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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반지 Mar 28. 2023

몸 안에 작은 용종들

[시간 순번 3] 자궁 용종 제거 시술

그것들이 왜 내 안에 있을까? 어떤 역할을 수행하려고 생겨났나? 아닌가 보다. 의사는 수술해서 떼어내자고 한다.

한 단계 완수할 때마다 깃발 꽂는 땅 빼앗기 게임이 생각난다. 정상 조직이 있어야 할 자리를 빼앗고 이 녀석들이 깃발 꽂은 이유가 뭘까.     


 용종 녀석들 왜 생겼는지 길게 생각할 때가 아니다. 아무리 파고 들어봐야 내 스트레스로 결론지어질 것 같다. 그보다 ‘수술’이란 말에 또 한 번 울상이 된다.     

 몸은 스스로 회복돼서 원래 상태로 돌아올 거라고 믿는 자가 나다. 물론 감기몸살, 일상에서 생길 수 있는 가벼운 편두통정도를 말한다. 놔두면 스스로 낫기도 하니 주사 맞는 것, 약 먹는 것에 신중한 편이다. 그래서인지 시험관시술 하기 전까지 건강기능식품이나 영양제 하나도 먹지 않았다 (지금은 의사가 줄이라고 말할 정도로 먹는다). 그런 내게 수술이라니…     


난임 병원 첫 방문 날 초음파 검사와 나팔관 조영술을 했다. 결과 보자마자 의사가 한 말이 ”음~ 2cm 정도 되는 용종이 보이네요. “였다. 용종은 두 검사에서 다 보였다고 한다. 덧붙인 한 마디 ”이것 때문에 임신이 안된 건 아닌데 떼는 게 좋겠어요. “ 이유는 한 개가 착상 위치에 가깝기 때문이라고.     


그 녀석이 깃발 꽂은 위치가 상하좌우로 조금만 벗어나 있었으면 수술 안 해도 됐을까. 꼭 해야만 하는 수술일까. 일상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데.

근데 임신은 안 됐잖아. 임신을 위해서라면 해야 할까. 아파서 병원 온 게 아닌데 와서 환자가 된 듯한 기분이 또 든다.

내향형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속으로 고민하고 갈등하고 곱씹고 또 끄집어내어 생각하고 넣어놓고 반복하고 있다. 결론도 내지 못하는 채로.     


 병원에서 나와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어, 어땠어?”

“(휴… 휴…) 자궁에 용종 있대.”

“어 그래? 의사는 뭐라그래?”

“수술해서 떼어내재. 수술 무서워.”

“그래 알겠어. 오늘 수고했네. “

 짤막하게 말하고 끊었지만 난 알고 있다. “그래 알겠어”라는 남편 말 뒤에는 ‘이렇게 중요한 일을 단 번에 생각하고 결론내기 어려우니 지금 하는 중인 바쁜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나도 생각해 볼게.’라는 말이 숨어 있다는 걸.     

 수술 날짜를 잡기 위해 이 달에 생리하면 2~3일 차에 방문하라고 한다. 내 생리주기로 대략 3주 정도 시간이 있다. 그 기간 동안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깊고 깊은 고민에 빠져야지. 그래야 이후에도 후회가 없고 나다운 모습이다.     


 <Polypectomy를 하다>     


 3주는 금방 지나간다. 그동안 남편이 의견을 말했다. “몸 안에 나쁜 건 빨리 없애 버리자.” 착상 위치에 용종이 있다는 말에 행여나 그것 때문에 착상에 방해가 되어 임신이 안 됐을까 싶어 나 또한 수술을 할까 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래 하자.” 이만큼 고민하면 됐다 싶을 때 행동으로 옮기는 성향이기에 그즈음 생리 3일 차에 병원으로 갔다.     


수술 날짜가 잡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달인 9월이 시작되는 첫날이다. 내시경으로 자궁 내부를 보면서 용종을 떼어낸다고 설명 들었다. 간단한 수술이라고 하는 말이 참 야속했다. 그래도 뭘 잘라내고 떼어내는데 간단하다니.     

역시나 겪고 난 몸은 간단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수술 이튿날까지 아랫배가 아프고 이상할 정도로 잠이 쏟아졌다. 점심 먹은 후 식곤증이 밀려오는 시간이 하루 종일 계속되는 것처럼 졸리다. 수술 후 3일 정도는 잠자는 방 안의 공주가 되어 일어나지 못하는 주말, 그리고 내 생일을 보냈다. 덕분에 수술 사실을 모르시는 엄마가생일 차 끓여준 미역국을 자궁에 좋은 몸조리 음식으로 먹었다.     

용종은 4개를 떼어냈고, 그중 하나는 착상 위치에 가까웠으며, 조직검사 결과는 이상 없다고 경과 설명을 들었다. 용종 녀석들이 꽂아 놓은 깃발은 그렇게 제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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