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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란한 Apr 24. 2024

나 홀로 제주 한라산

제주여행의 완전한 꽃


4년 전 가을의 초입으로 들어서는 추석, 나 홀로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코로나로 해외여행을 못 가니 국내라도 가보자 싶어 떠나기 몇 주 전 즉흥적으로 비행기 표를 끊었다. 해외여행도 혼자 몇 번 가본 터라 국내를 혼자 돌아다니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산을 좋아하게 되니 자연스레 제주도 여행 일정에 한라산을 넣었다. 한라산은 이전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만 알고 있어서 혼자 하는 오랜 시간의 산행이 살짝 걱정은 됐지만 일찍 출발하는 걸로 하고 하루 일정을 다 빼서 시간을 넉넉하게 잡았다.



블로그를 틈틈이 검색하며 주차할 곳, 입산 시간, 중간 게이트 통과 최소 시간, 준비물, 하산 시간 등 혼자 가는 것인 만큼 꼼꼼히 체크하였다. 왕복으로 총 걸리는 시간만 해도 기본 8시간이 넘으니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다.



제주도 가기 전 짐을 싸면서 등산화와 레깅스, 바람막이 점퍼 등 등산에 필요한 용품을 몇 개 되지 않지만 꼼꼼히 챙겼다. 어딘가로 여행 갈 때 항상 최소한의 가벼운 짐만 챙기는 내게 여분의 신발을, 그것도 무거운 등산화를 챙기는 건 생소한 일이었다. 이젠 등산화 하나 챙기는 것쯤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되었지만 그땐 진짜 등산인이 된 것만 같았다.



평소 안 챙기던 등산용품 때문인지 15인치 나의 작은 캐리어는 금방 가득 찼다. 다른 일정도 평소 가보고 싶은 곳, 맛집 위주로 짜서 기대되었지만 제일 기대되고 또 걱정되는 건 역시나 한라산이었다.



3박 4일의 여행 중 돌아가기 전 날 일정으로 잡았는데, 혹시나 등산으로 몸에 무리가 가 다음 날 일정에 영향을 줄까 싶어 최대한 마지막으로 빼두었던 것이다.




제주도의 거의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드디어 한라산 오르기 전 날 저녁, 나는 간단한 안주와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일찍 잠을 청했다. 원래 같으면 아쉬운 여행 밤을 달래기 위해 두세 캔을 더 마신 후 겨우 잤을 테지만, 체력을 비축해둬야 했기에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침대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잠들기 전까지도 설렘과 걱정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새벽 6시 나는 알람 시간에 맞춰 눈을 떴고, 씻으러 가려는데 이게 웬걸 허벅지에 알이 조금 배긴 듯 근육이 뭉친 느낌이 났다. 아무래도 여행은 여행인지라 많이 걷고 또 전날 워밍업 겸 오름을 하나 오른 게 무리가 되었던 걸까. 다행히 많이 뭉친 건 아니었지만, 몸의 자그마한 아픔이 오랜 시간 산행에 더 큰 여파가 되어 자칫 다치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되었다.



동네 산에 가는 거였다면 이 정도로 아무렇지 않았을 텐데, 씻고 준비하면서도 계속 고민이 되었다. 내가 너무 무리해서 제주도 일정을 짠 걸까, 산행은 다음으로 미뤄야 할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무리해서라도 가야 하지 않을까. 여러 생각이 짧은 시간 동안 머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일단 나서보기로 결정했다.



추석 연휴였지만 주차장과 갓길에는 차들로 가득했고, 나는 멀찍이 렌터카를 대놓은 후 한라산 성판악 매표소 쪽으로 걸어갔다.(초보는 성판악 탐방로 코스로, 그 이상은 관음사 탐방로 코스로 많이들 간다.) 새벽 공기를 머금어 날이 꽤 차가웠고 이슬비 때문인지 주변은  촉촉했다. 그리고 몸이 점점 가벼워지면서 이상하게 다리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등산로 입구에 즐비한 좌판을 지나가면서 슬쩍 보니 김밥, 생수, 장갑, 스틱 등 다양한 물건을 팔고 있다. 김밥은 유명한 전복김밥집에서 사두었고 보자 보자 음 장갑을 안 챙겨 왔다. 아차 싶어 값싸면서도  정상에서의 혹독한 바람을 잘 이겨낼 수 있을만한 적당한 장갑을 골랐다. 화장실에서 마지막 정비를 하고 본격적으로 출발이다.



사람이 꽤나 많았다. 등산을 자주 가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젊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정말 많다는 거다. 아마 다들 건강과 웰빙이라는 공통된 관심사로 시작하지 않았을까 혼자 속으로 생각하며 여러 무리들 사이에서 나는 씩씩하게 올랐다. 한라산을 오르기 위해 나는 바로 전 주에도 가파른 산을 열심히 오른 터라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드디어 마지막 휴게소인 진달래 대피소에 도착했다. 진달래 대피소(게이트)까지의 통과시간은 제한되어 있어서 그 시간 안으로 도착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인 정상으로 오를 수 없고 관리인에 의해 곧바로 통제된다. 그래서  앞만 보고 열심히 올랐고 다행히 생각보다 여유 있게 도착하였다. 출발한 이후 제대로 갖는 첫 휴식이었다. 나는 빽빽한 사람들 틈 사이로 빈 곳에 자리를 잡아 내가 좋아하는 간식인 칸쵸를 꺼내 먹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진달래라는 대피소 이름답게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펴있었고  대학생처럼 보이는 삼삼오오로 모인 친구들, 연인들, 중년의 부부, 모녀, 외국인 등 다양한 연령대와 조합으로  많은 사람들이 곳곳에 앉아 쉬고 있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나처럼 혼자 온 사람은 없었다. 그제야 혼자인 게 실감이 났지만, 나쁘지 않았다. 주변 경관이 너무 예쁘고 아름다워 외로울 틈이 없었고, 또 등반이라는 하나의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함께' 오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르는 4시간 동안 쉬었다가 올랐다가를 반복하며 만났던 사람들을  또 마주치고 또 마주쳐서 이제 마치  아는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등산 페이스가 비슷한 사람끼리 같은 구간에서 계속 만나게 되는데, 그중에 시끄럽고 소음처럼 느껴지는 주변의 사람들은 내 페이스를 잠깐 무너뜨리면서 그들을 빠르게 지나가거나 내가 천천히 올라서 먼저 보내거나 하였다.



