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터키] #14 미디예 소년, 오즈균.

결국엔 사람, 세 번째.(2/2)

by Sophie




"소피, 오늘 쉬는 날이면 시장 다녀오면 되겠네! 가서 미디예 꼬맹이도 오랜만에 보고와~"

토요일, 인터넷 업무 처리를 하고 저녁 장을 보려고 생각하던 중 동생이 보낸 메시지를 보고서 그때서야 토요 시장이 서는 날이라는 게 생각났다. 시간을 보니 벌써 네시. 요즘은 네시 반만 되어도 해가 지는데, 얼른 가야겠다 싶어 벌떡 일어나 집을 나섰다.

터키의 길거리 음식인 홍합밥, 미디예 돌마 Midye Dolma를 동네 시장에서 파는 꼬마의 이름은 오즈균 Özgün. 동생이 장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그 애가 파는 미디예는 명실상부 우리의 미디예 최애 맛집이 되어버렸지만 여름 성수기 이후 장이 서는 토요일에 도통 휴무가 나질 않아 한동안 가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장바구니를 옆구리에 끼고 혼자 방문한 오랜만에 간 토요시장은 여전히 활기찼다.
지난여름 동생이 터키를 떠나기 전 함께 갔던 이후 처음 오는 거니 정말로 오랜만이다. 사람 사는 냄새와 힘찬 기운이 여기저기 넘쳐흘렀다. 아무래도 파장罷場을 앞둔 늦은 오후인지라 이미 장사를 끝낸 상인들은 집에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장은 다시 나오는 길에 대충 보기로 하고 발걸음을 재촉해 미디예 꼬마가 있는 곳으로 갔다.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어떤 아저씨의 감자 봉투가 날 툭 치고 지나갔고 느릿느릿 걸으시던 할머니의 장바구니 손수레의 바퀴는 앞 뒤로 차례대로 내 발을 넘어갔다.

숨이 차도록 걸어 도착한 시장 가장 안쪽 골목 끝 슈퍼 앞, 다행히 아이는 거기에 있었다.
"부이룬!Buyrun!(어서오세요)"하고 고개를 든 아이는 내 얼굴을 보고선 꽃처럼 맑은 미소를 띠며 놀라움과 반가움이 한데 모인 얼굴로 "아블라! 나슬슨??abla nasılsın(누나! 잘 지냈어요?)"하고 외쳤다. 아이의 맑은 얼굴을 보니 그 많은 인파를 헤치고 걸어온 보상을 한 번에 받는 기분이다. 다행히 아이는 밝아 보였다. 시장에 오지 못하는 동안 종종 아이의 안부가 궁금했었는데 괜찮아 보이니 참 다행이었다.

역시나 오후가 되어 남은 미디예가 얼마 없어 보인다.

"kaç tane istiyorsun?(몇 개나 드릴까요?)" 아이가 물었고 나는 손으로 쟁반을 가리키며 말했다.


"Hepsi!(전부!)."

옆에 서 있던 소년의 친구는 눈이 동그래지고 아이는 신나서 미디예를 담아낸다.


34개 정도의 미디예가 봉투에 담기고 아이의 미디예 쟁반은 깨끗하게 비워졌다. 생각보다는 많은 수였지만, 얼른 퇴근을 시켜주고 싶어 얼마냐 물었다.

7.5리라.
탁심 같은 관광지에서 하나에 1리라 하는 미디예인데, 하나에 25 크루쉬(0.25리라)라는 말도 안되는 가격에 매번 놀란다. 아이에게서 거스름돈을 받아 들며 손을 보니 붕대가 감겨 있었다. 깜짝 놀라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다쳤단다. 얼른 나으라 말을 해주니 고맙다고 씩 웃는다. 너의 그 어여쁜 미소가 나의 하루, 작은 일상을 빛나게 한다.


웃는 네 얼굴을 보며 '얼른 나으라'는 터키어 표현을 배우길 참 잘했다 생각했다. 토요일에 휴무가 생기거든 또 올게. 그때도 꼭 조기 퇴근시켜줄 테니 붕대 없는 손과 너의 거울처럼 맑은 미소로 내게 인사를 건네주길.


p.s. 그날 사 온 서른 여개의 미디예는 선배와 둘이 저녁 카레를 한 접시 비우고 나서 곧 우리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우리, 살 빼기는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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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다. 똘똘한 밤톨처럼 생긴 미디예 소년 오즈균. 지금도 가끔 그의 소식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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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를 감은 그의 손이 신나게 남은 미디예를 쓸어담고 있다. 그리고 서른 네개의 미디예 돌마는 그 날 저녁 식사 후식으로 우리 두 사람의 뱃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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