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자글방 Jan 24. 2024

'예쁨'의 역사

[몸의 기록] 테오

5살의 나는 낮잠을 자는 걸 싫어해 어린이집을 옮겼다고 했다. 그렇게 6살의 나는 노원 유아스포츠단의 파랑새반 남민경이 되었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가 같이 다녔다고 엄마는 말했다. 내 기억 속 파랑새반 남민경은 5살부터 다닌 같은 아파트 친구보다 수영을 잘해 상급반이었지만 수영장 샤워실이 싫어 수영복을 일부러 가지고 오지 않는 꼼수를 부리는 어린이였다. 그 꼼수는 엄마가 알아채 수영복을 입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심한 내가 여분 수영복을 입었어야 했었다. 나는 남자애들과 원내를 열심히 뛰어다니다 선생님께 혼나고 남자아이들과 같이 팔을 높게 들어 배꼽이 보였던 어린이였다. 혼자 여자아이라 선생님께서 여자애가 이게 뭐냐고 내 배꼽을 띵동 누르고 옷을 정리해 주곤 다시 놂을 허락해주었다. 그리고 남자아이만 하는 축구가 하고 싶어 여자아이만 하는 운동에 하는 척 마는 척하는 아이였다.  


8살이 되는 나는 그동안 쳐다도 보지 않는 치마를 입는 것에 맛이 들린 초등학생이었다. 엄마는 활동적인 나 때문에 내 머리카락을 다양하게 묶는 법을 숙달한 준 헤어디자이너였다. 엄마가 가는 병원에서 살이 빠지는 주사를 맞을 때마다 신기했던 어린이였다. 


9살의 나는 살이 키로 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어린이였다. 매일 엄마와 집 앞 운동장에 나가 줄넘기 1,000개씩을 하는, 그것도 모자라 리듬 줄넘기학원에 다니는 어린이였다. 고릴라, 돼지라는 체형을 놀리는 말을 그만 듣고 싶은 어린이였다. 화도 내보고 엄마에게 이르기도 하고 초등학생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할 줄 아는 초등학생이었다. 



12살의 나는 내 몸에 있는 털이 너무 싫은 어린이였다. 친구를 따라 전학을 간 시골의 한 초등학교에서 “좀 통통해”라는 평가를 받아 코웃음을 칠 줄 알던 초등학생이었다. 남들보다 많은 다리털과 팔 털, 그리고 인중 털을 싫어하는 12살이었다. 그리고 키를 키우기 위해 아역배우들이 다닌다는 유명 한의원에 다녔다. 매주 강남에 낡은 건물에 있는 한의원에 가 마사지와 침을 맞고 매달 피를 뽑는 초등학생이었다. 


13살의 나는 떼를 써 레이저 제모를 받았다. 동네의 모든 피부과를 돌며 아직 어리니 성인이 되어 제모 시술을 받으라는 말을 들었지만 한 피부과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니 그냥 하는 것도 방법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엄마에게 떼를 써 2달에 한 번씩 마취 크림을 바르는 어린이였다. 고통의 역치가 낮은 나는 오징어 굽는 냄새와 함께 오는 고통에 비해 없어지지 않는 털을 원망했었다. 엄마는 예뻐지기가 쉬운 줄 알았느냐는 말을 했었다.


14살의 나는 익숙하지 않은 교복 치마의 길이를 늘인 중학생이었다. 남들은 다 줄이고 좁히기 바쁜 치마를 나는 이미 충분히 좁고 짧은 치마를 싫어했다. 또한, 교복을 입을 때마다 내 다리털이 신경이 쓰여 매일 아침 면도기로 다리털을 미는 중학생이었다. 그래서 두껍고 어두운 기모스타킹을 못 신는, 날씨가 따뜻해지는 봄을 싫어하는 학생이었다. 학교에 가면 위염증상이 심해져 밥을 먹지 못해 살이 빠지고 마음이 편한 주말에 폭식해 다시 살을 찐 중학생이었다. 그리고 방학 때면, 유튜브를 보며 홈 트레이닝을 하는 그런, 청소년이었다. 살집이 있으면 게으르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선생님의 말이 짜증 나는 청소년이었다.  


