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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올라프 Sep 20. 2021

속사정도 모르면서 무례한 질문은 하지 맙시다.

명절 때 시집 안 가냐는 질문 하지 마세요.

불과 3년도 지나지 않은 미혼 시절의 이야기다.

명절이 되어 친척들 집에 방문하게 되면 어르신들이 하는 질문들 중 너무 듣기 싫은 말이 있었다.   


"시집 안 가니?"


지금이야 재작년에 결혼을 해서 더 이상 들을 일이 없지만 미혼일 때 ‘시집 안 가냐’는 질문은 굉장한 피로감을 일으키는 질문이었다.

20대 후반 때부터 슬슬 시작된 그놈의 시집 타령은 30대 초반이 되자 더 심해졌다.


명절 때 시집 얘기를 듣기 시작한 시점은 이미 당시의 남자 친구이자 현 남편과의 연애 기간이 3년을 넘어갈 때였다.

물론 어르신들에게 결혼 질문은 스트레스를 줄 목적이 아니라 관심 어린 안부 인사라는 점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이 질문이 불쾌했던 건 안 그래도 내 계획보다 늦어지는 결혼 시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주말 없이 일을 하는 시기가 길어지면서 남편에게 결혼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내가 속해있는 집단의 결혼시기가 늦으면 그나마 위안이라도 될 텐데 은행이란 조직은 평균 결혼 연령이 낮은 축에 속했다. 다른 여자 동기들은 30살이 되기 전에 결혼도 하고 예쁜 아가도 낳고 잘 사는데 오래 사귄 남자 친구까지 있는 나는 오히려 결혼이 늦어지고 있었다.

이런 속사정도 모르고 어르신들께서 시집 안 가냐는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하시니 명절날 친척집을 방문하는 내 기분이 마냥 좋을 수가 없었다.


집안 어른들에게 결혼 여부에 대한 질문은 단순한 궁금증일 수도 있고 걱정과 관심의 표현일 수 있다.

하지만 결혼 여부, 금전 상태, 자녀계획 등 다소 민감한 주제에 대해 말을 꺼낼 때는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 질문을 하는 한 분 한 분 입장에서는 어쩌다 한번 묻는 질문이지만 질문을 받는 사람은 이미 친구나 동료들에게 수십 번도 더 들었을지 모를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질문을 받는 사람은 이미 그 문제로 맘고생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명절 때는 관심을 빙자한 실례되는 질문은 부디 삼갔으면 좋겠다.

대신 ‘일은 좀 어떠니?’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니?’처럼 ‘어떻게-‘로 시작되는 질문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시집 언제 가니?’ ‘취업은 언제 하니’처럼 옳고 그르다의 판단이 기저에 깔린 불편한 질문이 아니라 답하고 싶은 것만 답할 수 있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가족들과 친척들을 오랜만에 만나는 대명절 추석이다. 주고받는 대화 속에 상처 받고 기분 상하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서로를 만나는 일이 설레고 기분 좋은 기억이 될 수 있게, 피하고 싶은 명절이 아니라 기분 좋은 명절이 될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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