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25~0826
코피
오전에 스페인어 수업을 듣고 12시에 깔라꼬또로 출발했다. 항상 생각하지만 볼리비아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은 정말 베테랑들이다. 아, 베테랑이라고 하는 게 맞나? 이들은 운전을 잘하는데 '격하게'하기 때문에 은근히 위협을 느끼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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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소포카치에서 깔라꼬또로 가는 택시를 탔을 때는 Kantutani라는 끊임없는 길을 내려갈 때 귀가 먹먹하다가 갑자기 코피가 나더랬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코 속에 혈관이 다른 사람들보다도 겉 표면 가까이에 자리가 잡혀 있고 게다가 비염까지 있어서 코피가 자주 나곤 했다. 거의 매일, 잠을 자다가도 코피가 나곤 했다면 믿겠는가? 그랬기에 콧 속에 흐르는 '액체'가 콧물인지, 코피인지는 구분을 확실히 할 수 있다. 그러니 집도 아닌 택시에서, 갑자기 코에서 흐르는 액체가 코피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는 얼마나 당황스러웠겠는가. 그러나 "어, 코피 난다."라는 말을 내뱉자마자 앞 좌석에 앉아있던 동기가 빠르게 물티슈를 건네주어 간신히 코를 틀어막을 수 있었다.
라파스에 와서 첫 일주일 동안에도 자다가 코피가 매일 났었는데 그때도 나는 당황하지 않고 한국에서와 똑같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곧장 화장실로 걸어 나갔다. 따뜻한 물은 피를 응고시키기 때문에 금방 코피를 멎게 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래서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따뜻한 물을 코 속에 넣었다가 빼면서 피를 같이 빼내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2~3분 내외로 피가 잘 응고되어 금방 멎었을 텐데 그 날은 이상하게도 수 분이 자나도 잘 응고가 되지 않았고 게다가 피가 빠르게 빠지고 숨도 제대로 안 쉬어지니 두통이 더 심해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어지럼증도 심해지기 시작했고 나는 안 되겠다 싶어 따뜻한 물로 조금 적신 휴지로 코를 틀어막고 방에 가서 물을 벌컥벌컥 마신 후에 다시 화장실로 돌아가서 몇 분을 변기 위에 더 앉아 있었다. 앉아 있으면서도 여전히 어지러웠지만 그렇게 휴지를 몇 번이나 더 바꾸고 한 다음에야 코피가 멎었다. 간신히 멈춘 코피가 또 자는 동안 터질까 봐 걱정했지만 그래도 다음 날 아침까지 무사히 잘 잤다. 정말 그 날을 다시 생각하면 아찔하다.
주말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일주일 동안 너무 지친 나머지 집에 박혀서 글을 쓰고 인터넷 서핑도 하는 등 아무튼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가지고 싶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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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테이 집에는 세탁기가 없기 때문에 밀린 세탁물을 세탁소에 맡겨야 했고 이틀 전부터 휴대폰이 먹통이라 통신사에 가야만 했다. 어쨌든 나가야 하는 날이었다. 일찍 일어난 것과는 무관하게 머리를 감거나 화장을 한다거나 하지 않고 그저 모자를 푹 눌러쓴 후 일주일 동안 밀린 빨랫감이 들어있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집 밖으로 나갔다.
세탁소 아주머니는 반갑게 웃으면서 동양인 여자아이들을 맞이해주셨다. 작은 고리 저울로 빨랫감의 무게를 달자 아주머니는 저울을 유심히 보더니 25볼을 달라고 하셨다. 아무래도 정확한 측정치가 없으니 세탁비용은 아주머니의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세탁물을 맡기고 먹통인 휴대폰을 고치러 통신사에 갔다. 스페인어가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떻게 이 문제를 이야기를 해야 할까 걱정했었는데 우리 문제를 맡은 담당 직원이 다행히도 영어를 잘해서 영어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어찌나 다행이었던지. 직원이 말하길, 우리의 문제는 휴대폰이 통신사에 등록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어쩐지 처음 유심칩을 구매했을 때부터 1주일의 기간 동안 메시지가 왔는데 그 메시지가 스페인어였기 때문에 별 문제없겠거니 하면서 계속 무시하곤 했는데 결국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처음에 직원은 여권을 보여달라고 했고 나는 여권을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그랬더니 휴대폰 소유자와 내 이름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게 누군데요?"
라고 물었더니
"그건 말할 수없어요, 다만 이름이 다르네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이가 없어 한참을 직원을 빤히 보는데 그는 일단은 상관없다며 나에게 여권이나 여권 사본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고 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렇다면 통신사에 휴대폰을 등록할 수없다고 했다. 아, 그럼 또 다른 날 와야 하는 건가 하던 찰나 같이 간 동기가 여권 사본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동기의 이름으로 3개의 휴대폰을 다 등록해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이름을 등록한 동기가 가야 하기 때문에 다음 주 내로 내 이름으로 다시 변경을 하러 오라고 했다. 그래도 일단은 통화도 가능하고 사용할 수도 있다니 문제가 나름 해결이 된 셈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나와 동기들 모두의 핸드폰이 다른 동기 단원의 이름 소유로 되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의문이 풀리게 되었다.
점심은 꽤 유명한 치킨 집인 Copacabana에서 치킨을 사 가지고 돌아와서 함께 먹었다. 아침을 조금 늦게 먹은 탓에 배가 불렀지만 그래도 치킨은 항상 옳다. 먹으면서 느낀 건데 여기 닭은 확실히 한국 닭보다 다리가 길다는 것이다. 또 이 곳 사람들도 한국인들 못지않게 치킨을 좋아하니 한국 치킨 산업이 이곳에 진출하게 된다면 아마 대박 날 것이라는 생각을 항상 했다. 식사를 한 후, 오후에는 동기의 선임 단원(지난주 사무소에서 본인의 경험담을 많이 말씀해주셨던 분인데 이 사람에 대한, 정말 충격적인 사실을 이때까지는 알지 못했다.)과 함께 샌프란시스코 성당과 마녀 시장을 돌아보았다. 샌프란시스코 성당 앞 광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신나는 드럼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흥이 나서 몸이 두둠칫 거리며 춤이 절로 났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앞서 걸어나가는 선임 단원을 따라갔다. 과연 여행자의 거리이니만큼 외국인들이 많이 보였다. 우리도 이 곳 현지인들에겐 외국인이니 오랜만에 관광객인 척 내심 들뜬마음으로 거리를 걸어 올라갔다.
그는 본인이 자주 간다는 브런치 카페를 소개해 주었는데 왜인지 으스스한 느낌이 드는 카페이지만 앤티크하면서도 남미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각자 주문한 음료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이 곳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이야기와 현지인들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들을 들었다. 그는 평가받기론 열심히 활동을 하신 분이셨기에 그의 후임으로 가는 동기는 한국에서부터도 엄청나게 많은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동기가 잘 할 것 같다는 믿음이 갔다. 오히려 내 코가 석자이기 때문에 내 걱정만 클 뿐.
카페에서 나왔을 때 그제야 동기는 이 곳에 오니 이제 정말 남미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말을 했다. 샌프란시스코 성당 앞의 흥 많은 남미 사람들, 히피 스타일의 가방이며 옷, 머플러, 신발, 그리고 주술 용품을 파는 가게가 있는 마녀 시장. 라파스 소포카치에 있을 때는 그저 아, 다른 나라에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이제야 남미에 왔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