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가장 먼저 한 것은, 바로 어제를 회개하는 일이었습니다. 분명히 24시간이라는 시간을 분주히 살아냈는데. 텅텅, 아무 것도 남아 있는 것이 없는 듯한 이 공허함.
도대체 저의 어제 하루는 어디로 흘러간 걸까요? 잠시 참회하는 마음으로 어제의 흔적을 조심스럽게 되짚어 봅니다.
✔ 나름 일찍 일어나긴 했습니다. 6시 전에 눈을 떴으니 출발은 괜찮았던 셈이죠.
✔ 오랜 시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블로그 글도 완성했습니다. 유독 글이 더디게 써졌던 날이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썼습니다.
✔ 하지만 끝끝내 '발행' 버튼을 누르진 못했습니다. 마음속에서 자꾸만 머뭇거리는 기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다는 묘한 감정이 들더군요. 왜 그랬던 걸까요?
✔ 오늘 다시 그 글을 올리려고 보니 이미 어제의 그 느낌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이럴 거면 왜 어제 그 시간을 들였던 건지 허무함이 밀려 옵니다. 이렇게 감정과 타이밍은 늘 엇갈리곤 하네요.
✔ 임시저장함에는 수십 개의 스레드 글도 쌓여 있습니다. 이 중에 아무거나 하나 골라 발행만 하면 되는데, 저는 그것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 '충분히 소통할 수 있을 때 하자'는 마음이 자꾸 행동을 미루게 만듭니다. 말이 좋아 '충분히'지, 사실 이건 망설임에 가까운 감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컨디션도 좋지 않았고, 해야 할 일도 많았던 어제. 처음부터 외출은 그리 내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부부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그리 쉽지 않은 요즘이 아니던가요. 그런 생각을 하니 남편의 제안을 도무지 뿌리칠 수가 없었습니다.
✔ 늘 그런 식입니다. 마음이 가지 않아도 상대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습관. 때때로 나를 소모시키는 그 습관 말입니다.
✔ 역시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땐 가지 않는 게 옳았다는 걸, 집으로 돌아오며 다시금 배웠습니다. 몸도 마음도 고단해져서 돌아오자마자 소파에 쓰러져 잠들었으니까요.
✔ 눈 떠보니 어느새 저녁 8시. 서둘러 저녁을 먹으러 나섰고, 또 시간이 순삭 되었습니다. 사실 배고픔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혼자 밥을 먹을 남편을 생각하면 또 외면할 수가 없었거든요.
✔ 저는 왜 이렇게 거절을 못하는 걸까요. 좋은 사람이 되려다 오히려 지친 사람이 되는 날이 늘어갑니다.
✔ 오늘 하루를 속죄하며 늦은 저녁 운동이라도 가야겠다 다짐했지만, 주방을 마감하니 헬스장 문 닫는 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겨우 40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갔어야 했을까요?
✔ 엉엉. 하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거라도 했어야 했는데'라는 아쉬움만 가득 남았네요.
✔ 하루 종일 책도 한 장 펼치지 못했습니다. 마음이 걸려 반납일이 다가오는 책을 꺼내 들었지만, '나 오늘 일찍 잘게'라는 남편의 말에 저도 슬그머니 기운이 빠지고 말았거든요. 시계를 보니 이미 11시. 그래서 그만 저도 스르르.
적고 보니 어제는 끝까지 느슨함으로 마무리된 하루였네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놓은 것이 없는 하루. 기록하며 돌아보니 참 엉망이었다 싶습니다. 마음 한켠이 아직도 찜찜한 이유입니다.
'어제의 나'를 비난하고 싶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 감정을 그냥 흘려보내기에도 아쉬워 이렇게 기록을 남깁니다. 결국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또 새롭게 주어진 24시간이니까요. 어제처럼 의식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다면, 하루쯤 엉망이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선명한 의도를 품고 살아보려 합니다. 회개의 끝엔 늘 다짐이 따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