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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란한 Apr 17. 2024

첫 등산화

산을 더욱 좋아하게 만들어준 첫 등산화



언젠가부터 산을 좋아하게 되었다.


어릴 때는 부모님 손에 이끌려 새해라든가 석가탄신일이라든가 특별한 날에만 꾸역꾸역 억지로 올라가던 산이었다.


그때는 이 힘든 산을 왜 자진해서 굳이 오르는 걸까, 특히나 추운 날에는 이불 안에서 뒹굴뒹굴 쉬는 게 최고인데 왜 사서 고생을 하는 걸까 이해되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는 엄마와 가끔 하는 데이트로 동네 뒷산을 오르는 게 다였다. 7년을 연애했던 오랜 친구와도 제대로 된 등산을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으니 나는 등산을 좋아하지 않았던 게 맞다.




등산을 좋아하게 된 계기를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 보면 오랜 연애와 결혼의 종지부를 찍고 심적으로 아주 힘들었을 때 한두 번 산에 오르던 게 좋은 버팀목이 되어 그때부터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산을 오르는 순간에는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떠오르는 잡념들을 떨쳐낼 수 있으니까 가고 또 가고 또 갔다.


등산을 한두 번 가보고 본격적으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뒤 제일 먼저 등산화를 샀다.


아직도 첫 등산화를 샀을 때의 그 설렘과 벅참은 잊히지 않는다. 등산화에 설렘과 벅참이 뭐 그리 있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 주는 나름 고가(?)의 첫 선물이었다.


나를 위한 선물로 10만 원 이상의 가방도 사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 나름대로는 최고(崔估)의 선물이었던 것이다.


또 무언가를 살 때 신중한 편이라 몇 주를 고민하고 골라 샀던 북쪽페이스 브랜드의 발목을 살짝 덮는 갈색의 아주 참한 신발이었다.


19년도 되는 그 해 1월, 나에게 주는 첫 새해 선물이었고 나 스스로에게 의미를 부여해 선물을 해준 건 처음이었다. (물론 소소한 개인적 소비도 선물이라 볼 수 있겠지만 그건 특별한 날이 아닌 필요에 의해 구입하는 필수재 같은 것들이랄까)




등산화는 단순한 물질적 선물이 아닌, 나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용기와 앞날의 응원까지 내포하고 있는 그 이상의 선물이었다.


사실 등산화를 살 때만 해도 산을 이렇게 좋아하게 되거나 산에 꾸준히 가게 될 줄은 몰랐다.


일 년에 한두 번 산에 가게 되더라도, 신기만 하면 언젠가 뽕은 뽑겠지 하는 반신반의와 산에 한번 도전해 보자라는 마음으로 샀었다.


하지만 나는 내 눈에 쏙 든 예쁜 등산화를 신고 더 열심히 등산을 다녔고 산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그렇게 6년째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등산의 동반자가 되어버린 내 등산화는 전혀 질리지 않고, 내 눈에 여전히 예쁘고 사랑스럽다.


등산을 처음 시작하거나 좋아하길 바란다면, 일단 '내 눈'에 예쁜 등산화를 먼저 사보는 것을 추천한다. 뭐든 그렇듯 운동도 장비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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