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커피를 접했을 때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커피 봉투에 써있는 글들이 분명 한글인데 난 도통 무슨 말인지 알수가 없었다. 버번, 카투라, 워시드 프로세스. 복잡하고 어려운 글로 가득 차있었다. 그래서 커피를 사서 집에서 내려먹고 싶어도 모르는것이 들통 날까봐 구매하지 못했다. 혹시 바리스타가 물어볼까봐 겁이 나기도 했다. 물어보기 전에 원두를 황급히 놓던가, 아니면 바로 구입을 했다. 그러면 물어보질 않으니까. 지난한 커피 생활을 끝으로 나는 본격적으로 커피로 밥벌이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커피로 밥벌이를 한지 10년이 지났다. 다시 커피를 살 때 힘들어하던 시간을 떠올려본다. '별거 아닌데 왜 그랬을까' '조금만 알았더라도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했던 경험을 똑같이 하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커피에 관한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우리가 좋아하는 음료는 어떤 것이 있을까? 커피를 포함해 와인, 위스키, 맥주, 증류식 소주, 청주(약주) 정도가 있다. 이 들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재료가 단순하다는 것이다. 커피는 열매의 씨앗을 볶아서 만든 재료고 위스키는 보리나 곡물을 발효시켜 만든 술이고 와인은 포도와 껍질을 이용해서 만든 술이다. 사케에서는 고급 사케로 갈수록 쌀을 더 많이 깎는다. 정미율이라고 하는데 많이 깎을수록 사케는 비싸진다(쌀을 많이 깎을수록 재료값이 올라가기 때문). 음료의 핵심은 단순한 재료로 복잡한 맛을 내는 것이다. 커피도 위스키도 와인도 그렇다(물론 요즘 맥주는 아니긴 하다). 좋은 음료는 단순한 재료로 다양한 향미를 만들어내고 마시는 사람으로 하여금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다.
단순하다고 했지만 쉽다고는 안했다. 무슨 말이에요? 분명 단순하다고 했잖아요? 라고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단순하지만 아주 깊고 어두운 것이 재료다. 흔히 커피라고 하면 나무에 달린 열매 속에 씨앗을 떠올릴수 있다(떠올렸다면 중급이상이다). 단순한 재료 같지만 커피의 품종은 많다. 아니 정말 엄청나게 많다. 우리가 소비하는 커피 품종은 그 중에 아주 극소수다. 심지어 에티오피아에서 자란 커피는 어떤 품종인지도 구별을 못할 정도다. 우리가 아는 아라비카에 수 많은 커피가 있는데 사실 아라비카 말고도 더 있다. 여기에 새로 만들고 있는 품종까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위스키는 어떨까? 위스키는 오히려 재료 자체는 단순하게 보일지 모르겠다. 버번은 옥수수와 라이를 위주로 하고 싱글 몰트는 보리를 사용한다. 하지만 위스키에는 제일 중요한 재료가 등장한다. 바로 오크통. 증류 원액을 만든 것 뿐만 아니라 오크통도 중요하다. 오히려오크통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어떤 오크통을 쓰느냐에 따라 아예 다른 술이 된다. 쉐리 와인을 만들 때 썼던 오크통을 사용하면 꾸덕하고 진득한 과일향이 느껴지는 쉐리 위스키가 된다. 쉐리 오크통안에서도 여러갈래로 나뉜다. 수 많은 오크통을 사용하면서 알콜에 향기롭고 다양한 향이 스며들고 텍스쳐와 바디감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굳이 이 넓고 깊은 바다에서 수영을 시작할 필요가 없다. 수영을 처음 배우는 아이에게 바다 수영을 가르칠 필요가 있을까? 처음엔 낮은 풀에서 놀면서 배우다가 조금씩 깊은 물에 적응해나가고 발차기를 배우게 낫지 않을까? 커피도 그렇다. 처음엔 내리는 방법부터 배우는 것이 좋다. 어떻게 내리는지, 어떤 도구가 있는지, 어떻게 마시는지. 그런 다음에 조금씩 깊은 물로 가보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처음 수영을 배울 때 처럼. 처음 시작한다고 근본부터 공부한다고 덥썩 품종이나 재료부터 공부하는 순간, 커피에 대한 호기심은 금새 식고 드리퍼를 창고 넣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니 천천히 시작해보자.
이 책은 원래 출판사에 출간 제의를 받고 써보려고 했다(물론 제목부터 내용도 달라지지만). 출간 제의를 받고 커피책을 만들려고 했다. 다행히도 출판사의 방향과 나의 방향이 잘맞아서 진행하려고 했지만 하진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유명인이 아니다 보니 출판사가 원하는 쪽으로 맞춰야하고 계약도 만족할만하지 않았다. 그래서 출판을 포기했다.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완성된 목차를 보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런 책을 꼭 한번 만들고 싶었는데 못 만들어서 아쉬웠다. 다른 출판사가 언제 연락을 줄지도 모르고 책을 쓰고 원고를 돌리자니 시간이 걸리고. 그래서 브런치에서 써보기로 했다. 예전에 글 한편 써서 제출했는데 운 좋게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지금 생각해봐도 신기하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통해 커피에 대한 글을 써보기로 했다. 언젠가 이 책이 완성되고 좋은 출판사를 만나면 아날로그 책으로 만들어질지도 모르지 않는가(책이 완성될지는 미지수). 포기하지 않는다면 나오겠지 아마도.
짜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이 책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조금 편하게 내가 쓰고 싶은대로. 쉽지만 간단하지는 않게 마치 1타 강사처럼 써보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분이 커피에 관심이 있다면, 읽을수록 도움이 되는 글을 써보겠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