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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반지 Mar 31. 2023

자연임신을 시도해 보자

[시간 순번 4]

용종이 생물학적으로 무얼 말하는지 정확히 모른다. 있어야 할 게 아니라는 것만 어렴풋이 아는 정도다.

담당 의사는 1개월 회복 기간을 거친 후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자고 했다.

용종이라는 게 있는 줄 몰랐다가 이제 떼어냈으니 자연임신 시도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의사에게 의견을 말했다. 내가 원하면 그렇게 하자고 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걸작 ‘노인과 바다’ 주인공 산티아고는 매일 바다에 나간다. 손에 든 것 없이 배에서 내려도 또 나가길 반복한 게 무려 84일.

그만둘 만도 한데 놓지 못하는 사정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이것 외에 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을 때,

겹겹이 쌓아 올린 실력이 있어 한 번 더 하면 될 거 같을 때,

세상에는 운이라는 것이 있어 그 운을 내가 받을 수도 있다는 기분이 들 때,

몸이 건강하니 더 해볼 수 있는 여력이 있을 때,

늘 해오던 관성이 또다시 그쪽으로 이끌 때 정도일 듯하다.


그때 내 심정은 현실적이었다.

시험관 약, 시술, 검사 비용 소요 전 자연스러운 몸 상태로 임신이 된다면 경제적으로 이득이다. 몸도 많이 상하지 않겠지.

용종 녀석들도 제거되었고 딱 한 달만 시도해 보자.

초음파 힘을 빌렸다. 이른바 ‘숙제’(가임기 부부는 알만한 용어다) 날짜를 잡는데 담당 의사가 도와주었다.


10월 초순 날씨는 아이들 마음만큼이나 순수했고, 나라에서 정해준 개천절 국경일은 직장인에게 더할 나위 없는 아름다운 휴식 시간을 제공해 주었다.

신나게 놀러 나가기 충분한 조건이다. 2,30대 때 나라면 황금과도 같은 시간을 누렸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떼어진 용종 있던 자리를 회복하려면 쉬어주어야겠지라고 위안해본다. 임신 준비를 위해 마음의 안정도 필요하다는 생각에 편안히 집에서 지냈다.


일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고 있는 시간은 무척 빨리 간다.

연휴는 쏜 살 같이 날아갔고, 병원에서 정해준 날짜에 테스트해 보려고 임테기가 서랍 속에서 대기하고 있다.

원래도 아이를 꼭 낳아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마음을 더 크게 키운 장본인이 조카다.

언니가 결혼하여 낳은 딸은 나를 비롯하여 온 가족 마음을 뒤흔들기에 차고 넘쳤다.

맑고 깨끗한 마음을 세상에 찌든 어른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준다.

아이의 세상을 잘 몰라서 저지르는 어른들 행동을 끊임없이 용서하고 웃어준다. 미안함과 고마움의 깊이를 알게 한 작고도 큰 존재다.


조카는 유토피아가 뭔지 내게 물었다.

“이모, 유토피아가 뭐야?”

“유토피아란~ 푹신한 구름과 구름 위로 뛰어다니고, 달콤 가스로 올라간 하늘 풍선에서는 사계절 내내 사탕이 쏟아져 내리고, 폭포수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면 물고기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고, 유니콘을 타고 어디든 갈 수 있는 하얗고 파랗고 핑크빛 가득한 말랑말랑하고 향기롭고 포근한 곳이야. “


상상 나래를 펼쳐 설명했다. 조카는 눈이 동그래지고 입을 크게 벌려 공기를 한가득 삼키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유토피아 실존 여부를 떠나 어린아이 눈높이에 맞춰 알려줬다는 안도감이 든다.


눈으로 본 적 없는 것은 상상력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 날짜만 가기를 기다리는 14일 동안 임신 증상이 나타나는 것만 같았다.

혈액 검사, 초음파 검사 해보기 전까지 증상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글을 봤어도 말이다. 정도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몹쓸 인터넷 검색은 계속 됐다.

‘임신 증상’이라는 말에서 글자 몇 개만 추가하거나 빼고 조회하니 새로운 내용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참으로 다양한 임신 초기 증상을 느꼈던 것 같다. 미세하게 나타난 이런저런 증상들은 임신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 몸을 지배한 걸까.

14일을 애써 꽉 채우고 테스트한 결과는 임신이 아니라고 알려주었다. 한 달을 보냈네. 시험관 바로 해도 됐었겠군.

그 사이에 난임센터가 아닌 다니던 동네 산부인과에서 염증 치료와 세균 검사도 받았다.

자연임신 시도하는 동안 자극이 계속 주어지다보니 염증이 생겼을 수도 있고,

임신인가 아닌가에 매일 골머리 썩다보니 신경이 쓰여 발생했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염증이 있다는 건 사실이었고 시험관 시작 전 날까지 산부인과에 다녀왔다.

“과배란 주사 맞는거에요.”

씩씩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처방해주는 먹는 약과 시험관 시술 사이에 특이한 상관관계가 없다는 설명도 곁들여주었다.

난임 병원에 가거든 염증 약 이름과 성분을 말하도록 하라는 부연 설명과 함께.


이제는 시험관이다. 자연임신이 되지 않았음을 의사에게 알려주고 나오는 길이 왠지 기분이 더 가벼웠다. 자연임신이 잘 되지 않지만 시험관이라는 방법이 있어 너무 다행이다. 어제까지 임테기 결과에 다운되어 있던 기분은 오늘 또 말끔해진다. 기분이 오락가락한다. 난임센터 방문 3개월 만에 본격적으로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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