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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란한 May 01. 2024

등산메이트

혼자이거나 함께이거나


등산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주로 홀로 등산을 다녔다. 누군가와 같이 가기보다 조용하고 고요하게 혼자 산에 오르는 걸 좋아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을 때나 운동을 해서 땀을 쫙 빼고 싶을 때는 무작정 집을 나섰다. 등산화를 신고 가방에 좋아하는 과자 하나와 텀블러를 챙겨서 산으로 향했다.


혼자서 산에 가는 걸 좋아하기도 했지만 또 주변에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반강제적으로 혼자 가는 날이 많았다.


그래도 가끔 함께 가는 등산메이트가 있었는데 산을 좋아하는 엄마와 친구 몇몇이었다. 엄마는 산을 좋아해서 내가 꼬드김을 당해 산에 가곤 했지만, 산을 좋아하지 않는 친구가 관심을 조금만 보이면 내가 꼬드겨서 함께 가곤 했다. 그리고 등산을 좋아하는 유일한 남자사람 친구와 종종 산에 오르곤 했다.




엄마와 함께 산에 오를 때면 평소 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엄마가 아는 몇 안 되는 친한 친구들의 근황, 회사사람들 얘기, 엄마가 제일 궁금해하는 남자이야기 등 여러 가지 주제들로 우리는 함께 산을 오르고 엄마와 운동데이트를 했다. 엄마는 내 얘기를 듣고 싶을 때면 산에 오르자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많은 얘기를 나누곤 했다.


산을 오르면서 엄마와 나누는 얘기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좋았다. 또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 등산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했다. 나이가 들어 언젠가 분명 산에 오르는 게 힘들어질 때가 올 것이고, 또 언제 어떻게 아플지 모를 일이다. 때문에 함께하는 등산이 더 감사하게 느껴졌다. 어릴 때부터 엄마와 등산을 하면 줄곧 그런 생각을 해왔었다.




등산을 좋아하는 친구는 많지 않아서 어쩌다 한번 친구를 꼬드겨 산에 가는 날이면 그날은 그냥 운동이 아닌 놀러 가는 날이었다. 등산을 평소 하지 않거나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친구와 함께 오르는 산이 마냥 쉽진 않았다. 친구의 발걸음 속도를 맞춰줘야 하고, 또 쉼의 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


대신 수다를 떨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내가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간다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왜인지 같이 산에 갔던 친구들이 두 번은 잘 안 가려고 하더라. 막상 정상에 올라가면 좋지만 산을 오르는 과정이 힘들어서 두 번을 가기가 힘든 것 같다. 등산의 매력에 한번 빠지면 그렇지 않을 텐데,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니 나도 더 말하지는 않는다.




그나마 같은 페이스로 등산을 편하게 함께 올라갔던 친구는 중학교동창인 유일한 남사친이다. 이 친구는 등산을 좋아해서 등산모임에도 열심히 나가고, 등산모임을 이끌어가는 운영진도 했던 터라 몰랐던 다양한 등산 지식을 나에게 알려줬다. 등산스틱 구입팁(처음부터 비싼 스틱 사지 않기), 등산 스틱 잡는 법(스트랩을 손목에 감고 키에 맞춰 조절해주기), 겨울 산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등산장비(아이젠, 스패츠, 핫팩) 등 a부터 z까지.


처음엔 등산스틱 아랫부분에 씐 고무마개가 보호캡인 줄도 몰랐다. 그냥 등산스틱에 달린 일체형 고무패킹인 줄 알았다. 고무마개를 빼지 않고 등산을 줄곧 다니다가 나중에 친구가 이사실을 알고 경악을 했더란다. 안타깝게도 그땐 이미 고무패킹이 쥐 파먹은 듯 갈가리 찢긴 다음이었다. 이 친구와는 등산 페이스가 비슷해서 엎치락뒤치락 정상을 향해서만 열심히 올랐다. 정상에 올라가서는 각자 사진을 찍어준 뒤에 근황토크 시작이다. 연애이야기, 결혼고민, 직장사람들 얘기 등 다양한 얘기를 나누고 같이 고민했다.




산에서는 솔직하게 또 진심으로 얘기하게 되는 힘이 있다. 서로의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고민하고 또 생각한다. 산의 경건함과 위엄이 주는 힘일까. 함께 정상을 무사히 올랐다는 사실에 뿌듯하고 또 같이 안전하게 하산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내가 좋아하는 등산을 내가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감 또한 느낀다.


그래서 혼자 하는 등산과는 달리 함께하는 등산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좋은 경치를 보면 함께여서 그 감동이 두 배가 되고, 정상에 올랐다는 성취감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 그리고 등산 후 뒤풀이는 덤이다. 등산 후에 함께 먹는 음식은 그게 무엇이든 꿀맛이고 진수성찬이 된다. 그리고 고된 등산의 하루 끝에는 꿀잠 예약이다. 조만간 혼자가 아닌 등산메이트와 등산을 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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