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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 Mar 03. 2024

시즈오카에서의 첫날

2024.01.20.

 저녁 7시 20분에 우리는 시즈오카 공항에서 후지에다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앞서 입국수속을 늦게 마친 바람에, 원래 타려고 했던 시즈오카역 행 리무진 버스를 간발의 차이로 놓쳐버린 탓이었다. 자연히 숙소에 도착하는 시간이 다소 미뤄지긴 했지만, 뜻밖에 작은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만원 버스를 피해 겨우 대여섯 명의 승객들 사이에서, 원하는 자리에 앉아 짐칸을 넉넉하게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짐칸에 있는 수하물이라고는 우리가 가져온 28인치와 24인치 캐리어를 제외하고 나면 누구의 것인지 모르는 보조가방 하나가 전부였다. 어차피 숙소에 도착해서 다른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창밖을 향했다. 차창에 자잘하게 맺힌 빗방울 너머로 일본어 간판을 단 건물들이 차례로 스쳐갔다.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확실하게 구분이 되는, 익숙하고도 낯선 풍경이었다.

 하지만 비슷한 경관이 계속 이어지자 나는 얼마 못가서 흥미를 잃고 말았다. 옆에서 남편은 구글맵으로 숙소까지의 동선을 체크하고 있었다. 후지에다역에 가면 몇 번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타야하고, 시즈오카역에 내려서는 어느 방향 출구로 나가야하는지. 과연 구글맵은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이에 대해 내가 느낀 감정은, 뭐, 해외 같지 않은 편안함이랄까.

 나도 코트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날씨 앱을 켰다.

 “젠장”

 “왜?”

 “아까 한국에서 내일 날씨를 확인했을 때만 해도 그냥 구름이었는데, 지금은 비로 바뀌었어.”

 나는 한껏 슬픈 표정을 지으며, 구름 아래 빗방울이 눈물처럼 붙어있는 시즈오카의 내일 날씨를 남편에게 보여주었다.

 날이 웬만하면, 시내에서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미호노마츠바라’에 갈 예정이었다. 울창한 소나무 숲과 푸른 바다를 사이에 두고, 검은 모래를 밟으며 후지산을 조망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데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흠……, 나는 잿빛 구름으로 뒤덮인 미호노마츠바라의 풍광을 상상해봤다. 비에 젖어 어둑하게 가라앉은 소나무 숲, 검은 모래를 향해 끝없이 밀려드는 파도, 혼탁한 빛을 띤 바다. 흡사 디스토피아 영화의 배경으로 어울릴 법한 장면이 머릿속에 어렵지 않게 그려졌다. 그래, 내일은 느긋하게 시내 구경이나 하자. 여전히 마음속에 미련은 가득 남아 있었지만, 계획을 접기로 했다.

 남편과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버스는 후지에다역에 다다랐다. 전광판에서 요금을 확인한 다음, 앞문으로 가서 기사에게 현금을 내고 버스에서 내렸다. 역전 광장에는 일루미네이션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비는 거의 그친 상태였다.

후지에다 역

 그러나 우리가 시즈오카역을 빠져나왔을 때,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숙소까지 가려면 캐리어를 끌고 적어도 15분을 걸어야했다.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졌다.

 “우리 그냥 택시 탈까?”

 남편과 생각이 통한 순간이었다. 굿 아이디어. 나는 남편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로써 여행 첫날에 버스와 지하철, 택시를 종합세트로 이용하게 됐다.

 호텔 앞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9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건물 1층과 2층의 외벽 유리를 통해 노란 불빛이 환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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