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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반지 Apr 04. 2023

첫 과배란주사

[시간 순번 5] 두 번째 과배란


시험관 시작하기 전 두려웠던 이유를 꼽으라면 두 가지다.

스스로 배 피하지방에 찔러 넣는 자가주사, 호르몬 수치를 보기 위해 자주 해야 하는 피검사. 둘 다 주사와 관련 있다.

과연 이게 무서운 일인가 싶을 정도로 막상 시험관 치료를 하면 예상치 못한 이벤트가 속속 나타난다. 알 길이 없다. 시험관 시작 전에는.

단 시간에 짐작이라도 할 수 있는 건 주사가 많다는 것뿐이다.


집에서 3 정류장쯤 가면 나오는 가까운 곳에 놀이공원이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단짝 친구는 역동적인 놀이기구를 무척 좋아했다. 롤러코스터, 다람쥐통 같은 360도 회전하는 놀이기구를 야무지게 잘 타고 내리는 아이다. 집 근처 놀이공원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보고만 있어도 입이 떡 벌어지는 휘황찬란한 시설은 아니었다.

롤러코스터가 두 바퀴 회전하는 게 전부이거나 흔히 볼 수 있는 바이킹 등의 시설이 없다거나.

그래도 초등생이 타기에 만만한 놀이기구는 아니다. 잘 타는 친구와 같이 간 날 롤러코스터 대기 줄에 서서 기다리는 동안 그렇게 무서울 수 없었다.

친구가 타자니 한 번 정도 탔는데 열차가 서서히 오르막 선로를 올라가며 냅다 떨어지기 직전 다다를 때는 공포 그 자체였다.


해보기 전에는 두렵다. 내가 내 살에 바늘을 찔러야 하는 주사라니 얼마나 아플까. 통증과 두려움을 없앨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의사에게 특이한 요청도 해봤다. 피부과에서 쓰는 리도카인 크림을 같이 처방해 줄 수 있냐고.

단호히 “안돼요.”였다. 그 정도로 아프지 않으니 한 번 해보라는 말과 함께 고날에프와 메노푸어라는 약을 처방받았다.

약만 받아왔을 뿐인데 맞기 전 두려움에 비해 의외로 기분은 밝아졌다. 이렇게 해서 아이를 가질 수 있다니 의료기술에 너무 감사했다.


자가주사를 처방받아온 날 저녁도 롤러코스터 줄에 서서 대기하던 날과 비슷했다.

뾰족한 바늘을 보면서 두려움도 함께 느꼈다. ‘잘해보자, 잘해보자.’ 자기 암시도 걸었다. 고날에프는 바늘이 딱딱한 플라스틱 용기에 개별로 담겨 있는데 얇은 종이 뚜껑을 벗기고 펜타입 주사 본체에 끼운다. 끼우고 나서는 오래 지체할 수 없다. 무균 처리된 바늘이 오염될까 봐 재빨리 뱃살을 잡고 찔렀다.

의외였다. ‘앗! 안 아프다!’


초등 4학년 때 친구에 이끌려 처음 탔던 역동적인 놀이기구는 대학 1학년이 되자 하루에 다섯 번을 타는 정도에 이르렀다.

기다리는 동안 두근거리는 마음은 여전하지만 타는 동안 느끼는 짜릿함과 시원함은 발길을 대기 줄로 또 이끌곤 했다.

첫 롤러코스터 대기할 때 무서움은 어디 갔냐는 듯 자연스럽게 타게 된 것처럼  첫 과배란주사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이런 주사라면 내일도 맞을 수 있겠다.


어떤 날은 주사 조작하는 게 재밌기도 했다.

눈과 귀가 멀어 어둠과 고요 속에 살았던 헬렌 켈러도 수없이 많은 노력 끝에 대학에 진학하고 말도 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시도하기 전까지 얼마나 무섭고 깜깜한 암흑 같았을까. 나는 그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어떻게 놓으면 안 아플까 고민하면서 놓기도 했다.

그렇지만 약은 약인지 호르몬을 매일 투약하니 부작용도 왔다.

투약 3일째 되는 날 차를 타고 가는데 오심이 심해 조수석을 젖히고 반쯤 누워 목을 부여잡고 있기도 했다.

6일째 되는 날 어지러움이 심해 퇴근 후 저녁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일어나지 못하고 잠들었다. 아이만 가질 수 있다면 이런 건 견딜 수 있다.


남편도 알게 모르게 많이 신경 쓴다.

모른 척 하지만 몰래 인터넷도 검색해 보고 혼자 유튜브 영상도 보며 시술에 대해 알려고 하는 게 시험관 시술 부부 남편 모습일 것이다.

매일 맞아야 하는 주사에 수면마취 상태로 채취하고 이식하는 과정을 직접 겪는 여자는 남편 애쓰는 모습을 알아도 한 번쯤 짜증을 부리게 되곤 한다.

내 경우는 예민함이 남편을 향했을 때가 난포 터뜨리는 주사 맞을 때였다. 시간을 정확히 지켜야 난자 채취라는 위대한 과학기술의 수혜를 정확하게 받을 수 있다. 투약 몇 시간 전부터 시계만 보며 긴장하고 있다.

과배란주사보다 바늘이 두껍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날카로워져 있었나 보다. 토요일이니 맥주 사다 마시겠다는 남편 말 한마디에 폭발해 버렸다.

”주사 생각 말고 머릿속에 아무것도 안 들어와.

주사도 아프대. 시간도 정확히 맞춰야 된다고. 맥주 오빠가 사 오면 되잖아! “

멋쩍은 듯 전화를 끊은 남편은 직접 맥주를 사다 마셨다.


역시나 난포 터뜨리는 주사도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주사 교육받을 때 간호사가 내게 했던 말.

“여기 오는 분들 처음에 다 무서워하시다가 나중에는 주사에 달인이 돼서 나가세요. 호호호~”

그렇구나. 맥주가 뭐라고 남편에게 맥주캔 터지듯 쏟아낸 신경질이 미안해졌다.

과배란주사 시작으로 시험관 시술하는 동안 꼭 명심해야겠다. 주변사람들에게 온화해지자고.

호르몬 약으로 인해 감정 변화가 요동치겠지만 엄마가 될 사람이니까, 소중한 내 가족이니까. 남편이니까.


#과배란주사 #고날에프 #메노푸어 #시험관자가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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