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맞아 추억해보는 외할아버지
한국 최대의 명절 추석이다.
한국 귀국을 일주일 남짓 남겨두고 남편과 나 단둘이서 맞는 추석은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다. 미국 생활을 정리하면서 마음이 싱숭생숭한 상태에서 맞이한 추석이어서 그런지 가족들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돌아가신 지 어언 2년이 돼가지만 타지에서 맞이하는 이번 한가위에는 할아버지 생각이 특별히 더 많이 난다.
2018년 11월 11일, 외할아버지께서는 여든여섯에 췌장암 말기로 돌아가셨다.
끼니 하나 거르는 법 없이 항상 규칙적이고 부지런한 삶을 사셨던 분이기에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췌장암 판정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그해 여름까지도 건강하시던 할아버지의 췌장암 말기 판정에 모든 외가 식구들이 큰 충격에 빠졌다. 췌장암이란 놈이 아주 지독해서 말기가 되기 전까지는 잘 발견되지 않는다고 했다.
할아버지께서는 매일 아침 일찍 신문지에 서예 글씨 연습을 하실 정도로 부지런하셨다. 어릴 적 외가댁에 머물 때마다 보았던 할아버지의 붓글씨 쓰는 모습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 없었다. 먹 특유의 냄새가 좋아서 할아버지 옆에 딱 붙어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자루에 먹을 갈고 붓글씨를 따라 쓰던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어린아이답지 않게 붓글씨와 한자에 관심을 보이니 '크게 될 사람'이라며 나를 굉장히 예뻐해 주셨고 흐뭇해하셨다.
나는 퇴근 후 자주 할아버지 병문안을 가서 잠깐이라도 얼굴 보여드리고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 병문안을 가지 못하는 날에는 전화를 드려서 안부를 묻고 마지막에는 꼭 사랑한다는 말로 마무리를 했다. 그러면 할아버지께서는 "알러뷰 투!"라고 화답해주셨다. 그 말을 들으면 안심이 됐다. 할아버지께서 아직 살아계시다는 증거 같아서.
할아버지께서는 6.25 참전용사로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셨던 분이다. 죽은 사람을 덮는 거적때기를 몸 위에 덮고 북한군에게 발각될 뻔한 위기를 모면하시고 전쟁을 치르면서 몇 번의 생명의 고비를 넘기셨다.
항상 강인하고 정정하신 분이셨기에 나는 외가의 가장 큰 버팀목인 할아버지께서 건강하게 더 오래 사실 줄로 믿었다. 적어도 췌장암으로 고통스럽게 돌아가실 줄 몰랐다. 마지막 4개월간 암투병이 너무 괴로운 나머지 "나 이제 그만 아프고 싶어. 그냥 빨리 가고 싶어"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그렇게 의지가 강하시고 기개가 올곧던 분도 췌장암이란 병마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셨다.
할아버지께 돌아가시기 전 할아버지 귀에다 대고 직접 사랑한다고 말씀드렸다. 보여주신 사랑과 기대에 부응하면서 살 테니 하늘에서 꼭 지켜봐 달라고, 항상 사랑하고 존경했다고 눈을 맞추고 말씀드렸다. 아프신 와중에도 그 말을 듣는 할아버지의 눈빛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의 장례를 무사히 마치고 유품을 정리하면서, 어머니께서 할아버지의 붓 몇 자루를 집에 가지고 오셨다. 내 방 벽에 박아놓은 못에 가지런히 걸려있는 붓대를 보면 할아버지와 붓글씨를 쓰던 추억이 생각이 난다. 우연히 디즈니 애니메이션 <코코>를 넷플릭스에서 다시 보면서 할아버지 생각에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기도 했다.
내가 힘든 일이 있어도 크게 방황하지 않고 금방 회복하고 바른 길에 머물 수 있는 건 다 할아버지 생전에 내게 보여주시던 믿음 덕분인 것 같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무조건적으로 보내주는 사랑의 힘은 실로 놀랍다.
지금 내 곁에 계시진 않지만 나는 할아버지께서 나에게 보여주신 사랑과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마음의 빚을 항상 지고 살고 있다. '큰 사람'이 될 거라고 말씀해주셨던 할아버지의 믿음대로 나의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살다가 먼 훗날 하늘나라에서 할아버지를 다시 만나 뵙고 싶다. 그때는 할아버지께서 아프지 않고 건강하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