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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자글방 Jan 24. 2024

몸을 먹지 않겠어요

[몸의 기록] 어진

2021년 6월이다. 내가 몸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 날은. 선언이라고 하니 굉장히 거창한 발화를 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별거 없이 단지 스스로 한 다짐에 가까운 것이다. 개인의 실천이 유일한 해답은 아니더라도, 내가 바뀌는 것은 기존 질서에 어떠한 균열을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화했다. 살면서 나에게 가장 많은 음식으로 행복을 주었던 사람에게. 엄마 난 이제 더 이상 동물을 먹지 않을 거야. 동물을 거친 것도 필요하지 않아. 나는 못 먹는 게 아니고 안 먹는 거야. 


나도 잘 모르겠다던 일이나 감정들은 때로 남에게 설명하면서 확실해지기 마련이다. 21년 5월의 마지막 날, 함께 살아갈 동거인과 앞으로의 이야기를 했다. 어떤 곳으로 집을 마련할지, 어떤 제품으로 집을 갖춰나갈지. 그러면서 나는 최대한 동물성 재료를 지양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너무 많은 생명에게 빚졌다고. 이제는 같이 살면서 조금씩 줄여보자고 이야기 나눴다. 


그렇게 비건지향인 생활은 시작되었다. 미래의 동거인에게 내가 살아가고픈 방향에 관해 이야기하다 이제는 다른 몸을 그만 먹어도 되겠다 싶었다. 너무 많은 생명에게 빚졌다고. 비인간 동물을 먹으며 살아온 일은 의도하지 않더라도 너무나 많은 착취에 동참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먹는 이 몸들이 어떤 과정에서 탄생되었다가 어떻게 죽어 내 식탁까지 올라오는지. 의도하지 않은 임신과 출생을 강제로 반복하며, 철저히 소외된 상태로 삶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혹은 생명을 탄생시키지 ‘도구’가 되지 않는 동물들은 그 자체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산다는 자체로 어떤 죽음을 맞이하는지 알고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반려묘를 보며 나는 왜 너는 안 먹을까, 난 누굴 먹는 중일까 생각했다. 책장 한쪽에 꽂혀있는 책을 보며 ‘축산업’이라는 학문과 자본이 만나 얼마나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지 알게 되었을 때. 또한 이 과정이 얼마나 기이하고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며, 부술 수 없을 만큼 견고한 체계로 이루어졌음을. 


누군가에게 가장 어려운 투쟁은 일상에서의 투쟁이 아니라 했던가. 우리 부모님은 소와 닭을 키우고 난 그 과정을 익히 잘 알고 있다. 소를 키우는 이유는, 단지 소가 너무 좋고 사랑해서라고 답하는 부모님과 살아왔다. 더 이상 먹지 않는다는 말에 가뜩이나 몸이 약한 네가 고기도 먹지 않으면 어떡하냐는 걱정이 담긴 말이 돌아온다. 기형적인 축산업의 현장을 파헤치는 다큐멘터리에 서 촬영을 허용했던 농장의 주인은 소를 ‘사랑’해서 촬영을 허락했다. 이들과 난 분명히 다른 사랑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숨이 턱 막혔다. 


비인간 동물의 몸은 인간과 비슷하게 기록된다는 점에서 이 체계에 더욱 이질감을 느꼈다. 무게로 새겨진 동물의 몸은, 인간의 무게를 줄이거나 늘리는 데 사용되었다. 둘 다 무게로 기록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전시된다는 점에서도 어떤 미세한 비슷함과 이질감을 느낀다. 인간은 스스로를 전시하거나 전시된다. 어떠한 권력에 의해 철저히 대상화되어 전시되는 인간(이들 대부분은 여성이다)이 있었고, 비인간 동물도 인간동물의 욕구를 위해 적절한 조명과 함께 전시된다. 먹히는 동물과 그렇지 않은 동물의 몸이 비슷한 듯 나뉜 세상에 울렁거렸다. 


또한 우리는 알고 있다. 아무리 동일한 분노를 느낀다고 할지라도 당장 생존을 위해 선택의 여지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겐 1300원 참치삼각김밥을 사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을 테니까. 각자의 속도는 환경과 맥락, 생존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그 속도를 마음속 깊이 존중하고 응원한다. 중요한 것은 함께 고민하고, 그 같은 고민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라고 믿는다. 나는 오랫동안 인간, 비인간 동물과 함께하고 싶다.


상품으로 비인간 동물을 기록하는 방식에 진절머리가 난 이들은 새로운 방식을 시도한다. 몸을 죽 이는 학문이 있는 세상에 다른 방식으로 균열을 내기 시작한다. 좁디좁은 곳에서 자신의 분뇨와 함께 살아갈 돼지를 구출해 새 공간을 마련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책을 써가며, 강연을 다니며, 칼럼을 쓰며, 영상을 만들며, 노래를 부르며, 모임을 가지며, 많은 사람들이 배부르게 먹기 위해 모인 곳에서 ‘난 동물 안 먹어’라고 외치며 기록되지 않았던 몸들에 대해 기록한다. 


직접 먹지 않으며 자기 몸에 기록한다. 각자의 속도에 맞게. 이렇게 몸의 기록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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