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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쓰는 시간

[모임] 길을 잃은 의미 ft. Moana 2

송년 글쓰기 2024.12.28

by 읽고 쓰는 마음

안개 낀 겨울밤이다. 돌풍과 낙뢰, 태풍마저 헤쳐 나가는 베테랑 기장도 못 당한다는 짙은 안개. 강바닥을 달리는 듯이 먹먹하다. 눈을 크게 뜨고, 안경을 꺼내 쓰고, 라이트에 하이빔까지 더해도 갈 길이 보이지 않는 밤. 결국 갓길에 차를 세운다. 세상에 혼자 남은 심정으로 중얼거린다. 나는 길을 잃었다고.


입 밖에 내고 보니 기가 막혀서 왈칵 눈물이 난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역만리 타향에서, 나이는 43살을 먹어놓고 길을 잃었다. 사는 게 별 의미가 없다. 매일 아침 기를 쓰고 일어나야 할 이유 따위는 없다. 침대에서 짧게는 20분, 길게는 한 시간을 미적거리다 꾸역꾸역 몸을 일으킨다. 일단 방문 밖에서 보채는 고양이 때문에, 그리고 딸이 점심을 굶으면 안 되니까 도시락을 싸야 해서. 이렇게 하루가 시작된다.


요새는 저녁 이후 자유시간이 참 길다. 뭐로 채워야 할지 모를 만큼. 미쳐서 글을 쓰던 시간에는 이 시간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서 얼마나 아쉬웠던지. 지금은 대충 북클럽 책을 꾸역꾸역 읽는다. 틈틈이 우울감을 만끽하면서.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됐을까. 왜 나는 아무 의미도 희망도 없이 살아가고 있을까.


한때는 모든 것에서 의미를 캐내는 의미 중독자였다. 다양한 삶의 방식을 시도하면서 이건 어떤 의미가 있고, 저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툭 치면 줄줄 말할 수 있었다.


1단계 - 시키는 대로 살기, 일탈하지 않는 모범생의 삶. 시키는 대로 공부 열심히 하고, 좋은 회사에 가고, 스펙을 쌓고, 갑으로 살아가면 행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남들이 부러워하는 모든 것을 가져도 나는 행복하지 않고 불안 초조했다. 유독한 환경이 문제라고 생각해서 탈출했다.


2단계 - 내 마음대로 살기. 모든 걸 버리고 바닥부터 시작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캐나다에 왔다. 여차하면 접시라도 닦겠다는 각오로. 4년 정도 미쳐서 글을 썼다. 딸이 엄마는 날 위해서 죽어줄 수 있냐고 물어도 고개를 저었다. 미안, 지금 하던 작품은 마치고 생각해볼게. 내가 연 문이라서 내가 닫아야 돼. 나 아니면 아무도 이 세계를 마무리할 수 없어. 그게 행복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매일 떨치고 일어나야 할 이유는 있었다. 어제 내가 쓴 부분을 읽고, 수정하고, 뒷부분을 이어쓰기. 도파민에 멱을 감으면서 살았다. 그렇게 11번의 출간을 거치고 모든 것이 허무해졌다. 내 세계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를 믿고 이끌어주는 편집자들이 있었고, 글 친구들이 있었다. 반면 악플을 달고, 별점 테러를 하고, 개인 SNS까지 뒤지는 안티들도 있었다. 사랑받을 때나 미움받을 때나 똑같이 드는 생각은, 내가 뭐라고.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극찬할까.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물어뜯을까. 결과적으로는,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더 밀고 나갈 뒷배인 돈과 독자가 부족했다.


3단계 - 이 사회의 일원이 되기. 캐나다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풀타임 잡을 잡고, 악착같이 나만 위하는 삶에서 벗어나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팔자에 없는 감투를 쓰고 문화센터의 회장이 되어 한글책 도서관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멘탈이 갈리다 못해 으스러진 건 다시 복기할 필요조차 없다. 아주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 돼서 때려쳤으니까. 그리고 지금, 길을 잃은 나.


고통으로 점철된 가시밭길을 걸었다고 한탄하기에는 사실이 아니다. 1단계를 착실히 살아낸 덕분에 이민 오자마자 내 집 마련을 할 자금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2단계를 살아낸 덕분에 내 속의 이야기들을 원 없이 풀어냈고, 당장 내가 죽더라도 딸에게 전해주고 싶은 지혜와 깨달음을 보존하게 됐다. 3단계의 무모한 도전을 한 덕분에 '쓰는 시간' 수업을 진행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고, 다른 차원의 글쓰기 세상을 탐험할 수 있었다.


다른 차원으로 가는 문을 열어주는 것이 내가 거쳐온 단계들의 의미였다. 그렇다면 지금도 그럴까. 길을 잃은 채로 파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부표를 꽉 붙들고 있는 지금도?


폴리네시안 항해사들은 해도도 나침반도 없이 망망대해에서 4,000km를 이동해 하와이, 뉴질랜드, 이스터섬으로 이어지는 폴리네시안 삼각형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철새처럼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안다. 물론 타고난 본능 같은 것은 아니다. 전통 문화권에서 성장하며 부단히 훈련한 사람만 가질 수 있는 능력이니까. 그들이 길을 찾는 수단 - 별과 구름, 바람, 바다의 물결무늬, 떠다니는 나뭇가지, 새들의 움직임 등 모든 것이 단서가 되어 방향을 가리킨다. 그래도 막막할 때는 구전신화로 돌아간다. 반인반신 영웅 마우이 서사를 되뇌며 길을 찾는 방법을 재점검한다.


나도 루틴을 잡고 버티는 수밖에.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들을 하면서. 딸과 고양이들, 읽는 시간, 쓰는 시간, 친구들, 회사에 의지하면서. 그러다 보면 한순간 바람의 방향이 바뀌며 모든 것이 자명해질지도 모른다. 빠져 죽지 않도록 버티다 보면 문득 다음 단계로 넘어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 단계에 발을 딛고서야 나는 비로소 알게 되리라. 지금의 의미를, 길을 찾기 위해서는 길을 잃어야 했다는 것을. 어디인지 모를 다음 단계에 도달한 이후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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