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터키] #12 안탈리아에서 길을 잃다

순간의 기록, 일곱 번째.

by Sophie




구시가지 골목으로 들어가기 전,
큰길 입구에 있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사과 계피맛 아이스크림을 샀다. 초콜릿이 코팅된 콘 위에 커다랗게 한 주걱 올려준 모양이 마치 로마에서 먹었던 젤라토 같다. 첫 한 입을 베어 물었더니 갑자기 걷는 길이 더 즐거워진다.

아이스크림에 잔뜩 돋구어진 흥은 구시가지의 갈림길에 섰을 때 가벼워진 발걸음은 호텔로 향하는 왼쪽이 아닌 오른쪽 길로 나를 데려갔고, 이성이 움직이기도 전에 감성이 먼저 '뭐 어때 오른쪽으로 가보는 거야.' 하며 다리를 이끈다.

닫힌 상점들과 주황 불빛의 골목은 나자렛에서 보았던 그것, 혹은 예루살렘 성 안의 골목을 떠올리게 했다.

익숙한 기분이다. 그곳으로 들어선 순간 마치 과거로 들어선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기분.

예전에도 중동의 어떤 도시들의 구시가지를 여행할 때면 드물게 찾아오던 조용하지만 강렬한 떨림이었다.

신나게 달리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마냥 신나기만 하던 기분에 갑자기 고요한 흥분이 밀려왔다.

낮에 시도하지 못했던 길 잃기를 해보고 싶었다.
기꺼이 길을 잃고 싶은 골목들로 가득하던 이 안탈리아의 구시가지를 나는 어둠 속에서 다시 마주하고 있었다. 두 번은 없을 테였다. 안탈랴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밤이었다.

하나의 낯선 골목을 꺾을 때마다 수북이 얹어져 있던 아이스크림이 조금씩 사라졌다.
한 입, 또 한 입. 한 골목, 그리고 또 한 골목.

아이스크림이 절반쯤 사라졌는데도 여전히 낮에 보았던 길들 중 그 어느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골목을 꺾으니 나를 응시하는 십 대 후반의 사내아이들이 보인다.
야, 중국인이야. 하고 서로 속닥거리며 키득거리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터키어로 길을 물으니 그들은 내심 당황한 눈치다. 그리고는 저들 딴에는 괜히 미안했는지 성심성의껏 길을 찾아주는데 열을 올린다.

그들이 알려준 대로 걷고 또 걸었다. 마침내 어느 순간 그 낯선 골목은 마치 내가 있던 현재의 세계로 나를 토해내듯 한 큰길로 나를 밀어내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눈 앞의 골목은 낯설다.
예상했던 낯익은 무엇도 발견하지 못한 내게 순간 당황스러움이 밀물처럼 몰려왔고, 나는 다시 황급히 눈으로 골목을 훑었다.

그때 익숙한 온도계가 보인다.
아까 낮에 오며 가며 보았던 터키 목욕탕, 하맘의 온도계다.
사람이 없고 가게들이 문을 닫고 나니 전혀 그 모습이 달라져 그만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급작스레 몰려왔던 당황스러움은 어느새 썰물처럼 사라져버렸다.

그제야 나는 안도하며 손에 남은 아이스크림을 보았다.
얼마나 많은 골목을 돌았는지 그새 아이스크림은 과자의 끝부분만이 남아 있었다.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이 손가락에 묻어 끈적거린다.

마침내 익숙한 길의 낯선 밤 모습을 즐기며 나는 망설임 없이 길을 걸었고, 아이스크림 콘의 남은 부분을 입에 넣었다.

바삭바삭.
과자 부서지는 소리가 발소리와 함께 혼자 뿐인 골목을 조용히 채운다.


길 잃기가 끝났다.


2015년 12월 27일 깊은 밤.
안탈리아 구시가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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