그렇게 한라산의 정상에 다다를 즈음 처음엔 완만해서 생각보다 쉽다 싶더니, 이제 마의 구간이 다가왔다. 끝도 없는 계단이 펼쳐지고 하늘은 가닿을 듯 가깝고 구름은 바로 내 옆을 유유자적 지나가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등산할 때 자주 쉬면 더 쳐지고 힘들어져, 최대한 쉼 없이 천천히 올랐고 나 혼자 마의 구간과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 그러다 부모님과 함께 온 어린 친구들이 씩씩하게 쌩쌩 올라가는 것을 보고 더 힘을 내곤 했다. 땀이 조금씩 식고 바람이 차가워지는 걸 보니 이제 정상이 다가온 듯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줄이 길게 늘어져 정체되어 있었는데, 다름 아닌 한라산 비석 앞에서 인증샷을 찍기 위해 줄 서있는 사람들이었다. 비석 인증샷을 찍으려면 한 시간 이상 웨이팅해야 한다는 것을 블로그를 통해 나는 이미 알고 있었고, 아까 먹다 남은 칸쵸를 꺼내 먹으며 조용히 뒤따라 줄을 섰다. 내 인증샷 차례가 돌아오는데 정말 딱 한 시간이 걸렸다. 난 혼자였지만 걱정할 건 없었다. 뒤 팀이 앞팀의 사진을 찍어주는 관례 아닌 관례가 이미 형성되어 있어서 나 또한 앞 팀의 사진을 찍어주었고 바로 뒤 커플이 내 단독 사진을 찍어주었다. 고맙게도.



하지만 내 몰골은 10장 찍은 사진 중에 1장 건질까 말까인데,  달랑 3장의 사진으로 건질 건 없었다.  그렇다 사진 하나 찍자고 한 시간이나 기다린 건 나에게 의미가 없었다. 나는 비석 인증샷을 찍고 나서야 비로소 줄에서 해방되어 백록담을 마음껏 볼 수 있었다. 백록담 물은 크게 없었지만 또 안개에 싸여 선명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눈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나는 부모님께 영상통화를 걸어 명절 인사로 퉁치며 백록담을 보여드렸고, 친한 친구 몇몇에게 사진을 보내주었다. 비록 혼자 왔지만 내가 몸소 느낀 아름다움을 공유할 수 있는 소중한 몇몇이 있음에 또 감사했다. 그렇게 혼자 백록담에 심취해 있는데, 어떤 여자분이 말을 걸며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신다. 그리고선 본인도 찍어달라고.



혼자 온 사람들은 혼자 온 사람들을 알아본다. 그리고 혼자라서 외롭지 않음을 알고, 혼자 할 수 없는 것은 혼자 온 사람끼리 또 기꺼이 해 줄 수 있음을 안다. 우리는 백록담을 배경으로 서로를 예쁘게 찍어주었고 서로 만족해하며 프사각이라며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그분이 찍어준 3장의 사진 중에 한 장은 내 인생사진이 되었고 또 내 카톡프사가 되었다. 한 시간을 기다려 찍은 사진보다 잠깐의 예쁜 모습을 발견하고 담아준 사진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나는 백록담 정상 어느 한 귀퉁이에 자리 잡아 전복김밥을 다  먹고 나서도 꽤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 한라산의  가을 경관은 정말이지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그곳에 최대한 오래 머무르고 싶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한라산 한라산 하는구나 싶었다. 정상에 머무를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만큼 머무른 후, (안전한 하산을 위해 일정 시간에는 하산을 해야 한다.) 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산을 내려왔다. 그때는 등산스틱도 없던 때라 오로지 내 무릎에만 의지해 산을 내려가야 했고  올라올 때보다 더 힘들고 시간도 더 오래 걸렸다.



내려가면서 어떤 커플과 등산페이스가 같아서 계속 같이 움직이게 되었는데 여자는 너무 힘들다고 짜증을 내고 그 옆에 남자는 그런 여자친구를 달래느라 바쁘다. 정말  내려가는 4시간 내내 그렇게 서로 토닥이다가 결국 남자도 참지 못하고 싸움이 터졌다. 엿들으려고 엿들은 게 아니라, 앞뒤  간격이 좁아 대화 내용이 계속 들렸다. 나도 싸우는 걸 계속 듣고 싶지 않았지만, 내려갈 때는 너무 힘들어서 페이스를 조절해 누군가와 거리를 조정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한라산을 오르면서 느낀 건 물론 자연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한라산을 누군가와 함께 오르게 된다면 그 누군가와 반드시 더 돈독해지거나 싸우게 되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거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한라산을 같이 가보고 싶다. 더 돈독해지거나 빨리 쫑 나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니까!



그렇게 나 홀로 한라산을  무사히 완등하였고 그 이후로 제주도에 갈 때마다 한라산은 무조건 하루  일정으로 넣는다. 나에게 한라산은 제주도의 완전한 꽃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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