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ulnerability 2025.1.18
#1 연약한 마음의 힘
딸에게는 썸남이 있다. 썸남에게는 여사친이 있다. 하루는 여사친이 딸에게 물었다.
"너 썸남이가 고백하면 받아줄 거야?"
"니가 그게 왜 궁금한데?"
"왜냐면 썸남이는 나의 좋은 친구고, 난 걔가 상처받기를 원하지 않거든. 네 대답에 따라서 내가 걔한테 주는 조언도 달라질 테니까."
일단은 웃겼다. 남의 연애사에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사춘기 소녀의 과몰입이. 다음으로는 가소로웠다. 원칙적으로 두 명만 입장 가능한 경기장에 셋이 들어와 있다는 규칙 위반을 당당하게 밝히는 패기가. 사실 셋도 아니다. 중학교라는 정글에서 누가 누구와 썸을 탄다 혹은 사귄다는 가십은 학년 전체가 공유하는 도파민 우물이나 다름없기에. 하지만 이게 왜 용납할 수 없는 일인지 깨닫기까지는 며칠이 더 걸렸다.
고백이 애틋한 건, 무참히 거절당할 수도 있다는 위험을 무릅쓰기 때문이다. 결과를 모르는 채로도 용기를 내는 행위. 상처받고 싶은 건 아니지만, 상처받더라도 어쩔 수 없어. 그만큼 널 좋아하니까 내 마음을 전하고 싶어. 그 부서질 듯이 연약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진심이, 고백 받는 사람을 떨리게 하고 마음을 움직인다. 그래서 받아줄 것인지 아닌지 제삼자를 시켜 떠보는 고백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
#2 내가 약해지자 일어난 일
오랫동안 내가 힘에 집착한다고 믿고 살았다. 돈이건 정보건 권력이건, 심지어는 술 많이 마시는 능력에 이르기까지 더 많은 파워를 손에 넣고 강해져야 한다고 이를 악물었다. 실은 나약하기 때문에. 하지만 나의 나약함을 남들에게 들키면 안 되니까. 내가 약하다는 걸 알면 짓밟고 이용할 테니까. 그래서 나는 강해야 한다. 최소한 강한 척이라도 해야 한다. 아무도 나의 약함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센 척은 나약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무던히도 센 척하려고 노력했다. 동생의 과자를 뺏는 동네 아이들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친구의 머리를 잡아당기는 남자애한테 달려들었다가 뺨을 얻어맞기도 했다. 대학생이 된 뒤로는 2리터짜리 맥주 피쳐를 잡고 따르면서도 오직 한 손만을 고집했다. 두 손으로 받치는 건 가오 떨어지니까. 비행기를 타면 내 트렁크를 내가 올리고, 옆에서 우물쭈물하는 여자의 트렁크까지 내가 올렸다. 사무실 정수기에 물이 떨어지면 20kg 생수통을 부여잡고 씨름을 하다가 결국 혼자 꽂아 넣었다. 겁이 나서 도저히 센 척하기 어려울 때는 분노를 소환했다. 나약한 본체에 분노를 두르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덩이로 거듭난 나는 이 구역 최고의 미친개가 될 수 있었다. 이런 나를 두고 남편은 가오가 뇌를 지배했다는 인물평을 남길 정도였다.
