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만남이 있기 때문에 헤어짐이 있고, 헤어짐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만남이 있습니다.
몇일 전 제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 교구 목사님이 다른 곳으로 사역을 하러 가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10여 년 전부터 오랜 시절 마음을 나눈 분이어서 유독 아쉬움이 컸습니다.
저희 막내가 태어날 때 부임하셔서 아기학교부터 유아부 그리고 교구까지 섬겨주셔서 꽤 인연이 깊습니다. 갑자기 다른 곳으로 가신다는 소식에 어리둥절했지만 그 내용을 듣고는 이해가 되었습니다.
전임 부목사 사역을 하시면서 엄마의 역할을 하시기가 부담이 되셨던 것 같습니다. 당신의 자녀가 자랄 때까지 당분간 파트 사역을 하시기로 결정하셨다고 합니다.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부모로서 같은 마음을 느낍니다.
직장을 다니며 사회생활을 하는 우리가 아이를 양육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어린이집에서 열이라도 난다는 연락이라도 오면 배우자와 함께 급하게 일정을 조절하기도 하고, 독감 등으로 인해 등원하지 못하면 누가 케어할 수 있는지 한참을 고민하곤 했죠.
지금이야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생이 되었기 때문에 잠시 혼자 둘 수 있지만 어렸을 때는 왜 그리 힘들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목사님과 잠시 헤어진다는 소식에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좀 더 잘 할걸'이었습니다. 함께 교회를 섬기고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부족한 것은 없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직장 핑계, 아이들 핑계를 대며 이리저리 피했던 생각이 나더군요. 오랫동안 함께 하실 거라 생각해서였는지 더욱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이 이런 것일까요?
이런 만남과 헤어짐에도 아쉬운데, 죽음을 통한 이별은 어떤 감정일까요?
저희 가정은 명절에 부모님이 오셔서 함께 먹을 음식을 준비합니다. 따로 차례를 지내지는 않음에도 풍성하게 음식을 준비합니다. 1년에 2번 음식을 만들고, 이웃들과 나누어 먹습니다. 오늘도 음식 준비를 위해 이미 움직이고 계십니다.
손주, 손녀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것처럼 부모님도 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낍니다. 제 머릿속에 남아 있던 엄마, 아빠의 모습이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언젠간 마주할 죽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그렇지만 오늘을 함께 할 수 있는 것, 음식을 준비하며 즐겁게 이야기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해야겠습니다.
잠시 헤어짐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주기도 하지만 죽음은 다릅니다. 마음과 추억으로만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요. 명절이 되니 유독 부모님에 대한 애틋함이 느껴지네요. 저도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드나 봅니다.
이번 명절엔 '사랑한다. 고맙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합니다. 하시고 싶은 것, 보고 싶으신 것은 없는지 여쭤봐야겠습니다.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그들에게만 집중했던 삶이었습니다. 오늘만은 부모님에게 집중해 보고 싶습니다. 누구나 한 번은 죽으니까요.
'사랑한다. 고맙다.'라는 말을 아껴 쓰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도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우리는 잘할 수 있습니다. 이미 잘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