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쫀꾸 사려다, 생긴 일

베이글 다섯 개와 빵순이 할머니와의 스몰토크 그리고 마을버스 안 비타민

by 탄산수


병원 예약이 있어 옆 동네 지하철역에 내렸다.

요즘 몸도 마음도 조금 지쳐 있어서,

겨우 집을 빠져나온 참이었다.


흐리멍텅한 눈으로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탔는데,

저 멀리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머리가 하얀 어르신,

남자 고등학생 무리,

아주머니 등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서

더 관심이 갔다.


이름을 검색해보니 유명한 베이커리 집이었다.

서울서도 찾아오는 유명 베이글 맛집이란다.


최근에는 ‘두쫀쿠 맛집’이라는 타이틀도 생겼다는데,

그건 내 뒤에 서 있던 아주머니가

“냉장고에 두쫀쿠 있어?” 하고

크게 외쳐준 덕분에 알게 된 정보다.

병원 예약 시간보다

40분이나 일찍 도착한 터라 애매했는데,
‘두쫀쿠와 베이글 맛이나 보지 뭐’ 하고
갑작스레 계획을 바꾸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15분쯤 기다려 가게 안에 들어갔다.


하지만 두쫀쿠가 담긴 냉장고는 텅 비어 있었고,
괜히 다급한 마음이 들어 베이글을 다섯 개나 집었다.
무화과크림치즈 2개, 완두콩쑥배기크림치즈 1개,
명란감자 1개, 바질토마토 1개.


베이글을 들고 나오는데 한 할머니가 말을 거셨다.


“여기 맛있대요?”

“저도 처음 사봤는데, 맛있대요.”

“나는 호밀빵, 효모빵만 먹어. 건강한 빵만.”

“맞아요, 호밀빵 건강에 좋죠.”

잠시 뜸을 들이더니 덧붙이셨다.

“근데 맛은 없잖여~”


둘 다 웃었다.


할머니는 안국역 유명 맛집(지금은 못 가지만..)도

줄 서서 기다려보신 적이 있다고 했다.

최고령 빵순이 할머니를 뵙게 되어 영광이었다.

그러고는 쿨하게 걸음을 옮기셨다.

뒤늦게 ‘하나 꺼내 드릴 걸’ 하는 생각이 맴돌았다.


집에 가는 길, 또 하나의 따뜻한 장면이 있었다.

매일 저녁 6시쯤

마을버스를 타는 여자분이 있는 모양이다.

“저 기억하시죠? 오늘은 일찍 퇴근해서요—

이거 비타민인데, 드리고 싶었어요.”


그분이 버스 기사님께

흰 봉투를 건네는 장면을 보게 됐다.

괜히 내가 다 뭉클해졌다.


“내일 봬요.”


그 말을 남기고 내리는 뒷모습까지.


볕이 안 드는 것 같은 날이었는데,

빵 맛집을 기다리던 순간이,

귀여운 빵순이 할머니와의 대화가,

기사님께 비타민을 건넨 여자분의 마음 덕분에

순식간에 하루가 밝아졌다.



빛을 받았으니 나누고 싶어졌다.

나는 아까 산 베이글을 담아

어린이집 원장님께 드렸다.

소박한 그림과 함께...


'하나 드릴 걸' 싶었던 그 마음을
다른 방식으로 조금은 갚을 수 있었다.

(원장님이 겁나 맛있으셨다고 한다ㅎㅎ..)


영상으로도 남겨봤습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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