그분이 진짜로 그 도시에 서열 4 위즘 되는 고위 공무원으로 일하고 계신 거예요. 그간 의구심을 가진 것에 대한 죄송한 마음과 이런 분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는 것, 거기다 같은 동네주민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참 든든해지더라고요.


저는 그 이후 보다 적극적으로 인연을 이어갔어요. 때가 되면 안부 인사도 드리고 저희 집에 점심식사에 초대해 그분께 아이와 남편도 소개하기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분께 도움을 받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캐나다에 정착을 했기도 하고 그저 낯선 곳에서 만난 특별한 인연과 꾸준히 인연을 이어나가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노력이었죠. 지금 캐나다로 이민 온 지 4년이 넘었지만 생각보다 좋은 인연을 만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러다 시간은 더 흘러 전 세계가 유례없는 코로나라는 혼돈의 시국이었던 2020년 7월이 되었습니다.


이 분은 대체 저에게 어떤 도움을 주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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