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터키] #8 끓는 물에 손을 데었던 날

순간의 기록, 네 번째.

by Sophie




낮의 정규투어에 이어 야경투어까지 있는 날. 부쩍 저녁이면 서늘한 바람이 부는 요즘이라 야경 투어를 나가기 전에 따뜻한 스프라도 끓여 먹으려고 물을 데우다가 그만 포트에 있던 끓는 물을 손에 엎질러 버렸다. 정말이지 이렇게나 제대로 된 화상을 입어본 건 난생처음이라 너무 아파 말도 안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어쩌나, 가이드라는 직업의 특성상 투어는 손님들과의 약속이어서 손님들은 약속된 장소에 나오지 않아도 되지만 가이드는 헛걸음을 할지언정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있어야만 한다. 우선 일은 해야 하니 사무실에 일하는 터키 친구가 만들어준 얼음주머니를 꼭 쥐고 통증을 참으며 야경 투어 장소로 갔다.

야경 투어 때 항상 가는 카페에 갔더니 거기 일하는 터키 친구들이 손이 왜 이러냔다. 손님들 앞이라 말하기가 조심스러워 멋쩍게 웃으며 터키어로 뜨거운 물을 쏟았다고 했더니 그들은 "잠깐만!"하고 휙 사라졌다가 주방에 가서 얼음을 고무장갑에 넣어서는 반창고와 함께 들고 왔다. 자기도 쉬샤(물담배)때문에 숯에 많이 데어봐서 얼마나 아픈지 않다고, 열기를 빼야 하니 차가워도 손 위에 꾹 대고 있어야 한다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카페가 있는 언덕에서 내려와 갈라타 다리를 건너는 사이에 얼음주머니가 다 녹아버렸다. 찬 기운이 사라지자마자 데인 부분이 날카롭게 아려왔다. 도저히 견디기가 힘들어 다리 중간에서 손님들이 사진을 찍는 동안 잠시 양해를 구하고선 근처 레스토랑 아저씨에게 가서 사정을 말하고 얼음 몇 개를 좀 얻을 수 있냐 하니 아저씨는 대형 비닐봉지에 얼음을 오십 개쯤 가득 채워서 가져다주신다. 와하하 하고 웃어버렸다. 아 정말이지 터키의 인심이란!


조금만 있으면 또 녹을 테니 다 가져가라는 아저씨에 말에 이만큼은 손에 잡을 수도 없다며 겨우 납득을 시킨 후에야 아저씨는 얼음이 녹아버린 고무 장갑 속에 열개 남짓의 얼음을 채워 건네주셨다.

그렇게 무사히 투어를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매일 지나가는 길에서 마주치는 식당 아저씨가 손을 보더니 오늘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다. 저녁에 마주친 사람들마다 하도 물어보는 통에 벌써 열 번쯤 같은 대답을 한 것 같다. 웃으며 별 것 아니라는 듯 말하자 아저씨는 '잠깐만 기다려' 하시고선 또 어디선가 얼음이 담긴 작은 봉지를 갖다 주신다.

투어를 하는 서너 시간 동안 네 번에 거친 새로운 얼음들이 내 손의 열기를 달래주었다. 손을 막 데었을 때만 해도 이 손으로 어떻게 일을 해낼지 막막했는데 투어 내내 여기저기서 뿅 하고 나타난 신데렐라의 요정님 같은 도움의 손길들 덕에 나는 무사히 퇴근을 하고 있다.


트램 안에서 거즈를 덧댄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있자 한 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보고 여기 와 앉으라고 손짓을 하신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섬세함과 다정함은 죄다 터키에서 다 받아가는 기분이다. 이렇게 정 많고 따뜻한 사람들이라니, 또 이렇게 내 마음속 터키 사랑이 무럭무럭 자라는 소리가 들린다.


터키에 와서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바로 감사 인사다. 언제나 넉넉한 인심과 선의로 나의 마음을 벅차게 하는 따뜻하고 정 많은 이스탄불 사람들, 오늘 받은 도움도 아주 많이 감사했어요. Çok teşekkür ederim.


2015년 9월 11일, 유난히 길었던 하루의 퇴근길.



IMG_20150911_215106.jpg

















keyword
이전 07화[오늘도 터키] #7 열아홉 소년의 사랑의 속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