이렇게 사는 게 몸과 마음에 해롭다는 건 진작부터 알았지만, 몸에 밴 습관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2023년, 그간의 센 척을 한 방에 무너뜨리는 사건이 터졌다. 내가 속한 팀은 사수와 나, 둘이 전부인 작은 팀이었는데 사수가 육아 휴직을 갔다. 대신할 사람을 구하는 동안 나는 2개의 포지션을 소화해야 했다. 여기에 사수의 땜빵을 뽑고, 그 위에 매니저를 뽑고, 그 위에 ED까지 뽑는 HR 업무가 추가로 던져졌다. 일이 너무 많아서 화장실에 갈 시간조차 없고, 실핏줄이 터져 눈에 핏발이 서고, 목이 돌아가지 않아 운전이 불가능한 지경까지 내몰렸다. 매니저들에게 지원이 필요하다고 수차례 말했지만 묵살당했다. 그 와중에 열린 전체 직원회의에서 나는 와르르 무너졌다. 나 너무 힘들어, 내가 힘들다고 몇 번을 말했는데 아무도 안 도와주잖아, 더 이상 이렇게는 못 해, 라면서 통곡을 했다. 그 이후로 자기 책임을 피하려는 매니저 및 인사 담당자와 몇 달을 지독하게 싸워야 했지만, 모두 모인 앞에서 나의 약함을 드러낸 것에는 일말의 후회도 없다. 사람들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기 때문에.
- 그렇게 힘든 줄 몰랐어. 미안해.
- 내가 도와줄게. 그 건은 나한테 넘겨.
- 네가 우는 게 마음 아팠어. 뭐라도 해주고 싶어.
동료들은 나를 멸시하거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시하지 않고, 와서 도와줬다. 내가 냉철하고 프로답게 처신할 때가 아니라 다 내던지고 무너졌을 때. 그전까지는 사람들이 날 칭찬하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는 등 좋은 말을 해도, 아무한테나 일상적으로 하는 빈말이라고 생각해 큰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이 사태를 겪은 뒤 대부분이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 준다는 걸 알았다. 그때부터 누군가 표정이 어두우면 내가 먼저 다가가서 안부를 챙기고 손을 내밀게 됐다. 우리는 한 팀이니까.
#3 약함의 작동원리
억압은 왜 위험한가. 나의 약한 면모를 감추려 할수록 스스로를 무겁게 짓누르고, 진실과 멀어지기 때문이다. 남들이 아무리 좋은 말을 해줘도 믿을 수가 없고 자기혐오만 커진다. 그들이 보는 나는, 진짜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이라고 경멸하지만 가장 환멸 나는 건 속이는 나 자신이다.
게다가 더 무서운 건, 사실 남들에게는 훤히 보인다. 누군가 자기 약점을 감추려고 죽을 둥 살 둥 노력하는 순간 주변의 모두에게는 바로 그 자리에 핀 조명이 떨어지는 것처럼 극명해진다. 돈이 없는 걸, 마음이 약한 걸, 우울한 걸 감추려고 노력할수록 점점 더 감추려는 그 실체가 두드러진다. 들켜서는 안 된다는 두려움이 인간을 자연스러운 본질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만든다. 스스로를 아낄 수 없는 신세가 되면 결국 파멸한다. 낯선 사람에게 싸대기를 맞고 뺨을 감싸 쥐면서도 기어이 딱지를 치는, 돈 몇 푼에 존엄성을 팔아치우는 오징어게임 참가자들처럼.
그럼 내 약점을 무조건 내보이면 정신이 건강해질까? 파들파들 떨면서 치부를 드러냈는데 멸시만 당한다면? 회복할 수 없을 지경으로 부서진다. 그런 트라우마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기를 쓰고 감추려 든다. 그래서 안전지대가 필요하다. 누군가 약점을 드러내는 용기를 냈을 때 괜찮다고 감싸주는 사람과 장소, 분위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서로에게 안전지대가 되어주는 일이다. 평가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고. 약해도 괜찮아, 어떤 모습이라도 괜찮아, 실은 나도 그래, 라며 다독이는 손을 내미는 것. 거미줄처럼 미약한 연결이다. 하지만 사실 거미줄은 고무줄의 천배, 강철보다도 5배나 더 강하다.
언젠가 그 거미줄이 우리의 추락을 막는 안전망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이제는 꼭 죽었구나'라고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는 순간, 폭신하면서도 결코 끊어지지 않는 그물로 꽉 붙들어줄지도 모른다. 괜찮으니까 살아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