17살의 나는 살이 쪄 연애를 못한다는 평가를 받아야 하는 청소년이었다. 속으로는 너희가 더 못생기고 별로였지만 그런 평가를 받아야 하는 그런 청소년이었다. 동시에 아침 수영을 하고 등교하는 청소년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살 때문에 이런저런 운동을 한 나에게 가장 운동을 잘하는 남자애와 파트너를 하게 하곤 ‘여자치곤 잘하네’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 청소년이었다. 


18살의 나는 예쁘다는 말이 너무 듣기 싫은 청소년이었다. 한 선생님은 나에게 예의 없게 화장을 왜 하지 않고 다니느냐고 말해 나는 급하게 화장을 했었다. 그렇게 화장을 하고 같은 날 다른 시간에 다른 한 선생님은 학생이 왜 화장을 하느냐라는 말을 했었다. 나는 그 두 장단에 춤도, 즐기지도 못했다. 그리고 예쁘다는 말이 너무 나 싫어졌다. 친구는 나의 화장한 얼굴도, 화장하지 않는 얼굴도 예쁘다고 만나면 칭찬했다. 듣기 좋은 말이지만 외모평가에 지친 나는 외모에 대한 칭찬이 듣기 싫었다. 그 말을 하는 친구에게 늘 말했다. 칭찬하지 말라고 그 말들이 부담스럽고 외모평가에 지긋지긋하다고 몇 번을 말했지만 늘 친구는 나에게 외모 칭찬을 했다. 예쁘다는 말만 쏙 빼고 결국 나는 친구와 싸웠다. 친구를 잃었다.


19살의 나는 대학에 입학해 한참 꾸미고 싶은 대학생이었다. 대체 왜 옷은 점점 작아지는가를 고민하는 학생이었다. 대학에 입학이 확정되자마자 몇 년간 먹은 위염약을 먹지 않아도 되는 의사의 판단에 기뻐했다. 그리고 나의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잔소리하지 않는 자취생이었다. 


20살의 나는 또 살이 쪘느냐는, 살을 빼야 연애를 한다는 오랜만에 만나는 선생님의 잔소리를 들은 반수생이었다. 무척 무거워진 몸이 신경 쓰여 온종일 공부와 그림을 그리고 나서는 집에서는 홈트를 따라 했었다. 그리고 수능시험이 다가오고는 완치판정을 받은 위염이 다시 도져 죽을 먹었다. 그리고 수능이 끝나고 실기 정시 특강 때는 살이 신경 쓰여 다이어트 도시락을 배송받은 반수생이었다.  


21살의 나는 더는 옷 쇼핑을 주기적으로 하지 않는 복학생이었다. 동시에 헬스장에서 하는 스피닝과 필라테스를 다니는 복학생이었다. 헬스장에서는 나에게 이제 곧 체형이 굳어지는 나이니까 빨리 살을 빼라고 했다. 이 몸무게가 평생 간다고 나는 겁이 났다. 평생, 이 몸으로는 살고 싶지 않았다.


22살의 나는 속눈썹 펌과 인중 그리고 눈썹 제모를 하는 사람이었다. 여전히 옷 쇼핑을 하지 않는다. 


23살의 나는 고혈압을 걱정하는 성인이 되었다. 엄마와 아빠는 고혈압으로 약을 먹었다. 엄마는 하루는 나에게 예쁜 옷을 입고 싶지 않으냐고, 하루는 고혈압 위험자니까 살을 빼라고, 어떤 날에는 빈둥빈둥 빈둥거린다고 또, 어떤 날에는…


24살의 나는……..


25살의 나는…….

이전 04화 어지럼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