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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내고 받는 우아한 고문. 필라테스 4주 생존기.

보여주기 위한 근육보다, 나를 지탱할 속근육이 필요한 나이

by 라이팅유주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운동 DNA라고는 태초부터 없던 사람이었다. 땀 흘리며 뛰는 역동적인 움직임보다는 가만히 앉아서 사유하는 정적인 시간이 편했고, 남들이 흔히 말하는 '운동이 주는 삶의 활력'이니 '엔돌핀'이니 하는 것들은 내 인생의 사전에는 없는 단어인 줄 알았다. 마흔이 훌쩍 넘어서야, 그것도 아주 조금씩 몸으로 깨닫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랬던 내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덜컥 필라테스를 등록했다. 그리고 오늘, 장장 4주간의 8회 수업을 마쳤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다닌 건 대단하지만, 그렇다고 한 달 만에 몸이 기적처럼 변한 건 절대 아니다. 중간중간 가기 싫었던 날도 있었고, 예약 취소 버튼 위에서 손가락이 맴돌던 날도 있었다.


기구 위에 매달려 있을 땐 어떠했던가. 우아함은커녕 바들바들 떨던 게 다반사. 선생님의 카운트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그저 고통스러워했다. 그렇게 고통은 늘 현재진행이었고, 거울 속의 나는 여전히 뻣뻣한 막대기 같았다.


게다가 운동을 다녀온 날이면 어찌나 노곤한지, 낮잠이 쏟아져 기절하듯 잠드는 내 모습이 황당해서 웃음이 날 정도였다. 체력을 키우러 갔다가 체력을 털리고 오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고통스러운 행위를 계속해 볼 작정이다. 40대가 되며 내가 정립한 운동의 우선순위는 명확하다.

스트레칭 > 근력 > 유산소.


보여주기 위한 근육보다는 나를 지탱해 줄 속근육과 굳어가는 몸을 늘려주는 유연함이 절실한 나이다. 그런 면에서 필라테스는 꽤 괜찮은 운동이었다.


작고 느린 동작. 하지만 그 안에서 내 속근육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깨우는 일.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으면서 오롯이 내 몸의 통증과 한계에 집중하는 그 시간. 그 차분한 몰입이 나는 참 좋았다.


억지로 끌려가듯 미적지근하게 집을 나설 때와는 달리,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의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볍기만 하다. 헬스장에서 무게를 들 때와는 결이 다른, 내면이 정돈되는 개운함이랄까. 이 맛에 나는 어느새 중독된 걸지도 모르겠다.


이 뻣뻣한 4주 덕분인지 러닝으로 인한 무릎 통증도 꽤 잠잠해졌다. 덕분에 내일부턴 다시 야외 러닝을 시작해 볼 용기가 생겼다.


지난 2주간 멈춰있던 나의 러닝 실력은 과연 초기화되었을까? 뭐, 원점으로 돌아갔으면 어떤가. 다시 시작하려는 그 마음도 나는 그저 대견하다.


뻣뻣하고 느려도, 멈추지 않고 움직이는 내가 꽤 마음에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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